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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코붱 Mar 16. 2021

에세이는 억지로 만들어지지 않는다

글이 멈춘 에세이스트의 이유 있는 변명

한동안 글을 안 썼다. 엄밀히 말하자면 못 썼다고 하는 게 맞다. 나는 작년에 브런치에 하나씩 써서 올린 글들을 모아 두 권의 책을 출간했다. 일 년에 두 권. 누군가 보기에는 그리 많게 느껴지지 않을 수도 있다. 하지만 그런 생각을 하는 사람들조차도 이 한 마디를 들으면 생각이 달라질 것이다. 내가 낸 책의 장르는 모두 ‘에세이’였다.


문학동네의 15년 차 에세이 편집자인 이연실 편집자는 최근 낸 저서 『에세이 만드는 법』에서 에세이라는 장르의 속성을 이렇게 표현했다.


에세이는 억지로 만들어지지 않는다.
한 사람이 살아온 대로, 경험한 만큼 쓰이는 글이 에세이다.

삶이 불러주는 이야기를 기억 속에서 숙성시켰다가
작가의 손이 자연스레 받아쓰는 글이 에세이다.
 
『13p, 에세이 만드는 법, 이연실 저, 유유(2021)』


이연실 편집자의 말에 빗대어 표현하자면 나는 지금 삶이 내게 불러주는 이야기가 없다. 그간의 이야기는 두 권의 책을 통해 다 받아 적었다. 그래서 지금 나는 글이 나오지 않는 것이었다.


이 사실을 깨닫기 전까지 나는 많이 괴로웠다. ‘살면서 써지는 글’이 좋다던 에세이스트가 글이 안 써진다? 그렇다면 삶에 대한 의욕도 열정도 사라졌다는 뜻인가? 답도 없는 물음을 스스로에게 던지며 끊임없이 자학했다. 그러다 어제, 이 문장을 만나고 나서야 나는 비로소 가슴에 품고 있던 무거운 짐을 덜어낼 수 있었다.


글을 잘 쓰는 방법 중 하나로 ‘꾸준함’을 말하는 사람들이 많다. 누구나 처음은 서툰 것이며 글이란 쓰다 보면 느는 것이라고. 이제 겨우 두 권밖에 안 낸 무명의 작가인 나조차도 얼추 비슷한 말을 내 책에 써넣기도 했다. 그런데 나는 요즘 그 말이 조금 불편하다.


때로는 글쓰기보다 삶에 더 충실해야 할 때가 있는 것 같다. 특히 에세이스트라는 자신이 경험하고 살아온 이야기를 주로 쓰는 사람이라면 더더욱 말이다. 에세이란 결국 한 사람의 삶의 궤적을 따라가는 것이기에 누군가에게 들려주고 싶은 이야기를 쓰고 싶다면 우선 작가 스스로 그러한 삶을 살아내는 것이 먼저이지 않을까?


사정이 이러하기에 나는 한동안 공개적으로는 에세이를 쓰지 않을 것이다. 비공개적으로도 당분간은 글보다는 삶이 우선하는 생활을 이어갈 예정이다.


그렇게 차곡차곡 쌓인 내 삶이 어느 날 내게 말을 걸어올 때까지,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오직 하나다. 내 삶을 성실히 살아내는 것. 내가 하고 싶은 일, 해야 하는 일을 서툴더라도 정성껏 해나가는 것.


그것만이 내 삶이 또다시 이야기가 되어 글이라는 형태로 써질 수 있는 가장 빠르고 확실한 길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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