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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코붱 Jul 13. 2020

휴식이 필요해

다래끼가 났다

다래끼가 났다. 왼쪽 눈 아래쪽에 2개. 심하진 않고 크게 붓지도 않았지만 며칠 전부터 뻑뻑한 느낌이 들었던 바로 그쪽에 떡하니 자리 잡은 염증들. 때가 된 것이다. 진짜로 쉬어줘야 하는 때가.


얼마 전부터 좀 무리를 하긴 했다. 쓰고 싶은 글이 너무 많았고, 답변을 달아야 할 댓글도 있었고, 만들어야 할 영상도 있었다. 


해야 할 일과 하고 싶은 일. 좋아하는 일과 재밌어하는 일들이 하루 종일 24시간 내내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래서 달렸다. 겨우 찾은 나만의 페이스를 무시하고 나를 들뜨게 하고 설레게 하는 모든 일들에 춤을 추듯 달려들었다. 그리고 탈이 났다.


그나마 다행인 건 발견이 빨랐다는 거다. 한국에 있었다면 바로 안과에 가서 약 처방을 받았겠지만 일본은 병원비도 비싸고 약값도 비싸다. 작년에 한 번 치과에 가서 검진을 받았을 뿐인데 병원비만 2천 몇 백 엔을 냈다. 우리 돈으로 따지면 약 3만 원에 달하는 돈이다.


그렇게 한 번 일본 병원비에 데이고(?) 난 뒤로는 일본에서 병원에 가는 걸 극도로 꺼리게 됐다. 건강이 재산이라는 말은 진짜였다. 외국에 나와 살 땐, 그래서 우리 부부처럼 없이 살 땐 건강해야 한다. 


물론 상태가 심했다면 병원을 갔을 거다. 그래서 다행이라는 거다. 그나마 병원까지 갈 정도로 심각한 상태는 아니라는 것에 진심으로 감사했다.


“오늘은 컴퓨터 보지 마. 아이패드도 보지 말고 책도 보지 마.”


의사를 대신하여 처방을 내리던 남편의 말을 묵묵히 듣던 나는 마지막 말에 발끈했다. 책까지 보지 말라니. 그럼 나더러 하루 종일 뭐 하고 있으라고?? 투덜대는 내게 남편은 <종이책>은 허락해줬다.


그래서 오늘은 오전 내내 종이책을 좀 보다가 비타민 C를 챙겨 먹었다가 다시 종이책을 좀 보다가 이른 낮잠을 좀 자다가 일어나서 점심을 하고 또 종이책을 봤다.


그렇게 하루 만에 2권의 책을 빠르게 읽고 또 한 번 비타민 C를 챙겨 먹고서 눈 찜질까지 하다가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이렇게 <눈>을 쉬어본 적이 언제였지?


매주 목요일마다 아무것도 하지 않고 내가 하고 싶은 일만 하며 휴식을 취하고는 있지만 생각해보면 그때도 내 <눈>은 쉬지 못했다.


아이패드로 전자책을 보고 노트북으로 브런치를 보고 휴대폰으로 인스타를 봤다. 가끔 유튜브도 들어가 유튜브 스튜디오 메뉴에서 채널의 성장 지표들을 확인해보기도 했다. 한 마디로 내 눈은 열일 중이었다.


그래서였나보다. 

다래끼라는 극한의 처방이 내 눈에 내려진 것은.



오늘 하루 내 눈은 편안히 쉬었다. 그동안 내내 스스로를 자극하고 있던 화면들로부터 벗어나 아무것도 담지 않아도 되는 <자유>의 시간을 마음껏 보냈다.


비록 저녁 식사 후 노트북을 켜고 브런치를 보고 인스타를 확인하고 이메일을 쓰는 주인으로 인해 또다시 혹사당하고 있지만 이 정도는 참아주려는 것 같다. 아직까지 내 눈은 편안하다.


물론 다래끼가 완전히 없어진 건 아니라 한동안은 쉬다가 일하다가 쉬다가 일하다가를 반복할 것 같다. 


그게 참 고맙다. 나와 내 <눈>에 적절한 쉼의 시간을 줄 수 있어서. 


눈이 좀 뻑뻑하고 피로해진다 싶으면 모니터를 끄고, 핸드폰을 놓고 의자에 기대 눈을 감고 휴식을 취할 수 있는 좋은 변명이 생겨서.     

    


(2020.07.13 22: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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