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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코붱 Jul 15. 2020

그거, 근거 있는 말인가요?

나만의 <개똥철학>이 필요한 이유

유시민 작가의 30년 베스트셀러 영업기밀이라는 화려한 캐치프레이즈를 가지고 있는 책 <유시민의 글쓰기 특강>에는 이런 내용이 나옵니다.


말이나 글로 타인과 소통하려면 사실과 주장을 구별해야 한다. 사실은 그저 기술하면 된다. 그러나 어떤 주장을 할 때는 반드시 근거를 제시함으로써 옳은 주장이라는 것을 논증해야 한다.

<26p, 유시민의 글쓰기 특강, 유시민 저, 생각의 길(2015)>


이처럼 작가가 글을 통해 어떠한 주장을 할 때는 그에 합당한 근거를 제시해야 합니다. 그렇지 않고서 단순히 자기만의 생각, 누군가에게 들은 어떤 이야기만을 가지고 글을 쓴다면 그 글에 대한 신뢰도가 급격히 떨어질 수밖에 없거든요.


그런데 글쓰기를 이제 막 시작한 초보 작가 입장에서는 어디까지가 주장이고 어디까지가 사실인지를 구별하기가 여간 어려운 게 아닙니다.


저의 못쓴 글, <32살>에도 이걸 구별하지 못해서 저지른 실수들이 있는데요, 

지금부터 하나씩 그 내용에 대해 살펴보고자 합니다.






3년 전, 서른을 목전에 둔 29살의 겨울은 유독 마음이 추웠다. 30살의 심리학, 서른 살엔 미처 몰랐던 것 등등.. 유독 30이라는 숫자와 관련된 자기 계발서와 에세이 서적이 많은 것은 비단 나뿐만이 아닌 대한민국의 수많은 20-30대 또한 30이라는 나이에 대한 이유 없는 막막함과 무거움을 느꼈기 때문일 것이다. 



이 문단에서 제가 고치고 싶은 부분에 밑줄을 그어보았어요. 어떠신가요? 여러분들이 보시기에도 왜 이 문장에 제가 빨간색 밑줄을 쫙쫙 그었는지 이해가 되시나요? 제가 이 문장을 고치고 싶다고 느낀 이유는 다음과 같습니다.


첫째. 30이라는 숫자와 관련된 자기 계발서와 에세이 서적이 많다는 근거는 어디에 있는가?


둘째. 대한민국의 수많은 20-30대가 이유 없는 막막함과 무거움을 느꼈다는 근거 또한 어디에 있는가?


한 마디로 <근거>가 빈약하기 때문입니다. 자기만의 취향을 밝히는 내용이었다면 사실 문제 될 것이 없습니다. 하지만 원문의 내용은 본인만의 취향 고백이 아닙니다. <에세이 서적이 많다>, <느꼈기 때문일 것이다>라며 자기만의 생각에 불과한 것을 마치 ‘사실인양’ <주장>하고 있습니다. 


앞서 소개했던 유시민 작가의 말에 따르면 <주장>을 할 때는 반드시 <근거>를 제시해야 합니다. 그렇기에 이 글을 좀 더 자연스럽게 고치기 위해서는 빈약한 근거를 보완함으로써 주장에 대한 힘을 싣거나 본문의 내용을 <주장>이 아닌 <자기만의 취향 고백>의 글로 고쳐 써야 합니다. 저는 이 글을 다음과 같이 바꿔보고 싶어요.



첫 번째 수정안) 빈약한 근거를 보완하기

3년 전, 서른을 목전에 둔 29살의 겨울은 유독 마음이 추웠다. 교보문고 홈페이지에서 <서른 살>이라는 키워드로 검색을 하면 오늘 기준으로 513개의 상품이 뜬다. 이렇게나 많은 책에 <서른 살>이라는 단어가 사용되었을 줄이야.

그만큼 많은 사람들이 <서른 살>이라는 단어 앞에 나와 같은 어려움과 고민을 안고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순간 외롭던 마음이 조금 덜 외로워졌다.



두 번째 수정안) 취향 고백의 글로 바꾸기

3년 전, 서른을 목전에 둔 29살의 겨울은 유독 마음이 추웠다. 서점에 가서 책을 봐도 30살의 심리학, 서른 살엔 미처 몰랐던 것 등등 ‘서른 살’이라는 단어가 들어있는 제목들만 눈에 띄었다.

이런 책들이 요즘 유행하나? 아니면 나처럼 29살이라는 나이에 대해 이유 없는 막막함과 무거움을 느끼는 사람들이 많은 걸까?



2개의 수정안 모두 완벽히 마음에 들지는 않지만 최소한 <빈약한 근거>로 인해 그다지 신뢰가 가지 않는 문장들로만 이루어진 원문보다는 한결 나아진 것 같습니다.


이 정도만 해도 충분히 설명이 된 것 같은데 안타깝게도 앞서 소개한 것들보다 더한 것이 하나 남아있어 마저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현대의학의 발달로 인간의 기대수명이 100세에 가까워지고 있는 요즘, 32살은 아직 기대수명의 1/3도 채 되지 않았다. 책이나 드라마에서 1/3 지점이란 이제 막 등장인물의 소개와 스토리라인이 전개되는 시점이자 이어지는 스토리의 개연성을 위한 포석을 까는 부분이라고 생각한다. 우리는 의도했건 의도하지 않았건, 남은 인생의 2/3을 위한 이야기를 스스로 만들어 가고 있었다. 바로 삶의 순간순간 내리게 되는 선택들을 통해서 말이다. 




