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글 쓰는 백수다. 혹자는 이런 나를 작가라고도 칭하지만 아직 내 글로 책 한 권도 내본 적도 없고, 땡전 한 푼 벌어본 적 없는 나로서는 작가라는 명칭 옆에 내 이름을 나란히 두는 게 어쩐지 마음이 불편하다.
일본으로 건너와 얼마간 취업에만 집중하느라 한동안 손 놓고 있던 글쓰기가 손에 익기 시작한 지 이제 갓 1년이 좀 넘었다. 이제는 글을 안 쓰는 것보다 쓰는 게 더 익숙할 정도로 글 쓰는 일이 습관이 됐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끔 글이 안 써질 때가 있다. 주로 막막하다는 느낌이 들 때다.
2년 동안 브런치에 글을 써오며 크고 작은 성공을 겪었다. 내 글이 포털 메인에 소개되어 하루 만에 조회 수가 2만 회를 넘겼던 적도 있고, 내가 썼던 글 중 하나가 브런치 추천 글로 선정되어 브런치 어플 메인에 계속 노출되면서 5일 만에 구독자가 50명이나 늘어난 적도 있다.
이처럼 생각지도 못한 성과가 하나둘 나오는 것에 순수하게 기쁜 마음이 들다가도 다른 한편으로는 헛헛한 마음이 들었다. 포털 메인에 노출되는 것도, 브런치가 추천하는 글로 선정되는 것도 며칠 반짝 하고 끝나는 일들이기 때문이다.
물론 기쁘고 벅찬 일이긴 하지만 그런다고 해서 내 책이 갑자기 출간되는 것도 아니고, 내게 기고나 강연 요청이 쇄도하는 것도 아니었다.
글 쓰는 생활은 마치 롤러코스터를 타는 것과 비슷하다는 생각이 든다. 하루에도 몇 번씩 기분이 오르락내리락한다. 구불구불 굽이치고 한껏 휘어지며 가파르게 상승하다가도 한순간에 땅바닥으로 곤두박질치기도 한다. 한참을 그렇게 요동치는 감정들에 휘둘리다 보면 어느새 처음으로 돌아와 있다. 아무것도 변한 것 없는, ‘글 쓰는 백수’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닌 나의 모습으로 말이다.
이렇게 제자리뛰기를 하는 것 같은 막막한 일상을 보내면서도 지난 2년간 내가 글쓰기를 때려치우지 않고 꾸준히 할 수 있었던 이유 중 8할은 사람이다. 내게는 ‘대박 자매’와 ‘1호 독자’가 있다.
나의 대박 자매와 1호 독자
내가 무슨 말을 해도, 어떤 행동을 해도 무조건 “대박!”이 라고 외쳐주는 나의 소중한 동생 수진이는 나의 멘티다. 수진이는 내가 마지막으로 직장생활을 했던 곳에서 만난 직장동료다. 지금은 언니 동생 하는 사이로 발전한 수진이는 남편을 제외하고 말할 수 있는 ‘무조건적인 나의 편’ 중 하나다.
“항상 응원해요, 언닌 할 수 있어요, 이번 글 너무 좋아요” 라는 수진이의 말에 나는 진짜로 내가 뭐라도 해낼 것만 같은 힘을 얻는다.
내가 쓰는 모든 글이 매번 마음에 쏙 들게 나오진 않는다. 그래서 이번 글은 뭔가 좀 아쉽다고 느껴지는 상황에서도 “언니, 이번 글 진짜 대박!”이라고 외쳐주는 수진이의 말을 듣게 되면 ‘그래! 이런 글도 좋아해 주는 사람이 있을 거야!’라는 근거 없는 자신감을 갖게 된다.
나의 ‘1호 독자’도 직장에서 만난 사이다. 첫 직장에서 만난 같은 부서 후배로, 퇴사할 때 내 일을 인계받아서 지금까지 하고 있다. 이름도 얼굴만큼이나 예쁜 신별이다.
