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코붱 Aug 05. 2020

백수 라이터라는 새로운 길을 걸어가며

고백하자면 취업이 최우선이라고 생각했던 시절도 분명히 있었다. ‘돈이 있어야 뭘 하든 하지’라는 생각으로 취업을 했고, 일을 했고, 돈을 모았다. 하지만 그게 다였다. 돈만 모였다. 돈을 모았지만 하고 싶은 무언가는 할 수 없었다. 아니, 하고 싶은 일이 뭔지, 돈 외에 내가 원하는 게 있긴 한 건지 나조차도 점점 알 수 없어져만 갔다.


계약직으로 입사했던 두 번째 직장의 면접에서 나는 이렇게 말했다.


“이 회사에서 누구와도 대체될 수 없는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우리 회사를 지원하게 된 이유와 입사 후 포부에 대해 말해보라는 질문에 대한 답이었다. 그때 옆에서 면접 상황을 지켜만 보고 있던 젊은 인사과 직원이 처음으로 입을 열었다.


“한마디만 해도 될까요?”


무슨 말을 하려는 걸까? 긴장됐지만 티 내지 않고 나는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가 말했다.


“그런 일은 없어요.”


회사는 한 사람이 없다고 안 돌아가는 곳이 아니라고, 만약 그런 회사가 있다면 그 회사는 그다지 좋은 회사가 아니라고 했다. 속사포처럼 쏟아지던 그 직원의 말에 내가 뭐라 답했는지는 정확히 기억나지 않는다. 다만, 몇 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선명히 기억하고 있는 건 그런 일은 없다는 딱 한마디다.


지금까지의 내 경험으로만 미루어보면 그 직원의 말은 틀린 것이 없었다. 한 사람이 없으면 돌아가지 않는 회사 같은 건 존재하지 않았다. 아니, 존재한다고 해도 대체될 수 없는 그 한 사람의 인생이 너무나도 피곤하고 우울해진다는 것을 절실히 깨달았다. 그렇게 호기롭게 말한 탓이었는지는 몰라도 나는 한동안 대체될 수 없는 누군가가 될 심산으로 직장생활에 내 모든 것을 올인했고, 그 결과 나 자신을 잃어버렸다.


회사에서 대체될 수 없는 한 사람이 된다는 건 이런 의미였을지도 모른다. 대체되지 못하는 그 사람의 모든 에너지와 시간, 삶의 전부를 회사에 바쳐야 한다는 뜻일지도 모른다. 그 사람을 대체할 수 있는 인력이 없는 회사란 결국 그 한 사람에게만 의지한 채 돌아간다는 뜻일 테니까. 그런 회사는 좋은 회사가 아니다. 그리고 나 역시 그런 ‘일’을 원한 건 아니었다.


대체될 수 없는 사람이 되고 싶다는 내 뜻에는 지금도 변함이 없다. 하지만 무조건 회사 안에서만 대체될 수 없는 사람이 되고 싶은 건 아니다. 이 땅 위에 태어나 살아가고 있는 수억 명의 사람 중에서 대체될 수 없는 ‘일’을 하는 존재가 되고 싶을 뿐이다.


나는 '백수 라이터'다


회사라는 틀에 갇히지 않고 내가 원하는 대로 느끼고, 탐구하며, 깨닫고, 행동하면서 나만의 일을 만들어나가는 사람이 되기를 꿈꿨다. 그 결과 나는 ‘백수 라이터’가 되었다.


백수 라이터는 ‘백수’와 ‘라이터(writer)’의 합성어로 내가 만들어 낸 단어다. 작가라고 하기엔 내 이름 석 자 박힌 책 한 권 낸 적도 없고, 백수라고 하기엔 아무것도 안 하고 놀고 있지만은 않은 지금의 나를 표현할 수 있는 단어가 딱히 없었다.


하루 대부분을 글과 관련된 활동에 투자하고 있지만, 직장에 속해있지는 않은 백수의 삶도 동시에 사는 나를 설명하기 위해서 나는 아예 새로운 단어를 만들어냈다. 백수이자 라이터, 줄여서 백수 라이터.


생각해보면 20년 전만 해도 유튜버(youtuber)라는 단어가 세상에 존재하지 않았다. 2005년 2월 14일, 유튜브(Youtube)라는 기업이 생기기 전까지 유튜버라는 단어는 필요하지 않았으니까.


유튜브라는 미디어 플랫폼이 세상에 등장하고 이를 사용하는 다수의 사용자가 생겨나면서부터 유튜버라는 단어도 탄생했다. 고로 백수이자 라이터라고 주장하는 나라는 사람이 나타났으니 ‘백수 라이터’라는 말도 생겨났다.


나를 표현하는 새로운 이 단어가 나는 참 좋다. 쓸수록 입에 착 붙는다. 앞으로도 나는 백수 라이터로서 인생을 살아가보려고 한다.


나보다 먼저 이 길을 걸어간 사람이 없다는 건 조금 불안하고 막막하게 느껴지기는 하지만 그만큼 기대되고 설레기도 한다. 아무도 밟지 않은 땅에 가장 먼저 발을 디뎌 나만의 발자국을 찍어 나가는 일이니까. 그렇게 나만의 길을 만들어나가는 일이니까.


최근에 내가 새롭게 시작한 일 중에서 가장 공을 들이고 있는건 역시 유튜브다. 약 2년의 노력 끝에 어느 정도 자리를 잡은 브런치에 비해서 유튜브는 이제 막 첫 삽을 뜬 단계라 이래저래 신경 쓰이는 일이 많다.


앞으로 내 유튜브 채널이 얼마나 성장할지는 잘 모르겠다. 하지만 나는 올해 말까지 구독자 수가 몇 명이든, 조회 수가 몇 회든 상관하지 않고 매주 2개씩 꾸준히 영상을 만들어 업로드하려고 한다.


단 한 명의 구독자도 없었지만 묵묵히 브런치에 6개의 글을 올렸던 그때처럼 이번에도 그렇게 나만의 약속을 지켜 나가다 보면 8차선 고속도로는 아니더라도 작은 오솔길 하나 정도는 만들 수 있지 않을까?


그런 기대감과 함께 끝까지 해내겠다는 나만의 다짐을 새겨놓고자 나는 오늘 이 글을 썼다. 어쩌면 가장 먼저 밝혔어야 할 ‘백수 라이터’의 탄생 비화를 뒤늦게나마 밝히면서.



코붱(글 쓰는 백수, 백수 라이터)

이전 05화 백수에 대한 새로운 정의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