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개 백수라고 하면 ‘아무런 경제적 활동을 하지 않고 집에서 놀고먹기만 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하기 쉬운데 내 입장에서 말하자면 꼭 그렇지만은 않다. ‘돈’에 초점을 두고 보자면 맞는 소리다. 백수에겐 들어오는 돈이 없다. 월세, 휴대폰 요금, 보험료, 수도세, 전기세 등등 줄줄이 나가는 비용만 있지 매달 정해진 날짜에 따박따박 들어오던 월급은 퇴사와 동시에 자취를 감춘다.
그렇기에 돈의 관점에서만 보자면 백수는 한없이 약해진다. 시간이 지날수록 백수는 돈 앞에 더 움츠러든다. 하지만 이런 백수도 기세등등해지는 때가 있다. 바로 ‘시간’ 앞에 섰을 때다.
백수는 시간 부자다. 기상 시간부터 식사 시간과 노는 시간, 잠드는 시간까지 하루 24시간을 컨트롤할 수 있는 절대적인 권한을 갖게 된다. 출근 시간과 퇴근 시간이 따로 없고 점심시간이 정해져 있지 않은 백수는 눈을 뜨면 기상 시간이고 배가 고파지면 식사 시간이다. 친구가 보고 싶으면 친구를 보러 가면 되고 여행을 하고 싶으면 오늘 당장이라도 티켓을 끊어 떠날 수도 있다.
이처럼 그날 무슨 일을 하며 하루를 보낼지가 전적으로 자유의지에 달려있다. 가끔 부모님이 “잠 좀 그만 자라”, “TV 좀 그만 봐라”라고 핀잔을 줄 때조차도 부모님 등쌀에 못 이겨 실제로 일어날지, 못 들은 척 계속 잘지 혹은 TV를 끄고 방으로 뒷걸음질 칠지, 그대로 보고 있던 채널에 시선을 고정하고 있을지는 모두 백수의 마음먹기에 달려있다.
물론 이런 나태한 생활은 길게 이어질 수가 없다. 주변의 눈총 때문도 있지만 본인 스스로 자연스레 깨닫게 된다. 이대로 살다간 큰일 날 수도 있다는 걸 통장 잔고가 생각보다 빨리 줄어들 때 깨닫게 된다.
퇴직금과 마지막으로 받은 월급 등으로 제법 두둑했던 통장 잔고의 앞자리 숫자라도 바뀌는 순간이 오면 백수의 초조함은 극에 달한다. 이대로 있는 돈만 다 까먹을 것 같고, 뭐라도 해서 다시 돈을 벌어야 할 것 같다. 한동안 로그인하지 않아 까먹고 있던 취업 사이트의 비밀번호를 찾아 로그인하고 종일 채용공고를 뒤적이기 시작한다. 그렇게 찾아봐도 마땅한 일자리를 발견하긴 쉽지 않고, 결국 깊은 한숨만 나온다.
이때부터 백수의 삶은 마냥 여유롭고 행복하지만은 않게 된다. 잠을 자도 개운하지 않고, 밥을 먹는 것도 어쩐지 눈치가 보이며, TV를 보다가도 가족들이 집에 들어오면 슬그머니 자리에서 일어나 제 방으로 쏙 들어가게 된다.
그런 삶은 더이상 행복하지가 않다. 마음 편히 쉬고 싶어서, 하고 싶은 일을 해보고 싶어서 어렵게 퇴사했는데 하루하루 또다시 주변의 눈총과 자신의 불편한 마음을 버티며 살아야 한다면 직장을 다닐 때와 별반 다를 게 없다.
이렇게 되기 전에 스스로 자신의 삶에 대해서 제대로 된 방향을 잡아보는 편이 좋다. 앞서 말했듯 백수에겐 남는 게 시간이다. 그만큼 자신에게 주어진 시간을 어떻게 활용했느냐에 따라 백수의 하루는 스스로 돌아봐도 알차고 만족스럽게도, 또는 아무것도 안 하고 시간만 낭비했다고도 느껴질 수 있다.
가진 거라곤 시간밖에 없는 사람이 시간을 허투루 쓴다는 건 손에 쥐고 있는 돈다발을 길거리에 마구 뿌리는 것과 같다. 돈은 은행에 얌전히 넣어만 둬도 이자가 붙는다. 하지만 시간은 붙잡아 둘 수가 없다. 지나가면 그뿐이다. 아무리 돈이 많은 재력가라도 시간을 돈으로 살 수는 없다.
퇴사한 이유 중 하나도 돈은 벌지만, 몸은 망가져가서다. 나를 위해 하는 일은 아무것도 없이 나이만 먹을 순 없다는 생각에서였다.
이런 면에서 보면 백수는 돈도 못 벌고 아무것도 못하는 루저가 아니라 돈 버는 일만 제외하고 뭐든 다 해볼 수 있는 ‘진정한 승부사’라고 나는 생각한다.
헤르만 헤세는 ‘에밀 싱클레어’라는 필명으로 발표한 본인의 자전적 소설 『데미안』에서 이렇게 말했다.
새는 알에서 나오기 위해 투쟁한다.
알은 세계다.
태어나려고 하는 자는 누구든 하나의 세계를 파괴하지 않으면 안 된다.
이제껏 익숙했던 회사에 다니던 삶을 벗어나 ‘회사가 없는 삶’을 살고자 하는 백수는 하나의 알을 깨고 나오고자 몸부림 치는 새와 같다. 그래서 힘들다. 익숙한 세계를 뚫고 나오려 발버둥치는 일이 쉬울 수가 없다.
그동안 살아왔던대로 회사에 들어가 일을 하고 월급을 받으며 사는 게 편하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부정하지 않겠다. 어쩌면 회사에 다니는 일이 회사가 없는 삶을 살아가기 위해 자기만의 일을 찾고 그 꿈을 이루고자 고군분투하는 것보다 편할지도 모른다. 그동안의 짬밥이 있기 때문이다. 행복하진 않아도 어떻게 하루하루를 버텨낼 수 있는지 알기에 그렇다.
하지만 막막하다고 해서,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고 해서 아무것도 하지 않은 채 또다시 원치 않는 삶을 살게 되는 건 좀 아깝지 않은가?
인생은 게임이 아니다. 재도전이 없다. 모두가 평등하게 단 한 번만 살 수 있다. 내가 원했던 삶은 이런게 아니라고, 이렇게 살고 싶진 않았다고 한 번이라도 후회 해봤다면, 그래서 퇴사라는 쉽지 않은 결정을 내린 사람이라면 무슨 일이든 해낼 수 있다.
생각한 대로 살지 않으면 사는 대로 생각하게 된다고 한다. 백수 시절은 내가 생각한 대로 인생을 살아볼 기회다. 어렵게 얻어낸 천금 같은 시간을 오지도 않은 미래에 저당 잡혀 불안에 떨며 흘려보내지는 말자.
행여나 금전적으로 어려워져서 혹은 다른 이유로 인해서 다시 원치 않는 일을 하며 살게 된다 하더라도 해보고 싶은 일에 실제로 도전해 본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은 다르다. 삶을 대하는 태도에서 차이가 난다.
주어진 삶에 순응하며 그저 사는 것과 자신의 삶을 스스로 개척하며 살아가는 인생 중 어느 쪽이 더 매력적인가?
이제껏 살아본 적 없는 세상에서 여태껏 해본 적 없는 생각으로 지금과는 다른 행동을 하게 되는 순간 백수의 삶은 더 이상 쓸모없는 시간 낭비가 아니게 된다. 백수에 대한 새로운 정의가 필요한 건 그래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