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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코붱 Sep 21. 2020

내가 글을 쓴 최초의 이유

모든 글은 가치 있다.

요즘 나는 내 책의 서평을 찾아본다. 주로 네이버 블로그를 검색해서 보는 편인데 그렇게 한 달가량 네이버 블로그를 수시로 들락거리다 보니 정말 문득 몇 년간 방치해둔 내 네이버 블로그가 생각났다.


대학생 때 개설해서 이름만 대면 알만한 유명 외국계 기업의 대학생 서포터즈로도 활동했던 적이 있었을 정도로 나름 블로그에 공을 들였던 시기가 있었는데. 한동안 거의 잊어버리고 살고 있었다. 


오랜만에 접속한 내 블로그는 ‘폐쇄중입니다.’ 라는 블로그 이름에 걸맞게 정말 살풍경했다. 가장 최근에 올린 글이 2016년 겨울, 스페인 여행을 갔을 때 겪었던 라이언에어 웹 체크인의 불편함(과 부당함)에 대한 포스트였으니 그로부터 약 4년간을 방치해둔 셈이다.


2016년에서 2015년까지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며 블로그 내에 발행해둔 포스트를 훑어보다가 유독 눈길을 끄는 제목을 하나 발견했다. 그 글의 제목은 이랬다. <재미없는 인생? 재미있는 인생?>


내용은 별게 없었다. 단 세 줄짜리 메모였다. 이어 붙이면 딱 한 문장이 될 정도로 간결한 그 내용은 이러했다.


‘내 인생은 왜 이렇게 재미가 없지?’가 아닌,
‘난 왜 이렇게 재미없게 인생을 살지?’가 옳은 표현이었다는 걸

나이 서른을 목전에 둔 29살, 드디어 깨달았다.


이 포스트는 2015년 9월 17일 오후 4시 43분에 발행됐다. 그때면 내가 아직 첫 직장에 재직 중일 때였다. 심지어 그날은 평일이었으니 한창 회사에서 일하던 중에 저런 메모를 남긴 것이다.


2015년 10월 30일 자로 첫 직장을 퇴사했으니 아마 저때쯤이면 내 퇴사는 이미 기정사실화 되어있었을 것이다. 지금까지 거쳐 온 4개의 회사를 관둘 때마다 나는 최소한 한 달 이전에는 퇴직 의사를 밝혔으니까.


한창 인수인계 파일을 만들고 후임자에게 내 일을 알려주고 있을 때였을 것이다. 그때 나는 이런 생각을 하고 있었구나.


이 메모를 보고 새삼 글을 써서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내가 만약 5년 전에 이 메모를 쓰지 않았다면 그래서 네이버 블로그라는 공간에 기록해두지 않았다면, 내 인생의 첫 퇴사를 앞두고 나는 이런 생각을 하고 있었다는 것을 나는 앞으로도 영영 알 수 없었을 것이다.


비록 단 한 문장의 짧은 내용이었지만 이것만으로도 내가 그 당시 어떤 마음이었는지, 어떤 것을 가장 중요하게 생각했었는지는 한눈에 파악이 되었다.


저마다 글을 쓰게 된 최초의 이유가 있을 것이다. 특히 브런치라는 ‘글쓰기’에 특화된 플랫폼을 선택하고 그곳에 자신의 글을 발행 중인 작가들은 더더욱 글을 쓰게 된 본인만의 확고한 이유가 있을 것이다. (그 이유가 없었다면 애초에 브런치 작가로도 선정되지 못했을 것이다.)


하지만 하나 둘 글을 쓰고 그 양이 쌓이고 쌓여 나중엔 내가 몇 개의 글을 썼는지도 모를 정도로 걷잡을 수 없이 내가 쓴 글의 양이 늘어나다 보면 어느 순간 내가 ‘왜’ 글을 쓰려고 했는지가 희미해질 때가 있다. 내가 그랬다. 그랬기에 더더욱 글을 써야만 한다고 새삼 깨닫는다.


얼마 전 유튜브에서 라이브로 상담을 진행하던 중 받은 질문이다. ‘좋은 글’이란 어떤 것이냐는 질문이었다. 그 질문에 나는 이렇게 답했었다.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가 확실하고, 그 글을 읽어줬으면 하는 대상 독자가 확실한 글이 좋은 글입니다.”


아직도 그 생각에 변함은 없다. 다만, 그렇지 않은 글이라고 하여 무가치한 것은 아니라는 것을. 대상 독자가 확실치 않고, 내가 이 글을 통해 뭘 말하고 싶은지 정확히 눈에 들어오지 않는 글이라 해도 모든 글은 그 자체로 가치가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글에 앞서 생각이 있다. 그 글의 내용을 떠올리고 가장 표현하고 싶은 내용을 무엇이든 적어나가 탄생한 모든 글에는 나름의 가치와 존재의 이유가 있다.


오늘 하루 속상했던 일을 두서없이 풀어낸 일기에도, 5년 전 내가 아무 생각 없이 끄적인 짧은 메모에도 그 글이 그저 생각에 머무르지 않고 글이 된 이유.


그 최초의 이유가 있기에 아마 나는 지금까지도 계속 글을 쓰고 있는 것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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