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인생의 계절
인생에도 계절이 있다면 지금 내 인생은 봄의 끝자락에 서 있는 것 같다.
퇴사를 하고 결혼을 하고 일본으로 이주해 경력이 단절된 채 제대로 된 직장은커녕 아르바이트 자리도 제대로 잡지 못했던 나의 지난날은 추웠다. 끝날 듯 끝나지 않았던 긴 겨울이었다.
그다지 길게 산건 아니지만 내 인생의 봄날은 다시는 오지 않을 것 같았다. 그런데 봄은 당연한 것처럼 내 곁에 이미 와있었다.
얼마 전 나는 드디어 첫 책을 출간했다. 2년 전 한 번 무산됐던 기획이었다. 그때 만약 내가 이 기획안을 포기했다면 내 책은 영영 세상의 빛을 보지 못했을 것이다.
어제부터 하나 둘 내 책에 대한 서평이 인터넷상에서 눈에 띈다. 인스타그램과 네이버 블로그에 올려주신 독자 분들의 감상을 한 자 한 자, 꼼꼼히 눈에 담았다.
몇몇 지인은 한국의 오프라인 서점에 진열되어 있는 내 책을 사진과 동영상으로 촬영하여 내게 보내주었다. 해외에 살고 있기에 서점에 진열된 내 책을 직접 보지 못하는 나를 위한 배려였다.
책에도 잠깐 소개했던 20년 지기 친구는 잘 안 보이는 곳에 꽂혀있던 내 책을 일부러 꺼내 잘 보이는 곳에 진열까지 해줬다고 한다. 그네들이 보내주는 대가 없는 친절에 어떻게 보답해야 할지 모를 정도로 가슴이 벅차올랐다.
그동안 되는 일 하나 없이 꼬이기만 하던 인생살이에 마음고생한 것을 이렇게 보답받는 걸까? 유신론자도 아니면서 나는 요즘 하늘에 있다는 어떤 분께 자꾸만 감사한 마음이 든다. 아니, 사실은 나를 포함한 모든 사람들에게 감사하다.
내 곁에서 누구보다도 단단히 나를 지지해주고 응원해주는 남편이 고맙고, 생전 책 한 권 본 적 없던 친정엄마가 삼일 만에 내 책을 다 읽고 참 좋다고 말해줘서 고맙고, 사업으로 밤낮 할 것 없이 바쁜 친정아빠가 틈틈이 내 책을 읽고 있어 줘서 고맙고, 책을 보시곤 나의 유튜브 채널과 브런치 활동을 전부 확인하신 뒤 그동안 열심히 살아와서 기특하고 대단하다고 말씀해주신 시어머님이 고맙고, 무엇보다도 나의 서툰 글이 한 권의 책이 되어 나오기까지, 그 모든 과정을 묵묵히 지켜봐 주고 응원해준 브런치의 구독자분들이 고맙다. 그리고 결국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해낸 나 자신에게도 고맙다.
행복하다는 것이 이런 것일까. 둘러보는 모든 곳에서 꽃이 피고 새순이 돋아난다. 덕분에 어지러운 회오리바람만 불어대는 것 같던 내 마음에도 봄바람이 살랑인다.
꿈꾸듯 살아가는 요즘이다. 하지만 이런 꽃놀이도 끝이 있음을 잘 알고 있다. 언제나 그렇듯 시간은 흐를 것이고 그사이 계절은 변할 것이다. 이미 그 변화를 스스로 느끼고 있기도 하다.
나는 이제 다가올 여름을 준비하려 한다. 꽃놀이는 실컷 했으니 이제는 다음 농사를 준비할 때다.
땅을 고르고 새로운 씨앗을 뿌려 다음번 수확을 위한 준비를 시작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