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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코붱 Jul 02. 2020

나의 <나비>에게

7층에 사는 우리 <나비>

이 고양이와의 인연을 말하자면 작년 겨울로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때는 2019년 11월 29일. 평일 아침 9시 전까지 분리수거용 쓰레기를 내놔야 하는 맨션의 규칙상 그날도 플라스틱 쓰레기를 분리수거장에 버리고 집으로 올라오는 길이었다.


복도 끝 웬 현관문 앞에 고양이 한 마리가 오도카니 앉아 있는 것이 아닌가.


이 사진은 처음 발견했을 때의 사진이 아닌, 나에게 실컷 재롱을 부리고 나서 집으로 들어가고 싶다는 의사표현을 하는 장면


고양이를 발견한 순간 나는 얼어붙었다. 나는 동물을 무서워한다. 좋아하는데도 그렇다. 목줄이 매어있고 주인이 옆에 서있어도 덩치가 큰 동물(주로 산책 중인 큰 개)과 마주칠 때마다 그 동물이 내 시야에서 사라질 때까지 내 몸은 굳어있곤 했다.


고양이는 큰 개들에 비하면 턱없이 등치가 작은데도 불구하고 목줄이 없고 주인이 없는 상태의 동물이 내 눈앞에 나타난 것에 대한 공포심으로 내 몸은 또다시 얼어붙었다.


그런 나를 보고 고양이는 잠깐의 주저함을 보이다가 곧 사뿐사뿐 내게로 발걸음을 옮겼다. "냥!" 작게 우는 울음소리가 마치 나에게 만나서 반갑다고, 무서워하지 말라고 상냥하게 말을 거는 것만 같았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당시에 나는 고양이에 대한 친밀도가 맥스를 찍고 있었다는 점이다. 나와 남편은 나중에 가계 사정이 넉넉해지면 꼭 고양이를 키우자고 다짐했을 정도로 엄청난 애묘가(愛猫家)다. 당시의 나는 유튜브에서 몇몇 고양이들의 랜선 집사를 자처하고 있기도 했다.


그러던 와중에 눈앞에서 떡하니 살아 움직이는 고양이를 만났으니. 나의 마음은 너무 좋아 어쩔 줄 모르는 마음 반, 그럼에도 불구하고 무서워서 차마 만지지는 못할 것 같은 마음 반으로 갈려 열심히 싸워댔다.



이런 나의 갈등을 아는지 모르는지, 고양이는 처음 보는 내게도 살갑게 다가와 내 다리에 제 몸을 비볐다. 또다시 "냥!" 울며 나에게 자꾸 인사를 했다. 결국 나는 쭈그려 앉아 고양이의 머리 위로 손을 올렸다.


"나비야(이름을 모르는 고양이는 어쩐지 다 나비라고 부르게 된다), 왜 이러고 있어? 집이 어디야?"


알아듣지 못할 인간의 언어에 고양이는 그저 내 손가락에 제 코를 부딪혀 코인사를 하고 내 손에 제 머리를 비비며 자꾸만 만져달라 한다. 가끔 복도 벽에 몸을 비비기도 하고 내 다리 사이로 왔다 갔다 하기도 한다. 이 모든 행동이 고양이가 제 영역을 표시하는 뜻이라는 것과 친밀감을 나타내는 행동이라는 것을 내가 알고 있어서 다행이었다. 유튜브를 통한 선행학습이 빛을 발하는 순간이었다.


그렇게 이름도 모르는 나비의 몸을 쓰다듬고 여전히 이 아이가 알아듣지 못할 인간의 언어로 "이제 집에 가자~"따위를 말하고 있던 나는 슬슬 걱정이 됐다. 대체 이 고양이가 어디서 똑 떨어졌는지 알 길이 없어서였다.


일반적인 한국의 아파트와는 달리 일본의 맨션(=한국의 아파트 개념)은 거의 한 건물뿐인 곳이 많다. (아닌 곳도 물론 있음) 그렇기에 내가 사는 맨션도 딱 한 개 동으로 이루어진 건물이었다. 현관에 보안카드를 대어야 문이 열리는 고급 맨션까지는 아니지만 우리 맨션에 들어올 수 있는 입구는 딱 한 군데뿐이다. 그리고 내가 사는 곳은 1층도 2층도 아닌, 무려 7층이었다. 그러니 길 고양이는 아닐 것 같았다.(내가 사는 동네에서는 아직까지 길 고양이를 한 번도 본 적이 없기도 하다) 나비의 목에 예쁘게 매어져 있는 빨간색 목줄만 봐도 나비가 주인 없는 길고양이는 아니라는 확신이 들었다.


그렇다면 이 맨션에 나비의 주인은 살고 있을 터. 그런데 대체 어떤 집이 나비의 집일까. 만약 주인을 못 찾아주면 이 아이는 어떻게 되는 거지? 한동안 우리 집에서 보호해야 하는 걸까? 우리 집엔 고양이 용품은커녕 사료도 하나 없는데. 당장 필요한 건 역시 먹는 거겠지? 참치캔이라도 따서 우선 줘야 하나?


