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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코붱 Sep 26. 2020

5만원짜리 마이크로도 충분했다

'장비에 투자하지 마세요'는 진짜였다

‘직장인 2대 허언’ 중 하나라며 조롱받던 ‘유튜브 할 거다.’라는 말을 더 이상 ‘허언’이라고 표현하기엔 다소 무리가 있을 듯하다.


구인 구직 플랫폼 사람인에서 2019년 10월 22일에 발표한 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성인남녀 3,543명 중 63%가 유튜버에 도전할 의향이 있다고 한다. 어디 직장인 뿐이겠는가? 작년 말, 교육부와 한국 직업능력개발원에서 발표한 ‘초등학생 희망직업 순위’에서 유튜버(크리에이터)는 3위에 올랐다. 이는 2018년도(5위)보다 2계단이나 높아진 순위라고 한다.


그만큼 연령에 상관없이 유튜브에 도전하고 싶은 사람들의 비율이 갈수록 높아지고 있는 이때에 나는 이 말을 꼭 하고 싶다. “장비에 투자하지 마세요.”


장비에 투자하지 마세요.


물론 이 말이 그다지 와 닿지 않을 수도 있다. 이런 말을 하고 있는 나조차도 유튜브를 하기 위해 사들인 장비에 쓰인 돈을 따져보면 벌써 200여 만 원이 훌쩍 넘으니까. 


구체적으로 따져보자면 아이패드(프로 4세대 512기가)에 200여 만 원, 녹음기(Sony ICD-TX650)에 약 15만 원. 여기에 가장 최근에 산 USB 마이크까지. 


최근엔 유튜브에 얼굴까지 공개하게 되면서 ‘조명’도 하나 사야 하는 게 아닐까 고민 중이지만 꾹 참고 있다. 아무런 수익도 나지 않는 상태에서 더 이상의 지출은 삼가야 한다. (조명도 욕심내기 시작하면 한도 끝도 없다.)

내가 만드는 영상은 솔직히 말해서 아이패드랑 녹음기 하나만 있어도 충분히 제작 가능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굳이 USB 마이크를 새로 산 것은 6월 중순, 처음으로 진행한 ‘라이브 방송’ 때문이었다.


내 유튜브 채널은 아직 구독자 수가 천명이 되지 않는다. 구독자 수 천 명 이하의 채널은 유튜브의 실시간 라이브 방송 기능을 이용할 수가 없다. 그래서 나처럼 구독자 수 천 명 이하의 채널에서 라이브 방송을 하려면 별도의 소프트웨어를 이용해야 하는데, 그중 내가 선택한 것은 ‘OBS 스튜디오’였다.


OBS 스튜디오는 PC에 설치하여 이용해야 한다. 앱이 없다. 그래서 OBS 스튜디오를 이용하여 라이브 방송을 하려면 반드시 ‘마이크’를 PC에 입력시켜야 한다. 생애 첫 라이브 방송을 앞두고 내가 굳이 USB 마이크를 사야겠다는 생각을 한건 그래서였다.


그때부터 나는 유튜브에서 ‘유튜브용 마이크’를 검색했다. 적게는 1만 원-2만 원 선에서 많게는 몇 백만 원에 이르기까지. 그야말로 천차만별이었다. 그 수많은 후보들 중에서 내가 최종적으로 고른 것은 딱 2가지였다. RODE의 NT-USB와 FIFINE의 K052.


(좌) RODE의 NT-USB 와 (우) FIFINE의 K052 [사진출처 : 아마존 재팬]


이 중에서 RODE의 NT-USB는 현재 사용 중인 녹음기(Sony ICD-TX650)를 결제하기 직전까지 이걸 살까 저걸 살까 고민했던 제품 중 하나였다. 그 정도로 내가 원하는 기능을 충분히 제공한다고 확신하는 제품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이번에도 끝내 NT-USB를 사지 않았다. 여러 가지 이유가 있지만 가장 큰 이유는 가격이다. NT-USB는 현재 일본 아마존에서 18,600엔에 판매 중이다. 한화로 따지면 약 20만 원에 달한다. 비싸다.


