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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코붱 Sep 20. 2020

마감의 힘

고민할 시간에 한 자라도 더 적자

얼마 전까지 나는 타이머를 켜고 글을 썼다. 40분짜리 타이머다. 인터넷을 통해 알게 된 한 번역가의 시간관리기법을 따라 해 본 것인데 그렇게 쓴 글을 가지고 얼마 전 책 한 권을 내기도 했으니 내게는 꽤 효과가 있는 방법이라고 생각한다.


타이머를 켜고 글을 쓰면 일단 망설임이 없어진다. 나는 글을 쓸 때 주로 한글 문서 창에 쓰는데, 아무것도 적혀 있지 않은 새하얀 페이지를 볼 때의 그 막막함에 짓눌려있을 때, 타이머의 역할은 빛을 발한다. 마치 “야, 그렇게 고민하고 있을 때 ‘가나다라마바사라’ 라도 적어.”라고 말해주는 것 같다고 할까.


좀 촌스럽게 표현하긴 했는데 실제로 비슷한 느낌을 많이 받는다. 39분 20초, 29분 25초. 줄어드는 타이머의 시간을 볼 때마다 내 손가락은 바빠졌다. 어떨 때는 머리보다 손이 더 앞섰던 적도 있다. (사실 지금도 그런 상태다.)


이런 상태에서 나오는 글은 대개의 경우 좀 서툴다. 문장 호응이 안 맞는 경우도 있고, 사실 관계가 확인되지 않은 나의 개인적인 생각에 대한 내용이 나오는 경우도 많다. 그래도 상관없다. 문장이야 나중에 고쳐 쓰면 되고 사실 관계도 나중에 찾아서 정확히 체크한 뒤 수정하면 된다. 


중요한 건 주어진 40분 안에 그저 뭐라도 써서 글 한 편을 완성하는 것이다. 여기에서 방점을 찍어야 하는 부분은 바로 ‘완성’에 있다.


40분 글쓰기의 핵심은 ‘완성’이다. 조금 모자라고 볼품없는 글일지라도 한 편의 글을 완성시키는 경험을 할 것. 그것이 내가 아직까지도 40분 글쓰기를 포기하지 못하는 이유다.


사실 이 글은 타이머를 켜지 않고 쓰고 있다. 내 타이머는 쓸데없이 기능이 좋아서 설정한 시간이 10분 남았을 때 한 번, 5분 남았을 때 두 번의 알림이 울리고 정해진 40분이 다 끝났을 땐 집 안이 떠나가라 울려댄다.


그래서 남편이 자고 있을 때는 타이머를 쓰기가 좀 곤란하다. (지금 남편이 자고 있다.) 그래도 괜찮다. 그렇게 한 1년 이상을 타이머를 켜고 글 쓰는 연습을 해왔더니 이제 타이머가 없어도 내 몸이 알아서 타이머에 맞춰 반응을 한다.


여기까지 쓰는 데 딱 12분 걸렸다. 그리고 생각이 끊겼다. 이럴 땐 다시 타이머(혹은 시계)를 본다. 시간이 얼마나 남았나를 가늠한다. 나는 이 글을 8시 17분부터 쓰기 시작했고 지금이 딱 8시 34분이니 내가 글을 더 써야 할 시간은 23분 남았다.


이렇게 생각이 끊겼을 때 나는 글의 처음으로 돌아간다. 첫 문장부터 써둔 부분까지 쭉 읽는다. 퇴고를 하는 것이다.


가끔 생각이 끊임없이 이어질 때가 있는데, 그때는 일단 글을 다 적고 그 뒤에 퇴고를 한다. 이렇게 중간중간 퇴고를 하는 것은 글이 생각처럼 잘 안 써질 때다. 그런데도 조급한 마음은 들지 않는다. 이런 날도 있고, 저런 날도 있는 거지 뭐. 


얼마 전 부엉이 상담소에서 한 구독자분이 내게 물었다. ‘글이 안 써질 때 극복하는 방법’에 대해서 물었던 것 같다. 그 질문에 나는 이렇게 답했었다. “딱히 없어요.”


굉장히 성의 없게 대답한 것 같지만 나는 진심이었다. 글이 안 써질 때 극복하는 방법이라니. 그런 걸 신인의 무명작가인 내가 알 턱이 없었다. 하지만 그러면서 덧붙인 내 말도 진심이었다. 나는 이렇게 말했었다.


“대신 이런 날도 있지 뭐, 하면서 넘깁니다.”


살다 보면 가끔 내 맘처럼 되지 않는 날도 있지 않은가. 뭘 하든 잘 되는 날이 있고, 뭘 해도 안 되는 날이 있는 것처럼 내 글도 술술 잘 써지는 날도 있고, 아무리 쥐어짜도 몇 문단 못 쓰는 날도 있다.


그 모든 날의 결과로써 만들어진 글들이 하나씩 쌓이고 그것들이 일정한 컨셉을 갖춰 엮인다면 한 권의 책이 된다. (고 나는 믿는다.)


고로, 이 글도 언젠가는 한 권의 책으로 엮일 것이다. 대충 생각해둔 컨셉도 있다. 출간 기획서도 썼고, 프롤로그도 써뒀다. 다만 올해 말까지는 글쓰기보다 영상과 오디오 파일이라는 콘텐츠 제작에 좀 더 집중할 예정이기 때문에 이 매거진에 발행될 글들이 책으로 엮여 나오는 건 언제쯤이 될지는 장담할 수 없다. (출간 계약도 아직 안 했다.)


그래도 우선 쓴다. 뭐라도 써야 그래서 한 편의 글이 완성이 되어야 기획출판(출판사에 원고를 투고하여 계약 후 출판)을 하던 독립출판을 하던 어떤 방식으로든 책을 만들 수 있을 테니까.


아무것도 없는 백지에서는 어떤 것도 시작될 수 없다. 그런 마음으로 나는 오늘도 40분간 글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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