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남편을 사랑하는 방식
해가 많이 길어졌나 보다.
자다가 문득 잠이 깼는데 침실의 암막커튼 사이로 들어오는 햇살이 꽤 강하다.
너무 이른 시각이라 다시 잘까 하다가 그냥 일어났다.
습관적으로 화장실에 가서 볼일을 보고 컴퓨터 앞에 자리를 잡았다.
원래대로라면 여기에 물 한잔도 따라 마시는데, 우리 집 냉장고는 문 열 때마다 소리가 꽤 크게 나서 일단 참았다. 혹시나 남편이 깰까 싶어서다.
이 시간에 일어나면 좋은 점은 오직 내가 하고 있는 일 한 가지에만 집중할 수 있다는 것이다.
남편이 배가 고프진 않은지, 집이 더러운 건 아닌지, 밀린 빨래를 돌리기에 딱 좋은 날인 건 아닌지 등등
주부로서 일상적으로 챙겨야 하는 것들로부터 눈을 감을 수 있는 시간이라는 점이 이렇게 이른 시간에 일어나 글을 쓰게 한다.
배고프니까 밥 차려달라고, 집 청소 좀 하라고. 빨래는 언제 돌리냐고 남편이 내게 말한 적은 거의 없다. (아예 없는 건 아님)
이것도 거의 습관처럼 굳었다. 그냥 일상적으로 먼저 챙기게 된달까. 아니, 신경이 쓰인다고 말하는 것이 더 정확하다.
예전에 한 번 시어머니께서 그런 말씀을 하신 적이 있다.
그냥, 아들 챙기는 마음처럼 대하라고.
당시엔 그게 무슨 뜻인지 잘 몰랐는데 결혼 한 지 이제 만으로 2년을 채워가는 이 시점이 되어서야 이해가 됐다.
누군가의 배고픔과 외로움. 신체의 건강함과 심신의 안정에 대해서 누가 시키지 않아도 알아서 챙기고 염려하게 된다는 것.
내 배 아파 낳은 자식을 챙기는 마음이란 바로 이런 것을 말하는 게 아닐까 싶어 진 거다.
물론, 아직 아이를 임신하고 낳아본 경험도 없는 내가 이런 말을 한다는 것이 조금 걱정된다.
혹시라도 이 글로 인해 상처 받을 누군가가 생기진 않을까 염려되기에.
이틀 전 진행한 [글 읽는 밤]의 라이브 방송에서 나는 '내가 힘들거나 지쳤을 때 나를 일으키는 것 중에 하나'로 남편을 꼽았다.
나의 멘토이자 인생의 동반자인 남편이 내가 힘들거나 지쳤을 때 나를 일으켜준다고. 이 말에 단 한 톨의 거짓도 없다.
그렇기에 내가 남편을 마치 내 자식처럼 챙기고 염려하는 마음을 갖는 것 역시 당연하다.
내가 정서적으로 가장 약하고 위험해질 때 그런 나를 껴안아 일으켜 세워주는 존재에 대해서 마음을 쓰는 일은 결국 나를 위한 일이기도 하니까.
나는 내가 소중하기 때문에 남편도 소중하다.
나를 소중히 여기고 귀하게 여기기에 남편도 소중하고 귀하다.
딱 그 정도의 마음으로 내 남편에게 묻는다.
지금 배고프지는 않은지. 과일이 먹고 싶진 않은지. 너무 더운 건 아닌지.
내가 귀해서 남편도 귀하다.
(2020.06.21 06:12)
원래 이 글은 티스토리에 올릴까 하다가 <일본 생활기록부>에 더 어울리는 원고라 생각해서 브런치에 공개합니다.
라이브 방송에서 잠깐 말씀드렸던 <남편에 대해서 얘기하자면 책 한권도 거뜬히 씁니다>라는 말의 근거(?)중 하나는 바로 이런 소소한 이야기들만 엮어도 책 한권은 뚝딱 나올 정도라는 뜻이었어요 ㅋㅋㅋ
매우 개인적인 일(=일기) 스러운 내용이라 조금 걱정은 되네요...^^;
취향에 안 맞으셨다면 가볍게 읽고 넘어가 주시길 바랍니다..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