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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코붱 Aug 05. 2020

회사 밖은 지옥이 아니었다

일반적인 말의 시야는 350도에 달한다고 한다. 앞뒤는 물론 양옆까지 마음만 먹으면 다 볼 수 있는 엄청난 시야를 가진 셈이다. 그런데 경마경기에 출전하는 경주마의 시야는 고작 100도에 불과하다고 한다. 눈가리개를 착용해서 그렇다.


정해진 목표 지점에 누가 가장 빨리 들어가느냐를 다루는 경마경기에서 말의 넓은 시야는 장점이 아니라 오히려 단점이 된다. 뒤에서 달려오는 말과 옆에서 추월하려는 말이 보이면 경기에 집중하지 못하는 방해요인이 되기 때문이다.


내가 이렇게 시작부터 장황하게 말의 시야를 이야기한 이유는 나 역시 경주마와 같은 시절이 있었음을 고백하기 위해서다.


2012년 1월부터 2018년 12월까지 약 6년 동안 나는 총 네 군데의 회사에 다녔다. 대학을 졸업하고 나서 1년 정도 취준생 으로 빌빌거리다가 가까스로 취업에 성공한 뒤부터는 계속해서 회사에 다닌 셈이다. 중간중간 한두 달씩 쉬는 기간이 있긴 했지만, 회사에 취직하여 다시 돈을 버는 회사원의 삶을 결코 포기한 적은 없었다.


첫 번째 회사에서 3년 10개월, 두 번째 회사에서 1년, 그다음 회사에서 3개월, 마지막 회사에서 9개월간 근무했다. 네 번째 회사는 애초에 9개월만 일하기로 정하고 들어갔기 때문에 그때를 제외하고 얘기하자면 내가 회사에 속해 있던 기간은 3년 10개월에서 1년으로, 1년에서 3개월로 갈수록 짧아졌다. 짧아지는 근속기간은 내가 회사라는 일정한 조직에 속해서 일하며 돈 버는 것을 어려워함을 방증한다.


그럼에도 불구 하고 나는 회사원의 삶을 포기할 수 없었다. 처음엔 이것 말고 다른 길이 있다는 생각을 하지 못했고, 시간이 좀 더 지나 TV나 책을 통해서 회사에 취직해서 일하는 것 말고도 다양한 길이 있음을 알게 되었을 때도 그건 남의 일이라고만 생각했다. 아무런 특기도, 이렇다 할 취미도 없는 내가 할 수 있는 거라곤 회사에서 시키는 일만 성실히 하는 것밖에는 없다고 믿었다.


마치 경마경기에 임하는 경주마처럼 눈앞에 있는 목표 지점만 보기 위해서 보이지 않는 눈가리개를 스스로 뒤집어쓰고 다른 쪽으로 향하려는 나의 시야를 애써 차단했다. 그렇게 눈뜬장님처럼 살았던 나도 가끔은 눈가리개를 벗고 나의 시야를 한껏 확장시켰던 때가 있었다. 바로 한두 달씩 가졌던 백수 시절이다.


이 길밖에 없다고, 다들 이렇게 산다고 스스로 타이르며 달리는 것이 처음으로 힘에 부쳐 첫 직장을 가까스로 퇴사하고 경험한 백수의 삶은 새로웠다.



- 사내 쪽방에서 시리얼에 요구르트를 부어 먹는 대신 내가 좋아하는 재료들만 골라 그 순간 가장 먹고 싶은 요 리를 해 먹을 수 있는 삶.


- 퇴근하고 소파에 널브러져서 하릴없이 틀어놓은 TV를 멍하니 쳐다보는 대신 평소 보고 싶었던 책과 영화를 원하는 때에 마음 내킬 때까지 볼 수 있는 삶.


- 왜 해야 하는지 모르겠는 회사 업무가 아닌 내가 하고 싶어서 하는 일본어 공부와 글쓰기 공부에 나의 시간을 할애할 수 있는 삶.


- 회사에 다닐 땐 출근 시간에 쫓겨 빠르게 지나가기 바빴던 길 한구석에 예쁘게 피어있는 꽃들을 발견하고 그 아름다움을 음미할 수 있는 삶.



삶을 이렇게 살아도 된다는 것을 회사 안에 있었을 땐 전혀 알지 못했다. 누군가 알려준 사람도 없었고, 나 또한 나서서 알려고 하지도 않았다. 이 모든 것은 내가 회사 밖을 나와서야 내 눈에 들어왔다. ‘회사’라는 이름의 눈가리개가 벗겨졌기 때문이다.



회사가 전쟁터라고?
밖은 지옥이다



몇 년 전 큰 인기를 끌었던 tvN의 드라마 ‘미생’에서 나를 포함한 이 시대 직장인들의 심금을 울린 명대사를 꼽자면 저 대사가 빠질 수 없다. 나 역시 아직도 저 말에 어느 정도 동의 한다. 매달 정해진 날짜에 따박따박 들어오는 월급의 든든함을 부정하고 싶지는 않으니까. 그랬기에 나 역시 그렇게 싫고 안 맞는다고 우는 소리를 내면서도 몇 번이고 다시 회사원이 되기를 자처한 것이리라.


다만 회사 밖 생활을 한 번도 아니고 네 번씩이나 해본 입장에서 저 말에 한 가지를 첨언하고 싶다. “회사 밖도 의외로 살 만하다”라고.


내가 겪은 회사 밖은 지옥도 전쟁터도 아니었다. 그저 익히 알고 익숙해져 있던 ‘회사에 다니는 삶’이 아닌 지금껏 경험해 본 적 없던 ‘회사를 뺀’ 새로운 삶이었다.


꾸준한 수입이 보장된다는 측면에서 직장인으로서 사는 삶은 나름의 행복을 느낄 수 있다. 하지만 돈 못버는 백수라도 행복은 느낄 수 있다. 아니, 백수이기에 누릴 수 있고 경험할 수 있는 행복이 있다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다.


경로를 이탈하는 즐거움은 해본 사람만이 안다. 나는 네 번 이나 ‘정도’를 벗어났고 그 안에서 크고 작은 즐거움을 발견했다. 물론 몇 번의 방황은 있었지만, 이제는 아니다. 나는 더 이상 지정된 트랙 위로 돌아갈 생각이 없다.


다시 뛰어야만 한다면 경주마 말고 조랑말처럼 뛰고 싶다. 몸집도 작고 힘도 없어서 경마경기엔 출전하지 못해도 눈가리개 없이 보고 싶은 거 마음껏 보고, 가고 싶은 곳에 마음 내키는 대로 뛰어갈 수 있는 조랑말 같은 삶을 살고 싶다.


이러한 삶이 내가 원하는 삶이란 걸 알게 되기까지 6년이란 시간이 필요했다. 하지만 모든 사람이 나처럼 수년을 방황하고 헤맬 필요는 없다. 그러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이 글을 시작했다.


몇 년 전의 나처럼 스스로 보이지 않는 눈가리개를 뒤집어쓴 채 회사 속 삶만이 전부라고 믿고 있을 누군가에게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기를 바라면서 앞으로의 이야기를 시작해 보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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