따위의 생각을 하며 고민하고 있던 그때, 갑자기 나비가 몸을 휙 돌려 제 갈길을 가기 시작했다. 그리곤 한 집의 현관문 앞에 서서 나를 돌아봤다. 마치 나의 고민을 이미 다 알고 있기라도 한 듯이 현관문 틈 사이로 제 얼굴을 집어넣으려 버둥거렸다. '여기가 우리 집이야'라고 말해주는 것 같았다.


잠시 고민하던 나는 그 집의 초인종을 눌렀다. 얼마 안가 베이지색 머리칼에 새파란 눈을 한 중년의 부인이 현관에서 나왔다. 지금껏 내게 재롱을 부리고 제 집을 찾아달라던 나비의 털과 눈 색깔을 꼭 닮은.



그렇게 안면을 트게 된 나비와 주인분은 그 후로도 종종 만나곤 했다. 가끔씩 주인분이 환기를 목적으로 현관문을 열어둘 때마다 나비가 집 앞 복도로 나와 서성거렸기 때문이다.


사실 좀 걱정되기도 했다. 호기심이 많은 고양이들이 가끔 이렇게 현관문이 열려있을 때마다 집 밖으로 나와 영영 집으로 못 돌아오는 경우도 있다는 얘기를 들었기에.


그나마 다행인 것은 우리 맨션의 비상계단문은 평소 굳게 닫혀있다. 문 자체도 육중한 철문이다. 나비의 솜뭉치 같은 냥냥 펀치로는 절대 열리지 않을 묵직한 문이다.


그러니 가끔 이렇게 마실 나오 듯 나비가 집 앞 복도를 서성거려도 일단 큰 걱정은 덜었다. 그래도 만약의 경우란 것이 있기에 내가 좀 더 신경을 써보기로 마음먹었다.


나는 요즘도 하루에 한두 번은 집 앞 복도에 나와본다. 혹시나 우리 나비가 또다시 복도를 서성이며 자기만의 산책을 즐기고 있지 않을까 싶어서.






오늘은 목요일이다. 우리 맨션은 목요일에 상자나 종이를 모아서 버린다. 한 손엔 상자를 한 손엔 우편함에 넣을 우편물을 들고 집을 나선 내 눈앞에 또다시 나비가 나타났다.



얼마 전에는 마스크를 쓰고 있던 나를 보고 모르는 사람인 줄 알고 잔뜩 경계를 하더니 오늘은 마스크를 쓰고 있었음에도 아무런 경계도 없이 또다시 사뿐사뿐 내게 다가왔다. 그리곤 언제나처럼 아무런 거리낌도 없이 제 머리와 몸을 내게 허락한다.


나비를 만나는 횟수가 늘어날수록 내 손도 점점 대담해져서 욕심껏 나비의 머리를 만지고 엉덩이를 팡팡! 두드려준다. 그런데 우리 나비는 엉덩이를 두드릴 때마다 파스스 놀란다. 그럴 때마다 제 머리를 내 손에 갔다 댔다. 마치 엉덩이 말고 머리를 쓰다듬어 줘!라고 말하듯이.


그렇구나. 우리 나비는 머리가 더 좋은가 보구나. 이렇게 또 하나 나비의 모르는 면을 알아간다. 오늘은 나비가 내 손과 발을 핥아줬다. 이것도 고양이가 친밀감을 표하는 행동 중 하나라고 한다. 내가 나비에게 조금씩 마음을 열었던 것처럼 나비도 내게 제 마음을 조금씩 열어가는 것만 같다.



오늘도 열심히 나와 놀던(놀아주던) 나비가 곧 제 갈길을 갔다. 다 놀았다는 뜻이다. 아쉽지만 다음을 기약하며 나비의 집의 현관문을 살짝 열었다. 그런데 이번엔 현관문을 아주 조금만 열어두신 것 같았다. 대개의 경우 문을 살짝 열면 나비가 그 안으로 쏙! 들어가곤 했는데 이번엔 못 들어간다. 몇 번 시도하던 나비가 안 되겠다는 듯이 내 얼굴을 물끄러미 바라봤다. 나는 초인종을 눌렀다.


곧 익숙한 파란 눈의 주인분이 나오셨고 나는 용기 내어 나비의 이름을 물어봤다. <시로>라고 한다. 시로는 우리말로 하면 <흰색>이라는 뜻인데, 고양이에게 붙여주는 이름이니 우리말로 하면 <흰둥이> 정도가 알맞은 표현일 것 같다.


나의 나비에겐 <시로>라는 이름이 있었구나. 앞으로는 녀석을 만날 때마다 제대로 된 이름을 불러줘야겠다. 그리고 자꾸 까먹는데 다음에 마트에서 장 볼 때는 꼭! 츄르(고양이용 간식)를 사서 우리 집 현관 앞에 쟁여둬야겠다.


나비와 격렬히 놀고 난 후의 훈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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