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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코붱 Oct 21. 2019

퇴고의 매력

글은 고칠수록 좋아진다. 확실하게.

나는 퇴고를 싫어했다. 내가 쓴 글을 두 번 세 번 반복해서 읽는 것이 괜히 번거롭고 재미도 없었다.


보통 글을 쓸 때 시간을 정해두고 쓰는 편인데 이게 글이 잘 나올 땐 참 좋은데 글이 안 써질 때 문제가 생긴다. 아무리 머리를 쥐어짜도 좋은 말이 안 떠오르고 A4용지 한 페이지에 달하도록 구구절절 썼는데도 20분 쉬고 나서 다시 읽어보면 말 그대로 구구절절한 자기변명에 지나지 않는 처참한 글이 써져 있는 경우도 있어서다.


이럴 땐 두 가지 방법이 있는데 조금씩 문장을 다듬어 보거나 다 지우고 새로 쓰는 방법이다.


1년 전만 해도 나는 조금씩 문장을 다듬는 편을 택했다. 이미 써진 글이 아까워서다. 자신이 없었다. 안 돌아가는 머리를 열심히 굴리고 쥐어짜서 겨우 이 정도라도 나온 거라고 생각했다. 다 지우고 새로 쓰면 그땐 한 문장도 제대로 완성 못할 거라는 불안감이 들었다.


하지만 최근엔 정 반대다. 문장을 다듬는 대신 대체로 새로 쓰는 쪽을 택한다. 글 쓰는 게 생각만큼 어렵지도 버겁지도 않다는 것을 깨닫게 되면서부터다.



얼마 전 나는 한 책의 초안을 완성했다. 일본에 와서 취업이 생각처럼 되지 않고 시간만 하릴없이 흘러가는 것에 초조해했던 나의 경단녀 시절의 이야기를 엮은 <경단녀는 어쩌다 글을 쓰게 됐나>의 얘기다.


사실 종이책으로 출간된 것이 아닌 브런치북으로 발간했다. 그 글을 쓸 때부터 나의 목적은 책 출간이 아닌 ‘브런치북 발간’이었다. 책 출간이라는 거창하고 이뤄질 가능성이 별로 없는 모호한 목표가 아닌 내 의지와 노력만 있으면 무조건 해낼 수 있는 현실적인 목표가 필요했다.


계속되는 취업 실패로 자존감이 땅까지 하락한 내가 스스로를 위로하고 내가 진정으로 원하는 일이 무엇인지 알아가기 위해 시작한 글이었다.


실제로 <경단녀는 어쩌다 글을 쓰게 됐나>를 완성하고 나서 나는 하고 싶은 일을 찾았다. 하고 싶은 일을 찾으니 지금 내가 해야 할 일과 당장은 못하지만 차후라도 해야 할 일이 뭔지 착착 정리가 됐다. 1년 뒤, 3년 뒤, 5년 뒤의 목표가 저절로 완성됐다.


이것만으로도 너무 기쁘고 좋지만 내가 더 만족하는 점은 따로 있다. 꾸준히 글 쓰는 습관을 들이게 됐다는 점이다.


매일 적게는 1시간, 많게는 3시간씩 글을 썼다. 초반엔 자꾸 딴 길로 샜다. 글 쓰려고 컴퓨터를 켰음에도 유튜브를 뒤적이고 소재를 찾겠다는 핑계로 인터넷 포털 사이트에 접속했다가 한 시간 이상 연예계 뉴스만 본 적도 있다.


그렇게 며칠을 소비해도 제대로 된 글이 안 나와 답답하던 참에 김명남 번역가의 KNM시간관리법을 알게 됐다. (이에 관해서는 자칭 전업작가, 타칭 백수의 KNM시간관리법을 참고해주시길!)