별이는 내가 브런치에 막 글을 올리기 시작한 시점부터 내 글을 꾸준히 봐줬다. 대박 자매와 비슷하게 내 글에 대해서 주로 후한 평을 주는데, 별이의 특별함은 서프라이즈에 있다.
오전에 글을 쓰고 12시 즈음 업로드한 뒤 점심 준비를 하는데 별이에게 카카오톡 메시지가 왔다.
‘언니, ㅋㅋㅋㅋ 언니 글 왜 이렇게 재밌지?’
그동안은 내가 이런 글을 쓰고 있으며, 오늘은 이런 글을 올렸다는 링크를 먼저 별이에게 보내주는 식이었는데 별이가 먼저 내 글을 읽고 감상을 보내온 것이었다. 이후로도 별이의 빠른 피드백은 계속해서 이어졌다.
‘오늘 업데이트된 글, 언니가 마지막에 오빠랑 교토 갈 생각하는 그 설렘이 전해져서 마음이 따뜻해요. ㅋㅋ’
‘오늘은 일빠로 라이킷 눌렀어요! ㅋㅋㅋㅋ’
‘항상 언니 글 알림 뜨면 바로~ 가서 읽고 와야죠. ㅋㅋ 그게 낙임! ㅋㅋ’
매일 글을 쓰고 브런치에 하나씩 공개할 때마다 별이는 누구보다 빠르게 내 글을 읽고 피드백을 해줬다. 오전 일과를 마치고 내 글 하나 읽은 후 점심 먹고 남은 시간 동안 한숨 자면 딱이라는 별이의 말에 별이를 위해서라도 매일 글을 써서 오전 중에는 공개해야겠다는 책임감을 느꼈다.
물론 모든 글이 쓰는 순간 퇴고 없이 바로 공개해도 될 만큼 완벽하진 않아서 하루 이틀 쓰기만 하고 공개하지 않는 경우도 있다. 당분간은 지금까지 써왔던 글 중에 보완이 필요한 글들을 골라 퇴고하는 과정을 거칠 예정이라 매일 1편씩 공개하는 건 어려울 듯하다.
하지만 글을 올리는 순간 누구보다 빠르게 감상을 전해오는 1호 독자와 언제나 긍정적인 피드백을 주는 대박 자매 덕분에 이런 글을 가지고 책을 낼 수 있을지, 브런치 북 공모전에 당선될 수 있을지, 글 쓰는 일만으로 먹고살 수 있을지 몰라 막막해지던 마음을 억누른 채 나는 꾸준히 글을 쓸 수 있었다.
작가 지망생인 내 곁에 이런 사람들이 있다는 건 엄청난 행운이라고 생각한다. 끝이 보이지 않는 길을 묵묵히 걸어갈 수밖에 없는 내가 지치지 않고 계속해서 걸을 수 있게 힘을 주고, 할 수 있다는 용기를 북돋아 주는 것은 결국 독자다.
어떤 상황에서도, 무슨 일을 해도 “대박!”을 외쳐주는 사람과 “언니 글 읽는 게 낙이에요!”라고 말해주는 사람이 곁에 있고, 내 글을 기다려주고 읽어주는 1,100여 명의 브런치 구독자들이 있는 나는 어쩌면 행복한 글쟁이가 될 수 있는 조건을 이미 충분히 갖추고도 남은 게 아닐까.
그들을 위해 나는 오늘도 글을 쓴다. 내 글이 한데 엮여 책으로 나오는 순간을 위해서가 아닌, 브런치 공모전에 당선되는 꿈같은 순간만을 위해서가 아닌, 자신의 시간을 할애하여 나의 글을 읽어주고 응원의 피드백을 남겨주는 독자들을 위해서 나는 매일 작가가 된다.
돈 못 버는 현실의 막막함에 신세 한탄만 하는 대신, 이런 거 해서 뭐가 남느냐는 비관 대신 나는 글을 쓴다. 꾸준히, 조금씩이라도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