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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코붱 Feb 08. 2023

보너스 타임

일본생활 기록부

“오늘은 소설 구상도 짜볼거고, 주식 공부도 하고 에세이도 쓸 거야! 운동은 지금 걷는 걸로 퉁칠 거지만 외국어 공부는 저녁 먹기 전에 해야지!”


지난주 주말, 남편과 손잡고 맥도널드로 걸어가며 조잘조잘 떠들어대는 내 얘기를 묵묵히 들어주던 남편이 갑자기 툭 한마디를 던졌다.


“그럼 언제 쉬어?”

“응?”


그게 무슨 소리냐는 듯 동그랗게 뜬 눈으로 재차 묻는 내게 남편은 말했다.


“모처럼의 주말인데... 그 많은 걸 다 하면 자긴 대체 언제 쉬려고?”


그 말을 듣는 순간, 열심히 머릿속에서 오늘의 할 일 목록을 정리하고 있던 내 뇌의 움직임이 일시에 정지했다. 동시에 걸음까지 뚝 멈춘 내 팔을 잡고 천천히 앞으로 이끌던 남편은 계속해서 말을 이었다.


“나는 주말은 좀 쉬기도 하고 놀기도 하고.. 그러는 게 좋은 것 같아. 그래야 평일을 더 열심히 살게 되는 기분이 들거든. 나한테 있어서 주말은 뭐랄까... 일종의 보너스 타임 같은 느낌이랄까?”


보너스 타임이라. 사실 나로서는 그 말의 의미가 한 번에 와닿진 않았다. 평일에 하루 10시간 이상을 직장에 묶여 있는 남편과 달리 나의 본캐는 전업주부이자 작가였으니까. 


내겐 평일이든 주말이든 다 같은 시간처럼 느껴졌다. 그렇다 보니 주말이라고 해서 더 특별하게 느껴진 적은 거의 없었던 것이다.


하지만 남편의 말에 문득 몇 년 전 여러 활동에 모든 시간을 쏟아부었던 당시의 내 하루가 떠올랐다. 


글도 쓰고 책도 읽고, 유튜브 영상도 만들고, 네이버 오디오클립용 파일도 편집하고 그러면서 집안일까지 하고. 평일과 주말의 구분 없이 하루 24시간을 쪼개듯이 하루하루를 살았다. 그러다 번아웃이 왔고, 결국 우울증 증세까지 겪었었지.


생각이 여기에까지 미치자 남편이 하는 말의 진짜 의미를 어렴풋하게나마 알 것 같았다. 남편은 내게 말하고 있었다. 쉬라고. 그러다 전처럼 또 힘들어서 주저앉을 수도 있다고. 적당히 쉬면서 가야 더 오래갈 수 있다고.

오랜 슬럼프에서 내가 헤어 나올 수 있었던 것 역시 별다른 조치가 있었던 게 아니었다. 그저 쉬었다. 글이든 영상이든 음성파일이든 전부 다 손에서 놓고 그저 인간 김연정으로서의 삶을 살았다.


당시엔 그러는 나 스스로가 너무 한심하고 이렇게 지내도 될지 두렵고 무서웠지만 돌이켜보면 아무것도 안 한 것 같은 그 시간 동안 나는 결코 아무것도 하지 않은 것이 아니었다. 


충전의 시간을 가졌던 것이다. 언젠가 지금처럼 다시 무언가가 하고 싶어지는 날이 올 때 제대로 힘을 발휘하기 위한 에너지를 내 안에 차곡차곡 쌓아가고 있던 것이다. 생각해 보면 그때가 바로 내 인생의 ‘보너스 타임’이었던 것인지도 모른다.


또다시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게 하려는 남편의 배려에 괜히 코끝이 찡해졌다. 나는 남편의 곁에 바짝 붙어서 잡고 있던 손에 깍지를 꼈다.


“우리 오늘 뭐 하고 놀까?”


.

.

.


▼이어지는 내용은 아래 링크에서 무료로 보실 수 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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