엄밀히 따지자면 <인간의 기대수명이 100세에 가까워지고 있다>는 것 역시 관련된 기사나 권위자의 저서 혹은 논문의 내용을 인용하는 편이 더 좋다고 생각하는데요, 일단 그 부분은 차치하고서 다음 문장으로 넘어가 보겠습니다. 


‘책이나 드라마에서 1/3 지점이 등장인물의 소개와 스토리 라인이 전개되는 시점’이라는 것은 어떠한 근거로 말하는 것일까요?


‘이어지는 스토리의 개연성을 위해 포석을 까는 부분’이라는 것은 또 어디서 나온 발상인 걸까요?


전부 다 <자기만의 생각>입니다. 

그래서였을까요? 원문을 썼을 때 저는 문장의 말미에 이러한 말을 덧붙입니다. <~생각한다.>


‘어디까지나 이건 나의 개인적인 생각이다!’라는 것을 강조하고 싶었나 봅니다. 하지만 개인의 생각을 말하고자 했다면 <생각한다> 고만 말하고 끝낼 것이 아니라 그러한 생각을 하게 된 이유에 대해서도 함께 풀어써줘야 독자에게 좀 더 친절한 글이 됩니다.


이에 대한 좋은 예가 있는데요, 바로 얼마 전에 공개했던 제 글 <내가 귀해서 남편도 귀하다>에는 이런 내용이 나옵니다.


이틀 전 진행한 [글 읽는 밤]의 라이브 방송에서 나는 '내가 힘들거나 지쳤을 때 나를 일으키는 것 중에 하나'로 남편을 꼽았다.

나의 멘토이자 인생의 동반자인 남편이 내가 힘들거나 지쳤을 때 나를 일으켜준다고. 이 말에 단 한 톨의 거짓도 없다.

그렇기에 내가 남편을 마치 내 자식처럼 챙기고 염려하는 마음을 갖는 것 역시 당연하다. 내가 정서적으로 가장 약하고 위험해질 때 그런 나를 껴안아 일으켜 세워주는 존재에 대해서 마음을 쓰는 일은 결국 나를 위한 일이기도 하니까.

나는 내가 소중하기 때문에 남편도 소중하다. 나를 소중히 여기고 귀하게 여기기에 남편도 소중하고 귀하다.

딱 그 정도의 마음으로 내 남편에게 묻는다. 지금 배고프지는 않은지. 과일이 먹고 싶진 않은지. 너무 더운 건 아닌지.

내가 귀해서 남편도 귀하다.


이 글을 통해서 제가 말하고자 했던 생각은 <내가 귀해서 남편도 귀하다>였습니다. 앞서 소개한 <32살>이라는 글과 이 글의 가장 큰 차이점은 <내가 귀해서 남편도 귀하다>라는 자신의 생각을 밝히면서 왜 그런 생각을 하게 되었는지에 대한 <나름의 이유>를 풀어썼다는 점입니다. 이 이유들이 독자들로 하여금 <납득>이 가고 그럴만하다는 <공감>을 얻는다면 그 글은 독자에게 친절한 글이자 이해하기 쉽고 받아들이기도 편한 글이 됩니다.






글쓰기에 있어서 제 마음속의 스승으로 삼고 있는 강원국 작가는 본인의 저서 <강원국의 글쓰기>를 통해 이렇게 말했습니다.



하루에 하나씩 내 생각을 정리해보자.
나만의 개똥철학이 생긴다.

<116p, 강원국의 글쓰기/강원국 저/메디치>




나만의 개똥철학은 <나만의 이유>에서 나옵니다. 

나만의 이유는 <나만의 생각>에서 나옵니다. 

나만의 생각은 <나만의 관점>에서 주로 시작됩니다.



자신만의 <관점>을 가지고 어떠한 <생각>을 하고 그렇게 생각한 <이유>에 대해 친절히 풀어쓴다면 어떤 글을 썼을 때 최소한 “그거, 근거는 있는 말인가요?”라는 소리는 듣지 않을 것입니다.     







여기까지가 제가 쓴 못 쓴 글 <32살>의 못난 점을 요리조리 뜯어보며 제가 생각하는 가장 저다운 글이자 가장 쓰기 편하고 읽기도 편한(편하길 바라는) 글을 쓰는 저만의 글쓰기 노하우였습니다.


다음 글은 <새로 써보는 못난 글, 32살 (2020년 버전)> 이 될 예정입니다 :)


그리고 다음 글이 발행된 이후에는 아마 한동안 글쓰기 노하우와 관련된 글의 발행은 지금보다도 더 뜸~해질 것 같아요.


새롭게 제안받은 일이 있어서 당분간은 유튜브와 새로운 일, 10월 출간 예정인 전자책 원고 집필에 집중해봐야 할 것 같아서요.. T_T


그래도 이 매거진은 내년까지 쭉 이어갈 생각으로 개설한 거라서요, 좀 더 느긋~한 주기로 연재되는 것이지 아예 마무리하겠다는 건 아니에요! ^^


아마 새롭게 제안받은 일을 제가 해나가면서 <글쓰기>에 대해서만큼은 더더더 할 말이 많아질 것 같기에 (그만큼 저는 어어어어어엄청 고생할 것 같지만, 그게 다 피가 되고 살이 되리라 믿습니다..!!) 이 매거진의 연재 텀은 더 길어져도 내용만큼은 전보다 더 충실해질 것이라고 자신합니다 :)


그럼, 다음 글에서 다시 인사드릴게요! 오늘도 길고도 부족한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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