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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코붱 Jan 24. 2021

나의 불행은 당연하지 않았다

[독서노트] 우리의 불행은 당연하지 않습니다 / 김누리 저 / 해냄

코로나 사태가 진정될 기미를 보이지 않는다. 전 세계적으로 그렇다. 내가 살고 있는 일본도 2021년 1월 22일 기준 총 확진자수가 35만 명에 이른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몇 달 전부터 엄마는 말했다. “한국에 돌아올 생각은 없니?”


한국도 최근 들어 코로나가 확산세에 있다고는 하지만 내가 있는 일본보다는 방역 체계도 더 확실하고 대처도 잘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렇기에 코로나 때문이라면 한국에 돌아가는 것이 현명한 판단일 수 있겠다고 생각하면서도 좀처럼 돌아가야겠다는 마음은 들지 않는다.


나는 코로나도 무섭지만 코로나 이후에 마주하게 될 현실이 더 무섭다. 겨우 벗어난 대한민국이라는 지옥에 또다시 발을 들일 자신이 없어서다.


나는 대한민국이 싫었다. 정확히는 대한민국이라는 나라가 제공하는 사회적 제도와 교육 시스템이 싫었다.


대한민국이라는 나라 안에서 성장한 나는 왜 해야 하는지 모르지만 일단 공부는 열심히, 되도록 잘해야 했고, 졸업 후 취업이 잘 될 것 같은 학과를 선택해 대학에 진학하는 것이 현명한 선택이라고 생각하게 됐다.


대학에 들어가서도 끊임없는 학점 경쟁과 토익 점수, 외부 활동 등을 통한 ‘스펙 쌓기’에 열을 올려야 했다. 그래야 뒤처지지 않고 사회에 나가 제대로 된 일자리를 잡을 수 있는 확률이 조금이나마 올라갈 것 같았다.


그랬다. 내가 대한민국에서 태어나 받아온 모든 교육은 ‘취업’에 맞춰져 있었다. 대한민국에서 나는 한 명의 노동자는 될 수 있었지만 자신의 삶을 이해하고 남을 존중하며 약자를 배려하고 불의에 맞서 목소리를 높여 싸울 수 있는 민주시민이 되기란 쉽지 않았다.


늘 내 주변엔 경쟁이 있었고, 남을 배려하고 도와주다가는 내 자리마저 뺏기는 상황에 직면할 거란 위기감이 항상 도사리고 있었으니까.


인생의 대부분을 보낸 대한민국에서 나는 행복하지 않았다. 행복을 느낄 마음의 여유가 없었다. 때로는 이런 생각을 하는 내가 죄스럽게 느껴지기도 했다. 이 정도로도 못 사는 나라도 많다던데 내가 너무 배부른 소리를 하는 것이 아닐까? 삼시 세끼 굶지 않고 먹을 것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감사해야 하는 건 아닐까?


이런 생각들로 괴로워하던 내게 ‘당신의 불행은 당연한 것이 아니라고’ 명쾌히 말해주는 책을 한 권 만났다. 중앙대학교 독어독문학과 교수이자 독일유럽연구센터 소장인 김누리 교수의 책, 『우리의 불행은 당연하지 않습니다, 김누리 저, 해냄(2020)』. 다.


2019년 기준 OECD 회원국 중에서 15년째 자살률 1위를 기록하는 나라. 소득별 인구의 상위 10%가 전체 자산의 66%를 차지할 정도로 소득 간 불평등이 심각한 나라. (심지어 부동산 면적으로만 보면 상위 10%가 약 97%의 부동산 면적을 차지하는 중이라고 한다.)


세계 평균 10배의 노인 자살률과 3-4배의 청년 자살률을 보이는 나라. 노조 조직률이 10%에 불과할 정도로 기업 내에서의 노동자의 권리와 인권이 존중받지 못하는 나라. 억지로 강요받아온 유교적 윤리에 의해 여성에게 강제된 육아와 사회적 시선에 대한 크고 작은 억압이 산재한 나라.


1인당 국민소득 3만 불 이상, 인구 5천만 명 이상의 나라에서 일어나는 일이라고는 생각할 수 없는 일들이 아무런 의심도 제재도 없이 태연히 자행되는 나라가 내가 나고 자란 대한민국이라는 것을 저자는 책을 통해 매우 상세히 알려준다.


여기서 그치지 않고 저자는 한발 더 나아간다. 현재의 대한민국이 안고 있는 크고 작은 문제들의 민낯을 낱낱이 드러낸 뒤 어떻게 하면 그 문제들을 해결해 ‘병든’ 대한민국을 치료할 수 있을지에 대한 몇 가지 안을 제안하는데, 그중에서 인상 깊었던 것들을 몇 개 소개하자면 동독과 서독으로 분리되어 있던 독일이 통일의 과정을 거쳐 하나의 나라로 통합되는 과정을 상세히 보여줌으로써 우리나라가 직면한 ‘분단’이라는 과제를 어떻게 해결해 나가야 할지에 대한 방향을 제시한 부분과, 정치 분야 외에는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은 ‘민주화’를 문화와 사회, 경제 등의 일상적인 분야로도 확산시켜야 한다는 주장 등이 매우 인상 깊었다.


또한 저자는 그런 일들을 오직 개인의 노력에만 맡길 것이 아니라 정치를 통해 제대로 된 법과 제도를 만들어 ‘사회적 안전망’을 구축해야 한다고 주장하는데, 이는 ‘실업’과 ‘불평등’이라는 약탈적 자본주의가 낳은 고질병을 앓고 있는 대한민국의 정상화를 위해 꼭 필요한 일이라고 생각했다.


끊임없는 경쟁에 쫓겨 타인에 대한 인격적 감수성이 부족해진 남한의 약탈적 자본주의를 인간화하고 세습제라는 북한의 봉건적 사회주의를 민주화하는 방향으로 나아가야 한다는 내용도 꽤 설득력 있다.


책에서 주장한 저자의 제시안이 대한민국이라는 사회를 얼마나 바꾸게 될지는 모른다. 그러나 나를 포함한 수많은 사람들을 불행하게 만든 것이 어디서부터 기인했는지를 알게 되었다는 것만으로도 지금의 대한민국에 던지는 메시지는 충분하다고 본다.


우리가 겪은 수많은 경제적, 문화적, 일상적인 불평등과 차별은 당연하지 않다. 그렇다면 우리는 앞으로 어떠한 사회를 만들어나가야 할 것인가? 이에 대한 답을 구하는 데에 이 책은 좋은 길잡이가 되어줄 것이라고 확신한다.     



한줄평 : 청와대는 이 책을 모든 공무원들 (국회의원 포함) 에게 한 권씩 배부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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