그때부터 확실히 글 쓰는 시간 동안은 글쓰기에만 집중하게 됐다. 글 쓰다 딴생각이 나거나 생각만큼 글이 안 나올 땐 무조건 스톱워치의 시간을 봤다. 40분에서 카운팅을 시작한 스톱워치는 이제 막 13분 45초를 가리켰다. 싫든 좋든 앞으로 13분 45초 동안은 더 글을 써야 한다. 반대로 아무리 힘들고 하기 싫어도 13분 45초만 더 글을 쓰면 20분간은 글을 안 써도 되는 해방감을 누릴 수 있다는 것을 의미했다.


이런 식으로 글이 잘 써질 때나 안 써질 때나 스스로를 다독이며 한 자 한 자 글을 썼고 <경단녀는 어쩌다 글을 쓰게 됐나>는 당초 목표였던 20개에서 좀 더 많은 23개의 글이 완성됐다.


이제는 더 이상 글쓰기가 두렵지 않다. 글은 누구나 쓸 수 있다. 마음만 먹으면 지금 당장 이 순간부터라도 시작할 수 있다. 그렇기에 나는 더 이상 내가 쓴 글을 지우는 걸 망설이지 않는다. 읽어봐서 맘에 안 들면 지운다. 싹 다 지우기에 애매할 땐 그나마 맘에 드는 문장이나 표현 정도는 살려둔다. 하지만 그것도 다시 쓰는 과정에서 쓸모가 없어지면 가차 없이 지워버린다.


이 글도 쓰는 중간중간 문서의 처음으로 올라가 다시 읽었다. 읽다가 막히는 부분이 있거나 내용이 삼천포로 빠지는 곳이 있을 땐 역시 지웠다. 그렇게 지우고 쓰고 지우고 쓰고를 반복하다 보니 어느새 A4 용지 1페이지를 넘어선 내용이 나왔다.



요즘도 나는 브런치에 공개만 하지 않을 뿐, 매일 글을 쓰는 중이다. 브런치북 출간 프로젝트에 한 작품을 더 응모하고 싶어서다. 예전에 썼던 <백수 탐구영역> 매거진의 개정판 같은 글이다. 때문에 필연적으로 백수 탐구영역을 다시 읽고 있는데 낯 뜨거워서 살 수가 없다. 이런 글을 보고도 책 출간을 제의해주신 모 출판사의 편집자님이 새삼 고맙고 미안할 지경이다. (현재 백수 탐구영역은 비공개로 전환되었습니다.)


수많은 글쓰기 책에서 이전에 쓴 본인의 글이 부끄럽고 보기에 민망하다면 그만큼 성장한 거라고 했는데 솔직히 성장한 건 잘 모르겠고 1년 전 내 글이 너무나 부족하고 민망하다는 것만은 확실히 알겠다.


1년 전 글을 쓸 때도 퇴고는 했다. 하지만 지금처럼 습관적으로 틈틈이 문단 한 두 개가 끝날 때마다 올라가서 다시 수정하는 정도로 집요하게 하진 않았다.


그때와 비교하면 나는 요즘 글을 많이 고친다. 제대로 글 쓰기 시작한 지 1년이 지나고 나서야 퇴고의 매력을 알아버렸다. 글은 고칠수록 좋아진다. 전업 작가 지망생이 된 지 얼마 안 된 짧은 내 경험에 미루어 보아도 그렇다.


고치지 않고 한 번에 완성해서 공개해버리는 건 자신의 글을 진정으로 좋아하는 자세가 아니다. 본인의 글에 애정이 있고 더 좋은 문장과 표현을 구현하고 싶은 욕심이 있는 사람은 퇴고를 사랑하게 된다. 퇴고가 내 글에 가져다주는 힘을 알기 때문이다.


...이 글은 이 정도면 된 것 같다. 이제 업로드해야지!







만들어만 두고 방치했던 인스타그램을 앞으로는 좀 더 활발히 사용하려 합니다. :)


개인적인 친분 쌓기도 좋고 함께 글 쓰는 동지를 원하시는 분들도 좋아요.

친하게 지내요, 우리 :)


https://www.instagram.com/kobweo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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