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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코붱 Jun 02. 2020

삶이 단순해졌다.

일주일이 [순삭]이다.

나는 칠칠맞다. 다르게 표현하면 엄청 덜렁대는 사람 중 하나가 나다. 찬장에서 접시를 꺼내다가도 서랍장 문에 몇 번이고 손가락을 찧여서 다치고, 내 무릎엔 언제 어디에 부딪혀서 생겼는지 모를 크고 작은 멍이 항상 있다. 이 뿐이면 좋으련만. 나는 일을 진행하는 데 있어서도 자주 덜렁댄다.


며칠 전, [글 읽는 밤]에 새로운 글의 낭독을 신청해주신 작가님 두 분께 해서는 안 될 실수를 저질렀다. 바로, 방송 업로드 예정 일자를 잘못 알려드린 것...!!!


한 분에겐 6월 **일이라고 알려드려야 할 것을 이미 다 지난 5월 **일이라고 잘못 기재했고, 또 한 분에겐 있지도 않은 <6월 31일>을 만들어서 해당 일에 방송이 업로드될 것이라고 알려드렸다. 


불행 중 다행으로 바로 실수를 알아채서 몇 분 뒤 후다닥 정정 메일을 보내드리긴 했지만, 내 마음과 머릿속은 이미 새하얗게 물들고 난 뒤였다. 다시는 겪고 싶지 않은 아찔한 경험이다.


이렇게 덜렁대고 칠칠치 못한 내가 <삶이 단순해졌다.>라는 지금껏 설명한 <나>와는 그다지 어울리지 않는 제목의 글을 쓰게 된 이유는 다른 게 아니다. 실제로 내 삶이 단순해졌기 때문이다.


그간의 내 활동들을 지켜본 사람들이라면 사실 삶이 <단순해졌다.>는 내 말이 믿기 어려울 수도 있다. 실제로 나는 최근 들어 내 글도 쓰고 (브런치를 포함한 인스타 피드와 책 원고 집필까지), 영상도 만들고, 남의 글도 읽으며 열심히 댓글을 달고 있다. 남편의 말을 빌리자면 <하루 종일 인터넷(브런치, 유튜브, 인스타)만 하고 있는 사람>처럼 보일 수 있다.


실제로 최근의 내 삶에서 인터넷(브런치, 유튜브, 인스타)이 많은 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내 삶을 미시적인 관점에서만 본 것에 불과하다.


나의 일상의 한 부분에만 집중하는 것이 아닌, 내 일상의 전체적인 흐름을 거시적인 관점에서 볼 때, 내 삶은 전에 없이 심플해졌다.


일단 매주 할 일이 정해졌다.

아직까지는 주 3회로 운영 중인 [글 읽는 밤]은 매주 수/금/일 밤 9시에 업로드 중이다.


수/금/일 업로드를 지키기 위해서는 적어도 하루 전엔 모든 작업 (인터뷰 진행, 대본 작성, 음성 편집, 영상편집, 완성본 체크 등)이 다 끝나야 한다.

 

처음부터 <하루 전 완성>을 고수했던 건 아닌데, 딱 한 번 책 원고 작업을 하다가 업로드 당일 오전부터 영상 편집을 시작하게 된 영상이 인코딩 과정에서 자꾸 에러가 나서 영상 공개 2시간 전에야 겨우 업로드를 끝마쳤던 적이 있었다. 눈앞이 몇 번이나 번쩍하고 등골이 몇 번이고 서늘해졌던 아찔한 경험이었다. 


그 날 이후로 <업로드 하루 전 완성>은 나의 첫 번째 철칙이 되었다.


이렇다 보니 나의 요즘 일상은 <수/금/일> 업로드에 맞춰 돌아가고 있다. 월요일엔 수요일 방송의 대본을 완성하고 미리 선정한 배경음악과 함께 몇 번이고 직접 읽어본다. 그렇게 거슬리는 단어나 표현 등이 없는지 체크한다.

 

화요일엔 수요일 방송에 쓰일 음성을 녹음하고 컴퓨터로 옮겨 편집까지 마무리한다. 보통 이 단계가 가장 시간이 오래 걸리지만 음성 편집만 끝내면 아이패드로 옮겨 영상 작업을 하는 것은 솔직히 말해 금방이다.


물론 인코딩까지 한 뒤 완성된 영상에 문제가 없는지 체크하는 시간은 좀 더 걸리지만 (글 읽는 밤의 영상의 길이는 최소 10분에서 최대 30분까지도 있기에) 이 작업이야말로 절대로 빼먹을 수 없는 작업 중 하나다. 


실제로 몇 번 완성된 결과물 안에 이상한 소리가 녹음되어 있거나, 배경음악과 말의 호흡이 맞지 않은 적이 종종 있어서 재작업을 하기도 했다. 만약 내가 <하루 전 완성>이라는 철칙을 고수하지 않았다면 해당 문제들을 발견했더라도 업로드 시간에 쫓겨 그대로 방송에 내보내야 했거나 방송 펑크라는 사상초유의 사태로까지 번질 수도 있었다. (앞으로도 그런 일이 생기지 않도록 더 주의해야 할 듯!!)


방금도 내일 업로드될 방송의 녹음을 끝마쳤다. 원래대로라면 바로 음성 편집을 해야 하는데, 생각보다 빨리 작업이 끝나서 틈나는 김에 이 글을 써보고 있다. 다른 사람의 글을 읽고 그에 관한 감상을 표현하는 글도 좋지만 나만의 글을 쓰는 일은 또 다른 재미와 맛이 있으니까.


어쩐지 잠깐 다른 길로 글이 샜는데, 이렇게 3번을 반복하다 보면 1주일이 금방 지나간다. 틈틈이 책을 읽으며 [책 읽는 밤]의 준비도 해보고 있다. 이번 책은 분량이 상당해서 다 읽고 소화해내는 데에 또 시간이 더 걸릴 것 같다. 하지만 그만큼 좋은 책임은 분명해서 욕심내지 않고 천천히 작업해보려고 한다.


오랜만에 새 글을 쓰니 기분이 묘하다. 좋기도 하고 설레기도 하고, 신나기도 하고. 써놓고 보니 다 좋은 표현이라 앞으로도 종종 이렇게 내 글을 써보긴 해야겠다. 


물론, <하루 전 완성>의 철칙을 고수해나가며 문제없이 모든 영상이 업로드될 수 있도록 잘 조절해 나가면서 말이다. 그래야 <요즘 글이 뜸하다!!!>라는 독자님의 애정 어린 투정(!)도 받지 않으면서 내가 좋아하는 영상의 제작도 꾸준히 이어갈 수 있을 테니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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