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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코붱 Aug 05. 2020

내 행복의 값은 단돈 60만 원

‘돈이 얼마나 있어야 사람은 행복해질까?’


이런 고민을 하고 있던 내게 엄마는 말했다.


“돈이 없어서 문제지, 많은 게 문제냐.”


퇴사를 고민하던 내게 너 정도도 못 버는 사람 허다하니까 그냥 참고 다니라는 말이었다. 인정한다. 돈은 좋다. 많을수록 더 좋다. 돈으로 모든 것을 해결할 순 없어도 돈만 있으면 해결되는 일이 우리 주변엔 숱하게 많다. 그렇기에 돈은 없는 것보단 있는 게 좋다고 나도 생각한다.


하지만 돈이 많다고 해서 꼭 행복한 것만도 아니라는 것을 보여주는 사례는 우리 주위에서도 심심찮게 볼 수 있다. 부모님 유산을 서로 더 가져가기 위해 가족끼리 법정 싸움을 벌이기도 하고, 로또 1등에 당첨됐는데 몇 달 뒤 신용불량자가 됐다는 누군가의 사연을 듣기도 한다.


이처럼 돈은 많으면 많은 대로 탈이 나는 모양이다. 물론 내게는 전혀 해당 사항 없는 얘기다. 우리 부모님은 형제끼리 싸울 만큼의 수억 원대 자산을 축적한 재력가도 아니고 나 또한 수억 원은커녕 수천만 원도 없는 (심지어 버는 돈도 없는) 일개 백수에 불과하다.


그래서 나는 조금 다르게 생각해봤다. ‘돈이 얼마나 많아야 행복할까’가 아니라 ‘돈이 얼마나 없으면 내가 불행해질까’에 대해서 따져봤다.


돈이 얼마나 없으면 내가 불행해질까?


계산해보니 60만 원이라는 결론이 났다. 나는 한 달에 60만 원이면 생활이 가능했다. 결혼 전 부모님 댁에 얹혀살 때 얘기다. 월세를 낼 필요도 없고, 부모님에게 생활비를 줄 필요도 없이 내 한 몸만 건사하면 됐기에 생각보다 많은 돈이 필요하진 않았다. 60만 원을 구체적으로 쪼개보면 다음과 같다.


실비보험비 4만 원, 휴대폰비 6만 원에 경조사비(겸 비상금) 10만 원 정도로 총 20만 원이 고정적으로 매달 필요한 돈이었다. 나머지 40만 원은 변동될 수 있는 금액이다. 주유비 15만 원, 용돈(쇼핑 및 데이트 비용) 20만 원, 병원비 5만 원 같은 것들이다.


회사를 안 다녀도 60만 원만 있다면 최소한 한 달은 사람 구실 하면서 살 수 있었다. 결혼 전까지 나는 퇴사할 때마다 매번 이 60만 원을 기준으로 내가 언제까지 백수로 지낼 수 있는지를 계산했다.


경조사가 아예 없는 달엔 고정비에서 오히려 돈이 남았고, 반대로 경조사가 넘치는 달에는 예상보다 초과해서 돈이 더 나가기도 했다. 이럴 땐 변동비인 주유비와 용돈, 병원비 등에서 초과된 비용만큼 제외하고 사용했다.


이렇게 나의 고정비와 변동비를 파악해뒀을 때 좋은 점은 좀 더 계획적으로 소비할 수 있게 된다는 점이다. 직장에 다닐 때 나는 단 한 번도 내 월급에 만족해 본 적이 없었다. 그렇게 적게 버는 것 같진 않았는데도 지내다 보면 어느새 통장 잔고가 바닥나 있는 경우가 허다했다. 내가 어디에 얼마나 돈을 쓰는지 자세히 몰랐다. 솔직히 말하자면 알아보려는 시도조차 하지 않았다.


그랬던 내가 백수가 되고 나서야 내 돈의 쓰임에 관심을 갖게 됐다. 마르지 않는 화수분 같았던 월급이란 놈이 없어졌기 때문이다. 이제는 오로지 내가 쥐고 있는 한정된 돈 안에서 생활해야 했다.


‘어디에 얼만큼만 써야 조금이라도 더 편하게 백수로 놀고 먹을 수 있을까?’라는 질문은 백수인 내가 반드시 해결해야 할 최대 난제였다.


당연하게도 돈이 많다면 이 기간은 늘어난다. 또는 한 달 최저 생계비를 60만 원이 아닌 40만 원으로 줄인다면 이 역시 백수로 살 수 있는 기간을 늘릴 수 있다. 한 달에 쓸 돈을 줄이느냐, 쓸 수 있는 돈 자체를 많이 모아두느냐의 차이일 뿐이다.


첫 직장을 다니며 온몸이 망가진 나는 돈을 더 벌 체력이 없었다. 그래서 퇴사 전까지 모아둔 돈을 어떻게 하면 좀 더 길게 쪼개서 쓸 수 있을지를 연구했고, 그 결과 나온 최저 생계비가 60만 원이었다.


돈만 보고 회사생활을 하는 건 힘들다. 스트레스 받는 일이다. 심해지면 나처럼 건강까지 해칠 수도 있다. 하지만 돈 없이 사는 건 더 힘든 일이다. 당장 다음 달 월세 낼 돈이 없고, 만약 부모님이 아프시기라도 하는 등의 목돈이 필요한 상황에서 모아 놓은 돈도 없이 덜컥 회사를 관둔다는 건 심하게 말해 자살행위에 가깝다.


내가 백수로 지내면서도 불행하지 않았던 이유는 역시 돈의 힘이 컸다. 결혼한 지금도 많지는 않지만, 남편과 합친 재산 외에 내 명의의 돈이 어느 정도 남아 있다. 이 돈이 나의 평안하고 행복한 백수 라이프를 지탱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어쩌면 직장인보다도 백수가 더 돈에 관심을 가져야 할지도 모른다. 물론 버는 것 말고 얼마나 가진 돈을 ‘잘 쓰고 있는가’ 에 관해서 말이다.


나는 아직도 내가 돈이 얼마나 있어야 행복해질지 모른다. 하지만 얼마가 없으면 불행해질지는 잘 알고 있다.


600만 원이 있으면 10개월은 불행하지 않고, 6천만 원이 있으면 100개월(약 8년)은 불행하지 않을 거다. 백수인 나의 행복은 월 60만 원에서 온다.


내 행복의 값은 60만 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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