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코붱 Jul 31. 2020

잘 해내고 싶다

번역을 하게 됐다. 일한 번역이다. 근 10년 이상을 일본어를 공부하고 이용해온 사람 입장에서 놓칠 수 없는 제안이었다. 


일본어로 돈을 벌었던 적은 몇 번 없었지만 그때마다 좋은 평가를 받았고, 웬만큼 자신도 있었다. 그런데 번역은 정말 어려운 작업이라는 것을 절감 중이다.


이번에 내가 제안받은 일은 외서(일본 책)를 발굴하여 출판사에 출간을 제안하고 계약이 성사될 시 내가 번역을 맡아 진행하는 일이었다. 현재까지 두 권의 책을 출판사에 제안했고 얼마 전 한 책의 목차와 몇 개의 꼭지 글을 우선 번역해달라는 의뢰를 받았다. 


출간이 확정된 내 첫 책의 작업이 마무리되자마자 이전까지는 단 한 번도 제대로 해본 적 없던 번역이라는 일을 시작하게 된 셈이다.


어제는 내가 일주일 중 유일하게 아무것도 하지 않고 쉬는 목요일이었다. 예정대로라면 아무것도 안 하고 남편과 놀거나 그간 읽고 싶었던 밀린 책들을 읽어야 했지만 나는 어제 번역을 했다. 그래서 힘들었느냐고? 물론이다. 힘들었다. 그런데 그만큼 희열도 느껴졌다. 누군가의 말을 나의 언어로 다시 표현하는 일의 재미를 느낀 덕분이다.


번역이 어렵다는 건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내가 느낀 어려움은 바로 <한계성>에 있다. 내 글을 쓸 때는 한계가 없다. 그저 쓰고 싶은 대로 자유롭게 내키는 대로 쓸 수 있다. 그러나 번역은 아니다. 번역은 저자의 말과 생각을 최대한 이해하고 그렇게 결정된 무형의 틀 안에서 나의 말을 담아내야 하는 일이었다.


나는 번역이란 누군가의 생각을 내가 아닌 다른 사람에게 최대한 이해하기 쉽게 전달하는 일이라고 생각한다.그렇기에 책에 적힌 활자들에 담긴 저자의 생각을 내가 얼마나 깊이 이해하느냐에 따라 번역문의 질이 달라진다고 믿는다.


이러니 번역이 쉬울 수가 없다. 그런데 가끔 ‘아! 이런 말이 하고 싶었던 거였어?’라는 생각을 하게 되는 문장들을 만날 때가 있다. 일본어라는 외국어로 적힌 저자의 문장에서 나의 모국어인 한국어로 된 문장이 불현듯 읽히는 것이다. 그때의 희열이란. 발가락 끝부터 머리카락 끝까지 쭈뼛 서는 느낌이 들었다고 하면 너무 유난스러워 보이려나.


사실 처음에 번역에 대한 제안을 받았을 때 원래는 거절하려고 했다. 번역이라니. 내 주제에 할 수 없는 일이라고 미리부터 선을 그었다. 그런데 마음속에서 자꾸 갈등이 일었다.


진짜로 나는 번역을 못하는 걸까? 네 실력에 자신이 없다기보다 귀찮아서 하기 싫은 게 아니고? 어려워 보여서 일단 내빼는 거 아니니? 지금 하고 있는 일들에 집중하고 싶다는 그럴싸한 변명을 하면서.


끊임없이 들려오는 마음속 속삭임에 나는 결국 굴복했다. 맞다. 귀찮아 보이고 힘들어 보였다. 쓰고 싶은 내 글이 참 많은 것도 사실이었지만 그보다는 한 번도 해 본 적 없는 일에 또다시 뛰어드는 것이 두려웠다.


실력이 없어서 못하는 거라면 인정할 수 있다. 하지만 실력은 있지만 귀찮아 보여서, 하기 싫어서 거절하는 건 백수인 나로서는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일이다.


번역은 외국어 능력도 중요하지만 모국어를 얼마나 잘 구사할 수 있는지도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나의 일본어 실력에 대해 객관적으로 평가받아본지는 오래되었기에 뭐라고 말할 수는 없지만 첫 책의 집필을 끝낸 지금, 나의 한국어 실력은 지금까지의 내 인생에서 그 어느 때 보다도 일취월장했다.(고 믿고 싶다.)


어쩌면 지금이야말로 번역을 시작하기엔 적기이지 않을까, 라는 생각마저 들었다. 그렇다면 더더욱 거절할 이유가 없었다. 나는 제안을 수락했고 번역에 착수했다.


오늘은 이번 주 일요일 오후에 업로드할 영상의 제작에 본격적으로 착수해야 한다. 그렇기에 어제처럼 번역 하나에만 매달리지는 못할 것 같다. 그렇지만 나의 이러한 사정을 나보다 더 깊이 이해해주시는 좋은 출판사를 만난 덕분에 마감을 조금 여유롭게(?) 받았다. 감사할 따름이다.


이제 겨우 초보 작가 딱지를 떼었는데 (사실 아직 초보 작가인 것 같다.) 초보 번역가라는 새로운 이름표를 받아 들게 되었다.


이 새로운 변화가 걱정되면서도 흥분되고 무거운 책임감을 느끼는 한편 새로운 일에 대한 기대감으로 온몸이 떨린다.     



잘 해낼 수 있을까? 

잘 해낼 것이다.  


잘 해내고 싶다.               

매거진의 이전글 <경로를 이탈하셨습니다> 예약판매가 시작되었습니다 :)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