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코붱 Apr 11. 2021

어른이 어려운 '어른이'들을 위하여

[독서노트] 어른이 되어 그만둔 것

내가 벌써 서른다섯 이라니. 시간은 참 빨리도 흐르는 것 같다. 특히 내 시간은 남보다 1.5배는 더 빠르게 흘러가는 기분이다.


예전에는 서른다섯이라고 하면 엄청난 어른처럼 느껴졌다. 하지만 한 사람을 ‘어른’이라고 판단할 수 있는 기준으로 삼기에 ‘나이’는 그 근거가 너무 빈약하고 힘이 없다는 것을 이제는 나도 안다. 


서른다섯의 나는 생각했던 것처럼 그리 훌륭하지도 멋지지도 않았다. 확고한 신념과 기준을 가지고 세상을 살아간다기보다는 이게 맞나 저게 맞나 여기저기 기웃거리다 주저앉기도 하고, 안 되겠다 싶을 땐 세상으로부터 여러 번 도망치기도 했다. 그렇게 나는 서른다섯이라는 나이에도 불구하고 ‘어른’이라는 단어 앞에 당당해질 수 없었다.


어른도 어른이 어렵다. 이 당연한 사실을 어릴 땐 잘 이해할 수 없었다. 나이를 먹으면 자연히 인생의 경험치가 올라가고 그로 인해 삶을 지혜롭게 살아가는 방법도 터득하게 될 거라고 믿었다.


하지만 아무것도 하지 않고 그저 나이만 먹어봤자 인간은 ‘어른’이 될 수 없다. 그렇다면 대체 어른이란 뭘까? 어떻게 해야 나도 ‘어른’이라는 단어 앞에 당당해질 수 있을까? 


이런 답답한 마음에 한 줄기 빛을 비춰주는 고마운 책을 한 권 만났다. 개인적으로 애정 하는 출판사 중 하나인 드렁큰 에디터에서 펴낸 번역서.『어른이 되어 그만둔 것, 이치다 노리코 지음, 황미숙 옮김, 드렁큰 에디터(2020)』이다.


저자인 이치다 노리코는 50대의 프리랜서 작가다. 저자 역시 마흔까지는 ‘이건 꼭 필요하다’며 고수하던 원칙이나 습관이 있었다. 


일을 혼자서 완벽히 해내고자 무리했으며 음식이나 패션에 대한 집착은 물론, 인간관계에 대해서도 크고 작은 강박에 사로잡혀 살아왔다고 한다.


일상에서 자리 잡은 여러 가지 습관과 원칙이 불필요한 강박과 고집이었다는 것을 깨닫게 된 것은 저자가 쉰이 되었을 무렵부터였다고 한다.


그렇게 오십이 넘은 저자가 일과 인간관계, 일상과 스타일이라는 자신의 삶을 아우르는 전반적인 면에서 무엇을 ‘그만두게 되었는지’에 대해 쓴 책이 바로 『어른이 되어 그만둔 것』이다.


결점 고치기를 그만두고, ‘쓸데없이 열심히’를 그만두고, ‘그래도 남들만큼’을 그만두었다는 저자의 고백에 절로 고개가 끄덕여지고, ‘혹시 몰라서’하는 준비를 그만두고 완벽한 청소를 그만두었으며 예쁘고 불편한 구두 신기를 그만뒀다는 부분에서는 마음속 깊이 공감했다.


어떻게 보면 굉장히 사소하고 별거 없어 보이는 저자의 ‘그만두기’가 이토록 공감되었던 것은 사소해 보이는 일부터 하나씩 자기만의 기준을 세워 행동해나가는 저자의 모습에서 진정한 ‘어른’의 모습이 보였기 때문이다.


나이가 들수록 세계는 생각보다도 훨씬 더 불확실하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어요.
그러다 보니 잣대를 나 자신에게 둘 수밖에 없겠다 싶은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렇게 서랍 속 물건들을 재정의하면서 저의 50대는 시작되었습니다.

- 『어른이 되어 그만둔 것, 이치다 노리코 지음, 황미숙 옮김, 드렁큰에디터(2020)』中


무언가를 그만두기 위해서는 그만큼의 용기와 노력이 필요하다. 그것이 남들이 당연하게 여기는 가치와 원칙이라면 더더욱.


삶의 불확실성을 인정하고 스스로의 신념과 가치에 따라 행동하는 것. 

그것이야말로 제대로 된 ‘어른’의 모습이 아닐까?


이 책은 어른으로 사는 게 버겁고 힘든 현대인들에게 제대로 된 ‘어른’이 전하는 상냥한 위로와 응원이 가득 담긴 책이다.


덤으로 번역서임에도 문장이 너무 매끄러워서 읽는 동안 여러 번 감탄했다. 또 한 분의 좋은 번역가를 알게 되었다. 이건 지금 공부 중인 에세이가 끝나면 원서(大人になってやめたこと)를 구입해서 다음 공부용 교재로 볼 예정.

                               




매거진의 이전글 시대를 관통하는 소설에 있는 것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