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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코붱 Nov 14. 2019

"그거 병임. 워커홀릭 초기단계."

허전하다. 브런치북 출판 프로젝트 응모를 마무리 한 내 심정은 그랬다. 최종 목표는 대상 당선이 아닌 ‘책 출간’이라는 거창한 말까지 했으면서, 그래서 추가로 써야 할 글이 산더미로 있으면서도 마음 한구석이 헛헛했다. 


그거 병임.
워커홀릭 초기단계. 


이런 내 기분을 멘토인 김 팀장님께 말하니 이런 답이 돌아왔다. 계속 목표를 찾고 거기에 맞춰 달려가는 것도 심하면 병이라고. 잠시 쉬는 게 좋을 것 같다는 말도 덧붙이셨다. 


그런가… 가만 생각해보면 맞는 말 같기도. 일본에 와서 생각처럼 취직이 바로 되지 않았을 때, 하고 싶은 일보다 할 수 있는 일만 찾느라 헉헉거렸을 때. 나는 불안했다. 뭘 해야 할지 몰랐고 그런 나 스스로가 너무 못나고 비루해서 자책도 많이 했다. 


그러던 중 글을 쓰기 시작했고, 땅바닥을 기고 있던 자신감도 많이 되찾았다. 그래서 달렸다. 신명 나게 춤을 추듯 글을 썼다. 미친 듯이 책을 읽고, 글을 쓰고, 글을 쓰지 않는 매 순간에도 머릿속은 다음 글에 대한 생각으로 꽉 차 있었다. 



글 쓰는 사람이 ‘글쓰기’만으로 머릿속이 가득 차 있다는 것은 축복일 수도 있다. 실제로도 그랬기 때문에 나의 글은 이어졌다. 끊임없이 계속해서 소재가 떠올랐고, 이야기가 생겼고, 단편적인 생각에 살이 붙었다. 


그렇게 불도저처럼 글을 써왔다. 지난달 말에 일 보러 잠깐 갔었던 한국에서 돌아오고 나서 약 2주간 쉬지 않고 썼다. 고삐 풀린 망아지처럼 계속해서 쓰고 지우고, 쓰고 지우고를 반복하며, 그렇게 차곡차곡 글을 완성시켜 나갔다. 


이틀 전, 나는 브런치북 출판 프로젝트에 응모할 두 번째 작품을 완성시켰다. 남들 눈에는 완벽하진 않아 보일지라도 지금의 내가 쓸 수 있는 최선의 글들이었다. 쏟아낼 수 있는 모든 것을 다 쏟아냈다는 것은 확실하다. 


그래서일까. 응모가 끝나고 벌써 이틀이 지났고, 나는 지금. 조금 우울하다. 최근의 나를 열정적으로 살게 만든 하나의 목표가 사라졌고, 목표가 없는 일상으로 돌아온 지금, 가슴 한 구석이 뻥 뚫린 것 같은 허전함을 느끼고 있다. 


초고 완성 후에는 떠나라


이번에 글을 쓰며 많이 참고했었던 정혜윤 작가님의 <작가를 위한 집필 안내서>에 “초고 완성 후에는 떠나라”라는 제목의 글이 있다. 이 글엔 정성을 다해서 초고를 완성했다면 바로 퇴고에 들어가기보다 고생한 자신을 위해 며칠 휴식시간을 주라는 내용이 나온다. 


기간은 자유롭게 정하되 최소 일주일 이상이면 좋겠다고 작가는 덧붙인다. 몇 개월이나 계속 봐왔던 내용을 객관적으로 바라보기 위한 시간도 필요하고, 그렇게 고생해서 초고를 완성시킨 본인에게 한 가지가 일단락되었다는 기쁨을 충분히 느낄 시간을 주라고 그녀는 말한다. 


그렇다면 지금 내게 필요한 것도 휴식인 걸까? 두 번째 작품인 “경로를 이탈하셨습니다.” 자체는 겨우 2주 정도 쓴 것뿐이지만 그 전 작품인 “경단녀는 어쩌다 글을 쓰게 됐나”의 경우 9월 중순부터 쓰기 시작했으니 정확히 두 달 전부터 글 쓰는 생활을 지속 해오긴 했다. 


쓰고 보니 그런 것 같기도 하다. 지금 내게 필요한 건 더 좋은 글을 쓰고, 끊임없이 생각을 뽑아내는 것이 아닌, 쉬지 않고 달려온 나에게 그동안 수고했다는 보상을 줘야 하는 때인지도 모른다. 


‘여행이라도 가야 하나.’ 하는 생각이 들어 휴대폰의 사진첩을 괜히 뒤적여봤다. 후루룩 내려가던 스크롤바가 어느 시점에서 멈췄다. 3년 전, 겨울. 홋카이도를 여행했을 때의 사진들이었다. 



모든 순간이 좋았다.
그래서 여행을 떠나는 거였다.


2016년 연말은 당시 일본에서 유학 중이던 남편과 함께 홋카이도에서 보냈다. 여행엔 이제 관심이 없어졌다고 생각했는데 오랜만에 그때의 사진을 보니, 당시의 설렘과 감동이 새록새록 돋아났다. 


이때 나는 참 예뻤구나. 참 즐거워했구나. 참 행복했구나. 여행할 수 있어 좋았다. 당시 나는 서울 소재의 한 외국계 기업에서 계약직으로 일하고 있었다. 몇 달 뒤 정규직 전환이 될지 말지를 두고 고민이 많았던 때다.


하지만 홋카이도를 여행할 땐 나의 불안한 미래도, 암담한 현실도 생각나지 않았다. 홋카이도의 땅을 밟고 풍경을 보고 공기를 느끼고 크리스마스와 연말의 분위기에 취한 도시의 거리를 거닐던 그 밤들의 모든 순간들이 나는 행복했다. 이래서 여행을 떠나는 거였다. 그래서 모두 여행을 꿈꾸는 거였다. 


사진을 보니 확신이 든다. 나는 지금 여행이 필요하다. 그렇다고 영하 40도 이하로 떨어지는 한 겨울의 홋카이도를 다시 가고 싶진 않고 (그럴 돈도 없고), 조만간 집에서 가까운 교토라도 한번 다녀와야겠다. 


홋카이도 여행을 다녀오고 나서 다음 해, 결국 난 정규직 전환이 안됐고, 그 회사를 퇴사하게 됐다. 답답한 마음에 무작정 떠났던 교토에서 우연히 들어갔던 그 카페를 한번 더 가보고 싶어 졌다. 


게다가 다음 주엔 남편과 나의 첫 결혼기념일이 돌아온다. 집돌이인 남편을 졸라 이번엔 혼자가 아닌 둘이서 손 꼭 잡고 다시 가봐야겠다. 내가 가장 힘들었던 시절, 맛있는 커피와 따뜻한 위로를 함께 건네줬던 교토의 한적한 골목 안에 있는 작은 그 카페로.


…이런 계획을 세우는 것도 워커홀릭 증상이려나. 어쩐지 마음이 뜨끔하다.


마무리는 내게 큰 위안을 주었던 교토의 카페 사진으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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