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코붱 Dec 20. 2019

도저히 글이 안 써질 때

쉽게 읽히는 글이 쉽게 써지는 건 아니다

글을 쓸 때마다 고민한다. 썼던 글을 마무리할 것인지, 새 글을 쓸 것인지. 특히 요즘처럼 쓰는 글마다 족족 마음에 들지 않을 땐 더더욱 그런 고민에 빠지기 쉽다.


며칠 전에 나의 1호 독자인 B에게서 연락이 왔다. 언니 왜 요즘 글 안 올리냐며 안부를 묻는다. 매일 뭐라도 끄적이긴 하는데 남에게 보일 정도의 글이 아닌 것 같다는 말 대신, 그동안 써온 글을 다듬는 중이라고 답했다. 


실제로 12월 들어서는 ‘경로를 이탈하셨습니다.’ 시리즈의 글을 주로 고치고 있으니까 아주 틀린 말은 아니었지만 마음 한구석은 좀 뜨끔했다. 퇴고 중이란 핑계로 새로운 글을 쓰는 일에 소홀해진 것은 사실이었으니까.


글쓰기를 방해하는 요소는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내 글이 써지지 않는 가장 큰 이유는 바로 ‘글쓰기에 대한 부담감’ 때문이다. 잘 쓰고 싶다는 생각이 드는 순간, 그동안 술술 써지던 글이 꽉 막혔다. 뭘 써도 별로고, 어떤 글도 재미가 없었다. 독자에게 강렬한 메시지를 전달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수록 공감과 위로보다는 이래라저래라 하는 뻔한 훈계 질만 하는 글이 나왔다.


쓰는 것마다 마음에 안 들고,
마음은 초조해지고.


쓰는 것마다 마음에 안 들고 시간은 가고, 올 한 해도 이렇게 아무런 결과물도 내보이지 않고 끝나겠구나, 하는 생각에 마음은 초조해져만 갔다. 글이 잘 써질 수 없는 상황을 스스로 초래하는 셈이다.


그러다 보니 한동안 글을 공개할 수가 없었다. 짧게는 하루에 한 개 내지, 이틀에 한 개꼴로 꾸준히 올리던 글이 더 이상 갱신되지 않고 멈춰있는 것을 볼 때마다 속이 쓰렸다. 빨리 뭐라도 써서 올리고 싶다는 생각만 간절했다.


이런 나를 보고 남편은 ‘관종’이라고 했다. 맞다. 나 관종이다. 단순히 글 쓰는 행동 자체만으로도 만족했다면 혼자 글 쓰고 혼자 읽고 말지, 브런치를 시작하지도, 인스타그램을 개설하지도 않았을 것이다. 


나는 혼자만의 자기만족을 위한 글을 쓰고 싶지는 않다. 글은 쓰는 사람의 것만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의 이름을 불러주었을 때 그는 내게 와 꽃이 되었다는 김춘수 시인의 시처럼 글은 누군가에게 읽히고 공감을 얻게 되는 순간, 진정한 ‘글’이 된다고 여긴다. 독자가 있어야지만 내 글은 완성된다.


목표는
 '읽히는 글'을 쓰는 것


그렇기에 내 글의 목표는 ‘읽히는 글’이 되는 것이다. 되도록 ‘쉽게’ 읽히는 글을 쓰자는 것이 내가 글을 쓸 때 지향하는 목표다. 앞서 말했다시피 나는 관종이라 어려워서 읽히지도 않고, 외면받는 글을 쓰고 싶지는 않다. 하지만 그런 글이 어디 쉽게 얻어지는 법이던가.


‘쉽게 읽히고 흥미를 유발하는 글’은 의외로 쓰기가 어렵다. 개인적으로 처음 읽었을 때와 두 번째 읽었을 때 인상이 180도로 바뀐 책이 있는데, 지난해 상반기 종합 베스트셀러 1위에 오른 정문정 작가의 <무례한 사람에게 웃으며 대처하는 법>이 그랬다.


처음 1 회독을 마쳤을 땐, 이 책이 왜 베스트셀러인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자극적이고 흥미를 유발하는 소제목들에 비해 내용은 다소 빈약하다는 느낌을 받았기 때문이다. 


때로는 일기 같기도 하고, 때로는 자기 계발서 같기도 한 글들을 읽으며 이게 에세이인지 자기 계발서인지 구분이 되지 않았고, 단행본 치고는 한 꼭지마다 배정된 글의 분량이 적은 것도 다소 아쉬웠다. 적은 건 두 페이지짜리도 있었고, 프롤로그를 제외하면 5페이지를 넘어가는 글을 발견하기가 어려웠다. 


