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렇게 글을 써도 되겠구나

2021년 4월 22일 - 오늘을 남깁니다

by 코붱

요즘 번역 공부용으로 읽고 있는 마스다 미리의 에세이 『그런 날도 있다, 마스다 미리 저, 이소담 역, 북포레스트』는 한 꼭지 글의 분량이 매우 짧다. 한 꼭지 당 많아야 A4용지의 절반을 넘기지 않는다.


처음엔 당황스러웠다. 이렇게 짧아도 되나 싶었다. 이제 겨우 두 권밖에 책을 내보진 않았지만 그래도 내 경험상 말하자면 책 한 권을 내기 위해서는 적당한 분량의 원고가 필요하다. 특히 각 꼭지마다 분량의 편차가 심하지 않은 편이 좋은데 개인적으로는 한 꼭지 당 A4로 1페이지에서 1페이지 반 정도 되는 분량이 적당하다고 생각해왔다.


하지만 이 생각이 어디까지나 내 ‘개인적인 생각’에 지나지 않다는 것을 마스다 미리의 에세이 『그런 날도 있다』를 보며 느꼈다.


제목에서부터 알 수 있지만 이 책은 일본의 만화가이자 에세이스트인 마스다 미리가 겪은 일상의 소소한 이야기들이 엮인 책이다.


얼마 전부터 다니기 시작한 피아노 교실에 대한 이야기나 이삿짐을 옮겨주기 위해 오사카에서 도쿄로 와준 어머니에 대한 이야기, 며칠 전 들린 빵집에서 본 아르바이트생에 대한 이야기 등등, 실로 자질구레한 이야기가 짧게 짧게 이어진다.


처음엔 짧게 끊어지는 이야기들에 잘 적응할 수 없었다. 뭔가 더 있어야 할 것 같고 이대로 이야기가 끝나서는 안 될 것 같다는 생각마저 들었다. 그래서 원래대로였다면 나는 이 책을 중간에 포기했을 가능성이 높다.


하지만 번역 공부용 교재로 결정한 이상, (그래서 원서도 사고 한국에서 출간된 번역서까지 종이책으로 산 이상) 끝까지 봐야겠다는 생각에 지금까지 읽어왔는데 그러길 잘했다는 생각이 이제야 든다.


그녀의 글은 비록 분량은 짧지만 그 안에서 느껴지는 메시지가 있었다. 작가가 이때 어떤 마음이 들었는지, 어떤 생각을 표현하고 싶어서 이 이야기를 굳이 글로 적었는지가 서서히 눈에 들어왔다. 그러자 ‘글에는 일정한 분량이 필요하다.’ 던 내 생각에도 조금씩 균열이 생기기 시작했다.


글에는 일정한 분량보다 ‘메시지’가 필요했다. 이 글을 쓴 작가의 의도가 무엇인지, 무슨 말이 하고 싶어서 이 글을 썼는지가 눈에 보이는 글과 보이지 않는 글이야 말로 좋은 글과 그렇지 않은 글을 가르는 기준이 된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다면 나도 굳이 분량에 연연하며 글을 쓸 필요는 없겠구나?


그런 생각 끝에 나는 이 매거진을 개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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