그에 반해 내가 이번에 산 FIFINE의 K052는 일본 아마존 기준, 4,829엔이다. 한화로 약 5만 원이 좀 넘는 수준이다. 백수에겐 이것도 결코 싼 가격은 아니지만 20만 원보다는 1/4이나 저렴하다. 문제는 인지도였다. NT-USB에 비해 K052의 인지도는 매우 떨어졌다. FIFINE라는 제조사조차도 처음 보는 곳이었다.


실제로 유튜브에서 해당 제품들을 검색해보면 리뷰 영상이 수십 건씩 쏟아지는 NT-USB에 비해 K052의 리뷰 영상은 손에 꼽을 정도다. (그중에서도 한국인 유튜버가 올린 영상은 한두 개밖에 없었다.)


많은 사람들의 선택을 받은 비교적 비싼(하지만 성능은 확실히 보장되는) 20만 원짜리 마이크를 사느냐, 대중들에게 많이 선택받진 않았지만 내가 원하는 최소한의 기능은 제공해줄 것으로 예상되는 5만 원짜리 마이크를 사느냐. 이러한 고민을 며칠이나 한 끝에 나는 결국 후자 쪽에 손을 들어줬다.



USB마이크를 사용할 이유가 사라졌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이 결정은 그럭저럭 괜찮은 결정이었다. 마이크를 구입한 올해 6월 중순부터 9월 전까지 당초 생각했던 것보다 내가 그렇게 자주 라이브 방송을 하지도 않았고, 매주 토요일마다 2시간씩 라이브 방송을 하고 있는 요즘조차도 나는 굳이 USB 마이크를 사용하지 않는다. OBS 스튜디오를 대신할 대체제로 네이버에서 만든 ‘프리즘 스튜디오’라는 앱을 발견했기 때문이다. 


아이패드에 프리즘 스튜디오를 설치한 이후, 나는 더 이상 PC로 라이브 방송을 하지 않는다. 프리즘 스튜디오는 스마트폰에서도 이용 가능하다. 한 마디로 ‘라이브 방송만’ 한다면 아이패드 없이 그냥 현재 가지고 있는 스마트폰 하나 만으로도 언제든 방송을 할 수 있다. USB 마이크를 사용할 이유가 완전히 사라졌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마이크를 사는 데 쓴 5만 원이 좀 아깝긴 하다. 하지만 뭐 20만 원짜리 마이크를 샀다가 이런 사태가 벌어졌을 때와 비교하면 그나마 다행이지 싶다. 이래서 그렇게 수많은 유튜버들이 장비에 투자하지 말라고 하는 건가 보다.


세상이 참 좋아졌다. 브런치뿐만이 아니라 유튜브와 네이버 오디오 클립 등 다양한 채널에 갖가지 형태의 콘텐츠를 제작하여 올리는 내 입장에서 보자면 새로운 기술과 기능을 가진 갖가지 장비들은 하루가 다르게 쏟아져 나오고, 무료로 제공되는 프로그램과 서비스의 퀄리티 또한 갈수록 높아지는 중이다.


그 안에서 내게 꼭 필요한 장비가 무엇이고 내가 사용하면 좋을 프로그램이 무엇일지 고르는 것은 결국 사용자의 몫이다. 20만 원짜리 마이크를 사서 잘 쓰는 사람도 있는 반면 나처럼 5만 원짜리 마이크를 사도 몇 번 쓰다 방치하게 되는 경우도 생긴다. 물론 이 반대의 경우도 충분히 일어날 수 있다. 20만 원짜리 낭비가 될 뻔했던 일을 단돈 5만 원으로 막은 나를 칭찬해주고 싶다.


앞으로도 유튜브를 하다 보면 장비에 대한 유혹은 끊임없이 생길 것이다. (현재도 조명과 맥북 등에 엄청난 지름신이 강림했다.) 그 모든 유혹들에 굴복하지 않을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내가 갖고 있지 않은 것들에 집중하기보다 지금 현재 내 손에 들고 있는 것들에 더 집중하는 일일 것이다.


지난 2년간 나에게만 집중해본 사람으로서 말하자면 나는 생각보다 가진 것이 많았다. 물건이 됐든, 재능이 됐든. 다만 내가 가진 것들의 가치를 깨닫는 데까지 시간이 다소 걸렸을 뿐. 수많은 시행착오를 거쳐 발견한 나의 재능과 물건들이 귀하게 여겨지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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