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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코붱 Jan 22. 2021

어떤 삶을 살고 싶은지 물으신다면

내 삶의 우선순위가 바뀌었다.

글을 안 쓴지 이십 여일이 지났고 브런치에 새 글을 발행하지 않은 건 거의 한 달이 다 되어간다. 핑계를 대자면 사느라 바빴고, 솔직히 말하자면 내 삶에서 글쓰기라는 행위의 우선순위가 많이 밀려났다. 


새해가 시작되고 내 삶엔 크고 작은 변화가 일어났다. 아르바이트를 시작했고, 고양이를 키우게 됐으며, 일본어 공부를 다시 시작했다. 이렇게 새로 시작한 일은 참 많은데 내 하루의 시간은 24시간으로 고정되어 있었다. 그래서 일어난 일이 바로 ‘우선순위 매기기’였다.


앞서 열거한 이런 저런 것들 중에서 내가 가장 우선했던 것은 아르바이트였다. 한 달의 근무 스케줄이 이미 짜여 있다는 현실적인 이유도 있었지만 그동안 해본 적 없던 육체노동을 하려니 한동안은 삭신이 쑤셔서 아르바이트를 한 날은 최소 1시간 이상의 낮잠이 필수였다. (그래야 일어나 저녁밥도 하고 청소도 할 수 있었다.)


그 다음으로 우선했던 것은 고양이였다. 우리 집 고양이는 태어난 지 딱 4개월밖에 안 된 아깽이(아기 고양이)다. 고양이는 보통 1살까지를 성장기로 보는데 1살이 되기 전인 12개월 동안은 가장 에너지가 많고 활발한 시기여서 하루에 최소 15분씩 4번은 놀아줘야 적당히 에너지가 발산 된다고 한다. 


만약 이 시기에 자주 놀아주지 않는다면 에너지 발산이 안 된 고양이는 장난감이 아닌 사람의 손발을 물거나 집 안의 벽지와 가구를 물어뜯는 등의 문제 행동을 보일수도 있다고 하여 최대한 15분씩 하루에 4번은 놀아주려고 노력했다. (내가 아르바이트를 하는 날은 남편이 많이 도와줬다.)


그 다음으로 우선했던 것은 일본어 공부였다. 이건 당장의 이유와 10년 뒤의 이유가 있는데 당장의 이유부터 말하자면 아르바이트 하는 곳에서 매 순간 마주하는 수많은 식자재 이름과 조리용 용어들이 너무 생소했다.


물론 함께 일하는 분들은 내가 외국인이라는 점을 십분 이해하여 일 하는데 많은 도움을 주고 있지만 일 분 일 초가 아깝게 돌아가는 주방의 업무 특성 상 최소한 자주 쓰는 식자재 이름은 외우고, 업무상 주고받는 대화도 바로바로 알아듣고 이해하고 싶었다.


그리고 지난 달 아르바이트를 시작한 지 겨우 4일 만에 칼질을 하다 손가락을 다쳐 약 3주간 일을 쉬게 되었는데 그때 내 10년 뒤의 모습을 상상했을 때 내가 하고 싶은 일은 일본어 실력이 필수였다. (그것도 꽤 높은 수준의)


이러한 이유로 2021년이 시작되고 지금까지 약 20여 일간 내 하루는 아르바이트와 고양이, 일본어 공부로만 대부분 채워졌다. 도저히 글쓰기가 비집고 들어올 만 한 틈이 보이지 않았다. 그러던 중 부엉이 상담소로 한 건의 고민상담이 접수됐다 


제가 잘 하는 일을 찾아서
저만의 수입을 만들고 싶어요.


이 내용을 봤을 때 솔직히 나는 상대방에게 해줄 말이 없을 것 같았다. 나 역시 아직 이렇다 할 답을 만들지 못한 사람이니까.


그래서 고민이 접수되고도 며칠이 지난 지금까지도 제대로 된 답장을 못 쓰고 있었는데 이번 기회에 짧게 답장을 써보려고 한다.


“저도 아직 제가 잘 하는 일이 뭔지, 어떠한 일을 통해 나만의 수입을 만들어낼 수 있을지 잘 모르겠어요. 그래서 일단은 내 삶에 필요한 최소한의 돈을 벌면서 내가 하고 싶은 일과 해야만 하는 일을 꾸준히 해보려고 해요.”


얼굴도 모르고 이름도 모르는 누군가의 짧은 한 마디에 복잡하던 머릿속이 말끔해졌다. 현재의 내 삶을 지탱하는데 필요한 돈은 아르바이트를 통해 벌고, 내가 하고 싶은 일(글쓰기, 책 읽기, 고양이 키우기)과 해야만 하는 일(일본어 공부)은 꾸준히 하기. 이게 지금의 내가 내린 ‘내가 살고 싶은 삶의’ 모습이라는 것.


그러한 이유로 나는 앞으로는 되도록 매일 글을 써보려고 한다. 물론 아르바이트도 할 거고, 고양이도 잘 키울 거고, 책도 읽을 거고, 일본어 공부도 할 것이니 예전처럼 ‘40분씩 매일 글쓰기’와 같은 엄청난 기세로는 못 쓸 것 같고, ‘자기 전에 10분이든 20분이든 쓰고 자자’는 작은 목표를 세워보려 한다. 


그래야 다음 달 이맘때쯤이 돼서 이렇게 지난 내 한 달을 돌아봤을 때, 두 발 쭉 뻗고 잘 잘 수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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