겨우 1회 독을 마치고 난 뒤 몇 개월간 책장에 고이 잠들어 있던 이 책에 대한 인상이 바뀐 건, 그 모든 것이 철저한 타깃 독자층에 대한 분석을 통해 이루어진 전략이었다는 정문정 작가의 인터뷰를 보고 나서부터였다.


'제목으로 유혹하고
프롤로그에서 말을 걸었다'고?


제7회 브런치 북 출판 프로젝트가 시작되기 전 공개된 브런치팀과의 인터뷰에서 정문정 작가는 제목으로 유혹하고 프롤로그에서 말을 걸었다는 말로 이야기를 시작한다. 독자의 이탈을 막기 위해 앞쪽은 에세이처럼, 뒤쪽은 자기 계발서로 썼다는 말도 덧붙였다. 잡지 기자 일을 하다 홍보 쪽으로 넘어오면서 페이스북이나 블로그를 통해 콘텐츠를 읽게 된 독자들이 콘텐츠를 클릭하고 10초 안에 이탈한다는 점에 착안한 방법이었다고 그녀는 말했다.


내가 이 책을 읽을 때, 글이 일기 같기도 하고, 자기 계발서 같게도 느껴진 것은 그녀가 의도한 바였다. 어렵고 난해한 내용이 아닌, 누구나 겪었을 법한 이야기, 혹은 누구나 한 번쯤 들어보거나 공감 가는 대중적인 이야기로 독자의 시선을 사로잡고, 이를 통해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를 확실히 각인시키기 위한 작가의 장치에 나는 보기 좋게 걸려든 것이다. 


그래서 기분이 나쁘냐고? 전혀. 오히려 무릎을 탁! 쳤다. 책 한 권은커녕, 온라인상에 올라온 긴 글조차 읽기 어려워하는 사람들을 내 글로 끌어들이고 끝내는 끝까지 읽을 수 있게 만들기 위한 작가의 치열한 고민의 결과물에 나는 진심으로 감탄했다.


쉽게 읽히는 글이
쉽게 써지는 것은 아니다


작가로서는 무명에 가까웠던 정문정 작가가 40만 부 이상의 판매고를 올리는 베스트셀러를 쓸 수 있게 된 건 바로 ‘읽히는 글을 쓰고야 말겠다.’는 그녀의 집념과 그에 상응하는 노력이 있었기 때문이지 않나 싶다. 쉽게 읽힌다고 해서 그 글이 쉽게 써진 것은 아니다. 정문정 작가의 인터뷰를 읽으며 새삼 깨달았다.


그래서 나는 글이 어렵다. 쓸수록 어렵게 느껴진다. 글쓰기 책이 벌써 여러 권 있는데도 글쓰기 관련 신간이 나오면 자꾸 눈길이 가는 이유다.


오늘도 브런치를 통해 종종 접하던 이하루 작가님이 신간을 내셨는데, 이게 또 글쓰기 관련 책이다. <내 하루도 에세이가 될까요?>라는 책인데, 제목부터가 구미가 당겼다. 이제 막 출간됐으니 전자책이 발매되려면 또 한참 기다려야겠지. 타향살이가 서러워지는 순간은 이렇게 불쑥 찾아온다.


아마도 내가 글쓰기가 쉽다고 느껴지는 날은 앞으로도 오지 않을 것 같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어렵고 힘든 글쓰기를 포기할 마음은 없다. 힘들고 쉽지 않다고 해서 글쓰기가 재밌지 않은 건 아니니까. 


내 글을 사람들에게 공개하고, 읽히고, 공감받는 일을 좋아하는 태생부터가 ‘관종’인 나는 오늘도 꾸역꾸역 글을 쓴다. 일단 쓰고 보는 것이다. 그렇게 별로고 재미없는 문장들도 모아놓고 보면 좀 나을 때가 있다. 오늘 글이 그렇다. 


나는 지금 베스트셀러를 쓰는 게 아니다. 그저 누군가에게 클릭되고, 읽힐 글을 쓸 뿐이다. 잘 써야 한다는 생각에 부담을 느껴 글이 멈출 때마다 까먹지 않고 되뇌어야겠다. 글쓰기를 포기하지 않기 위한 내 나름의 전략이다.               

매거진의 이전글 글쓰기에도 강약 조절이 필요하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