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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코붱 Feb 20. 2023

쓰는 사람에게만 보이는 세상

『쓰다 보면 보이는 것들(2022, 마음연결)』

한동안 글쓰기에 회의적인 생각을 하며 살았다. 글을 쓸 시간에 기술을 배우든 주식을 공부하든 했더라면 지금보다는 더 나은 삶을 살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부질없는 생각들로 스스로를 좀먹어갔다.


그렇게 길고 긴 방황의 시간을 끝내고 겨우 다시 글을 쓰게 된 바로 이 시점에 이 책을 읽었다. 진아, 정아, 선량 작가님이 의기투합하여 만든 『쓰다 보면 보이는 것들』.


많고 많은 글쓰기 책 중에 하필 이 책을 고른 이유는 내가 글쓰기와 거리를 두며 살았던 그 시기에 이 세 분은 그 어느 때보다 치열하게 글을 써왔고 그 결과로써 이 책을 만들어냈음을 알기 때문이다.


나는 온라인 독서모임을 통해, 또는 브런치와 인스타를 통해, 이 세 분의 작가님들과 느슨하지만 꾸준히 소통을 이어오고 있었다.


내가 글쓰기에 대해 부정적인 면만 보고 있을 때, 이들에게는 과연 어떤 것들이 보였을까. 어떤 세상에서 어떤 감정을 느끼고 어떤 깨달음을 얻었기에 남들에게 글쓰기를 권하는 책까지 내게 되었을까.


그런 궁금증을 안고서 한 장 두 장, 책장을 넘겼다.



책에서 세 작가님은 육아와 살림은 물론 본업까지 충실히 해나가면서도 꾸준히 글을 쓰는 엄청난 저력을 보여주신다.      


글을 쓸 수 있는 사람과 쓸 수 없는 사람이 따로 정해져 있는 것은 결코 아니에요. 다만 글을 쓰는 사람과 글을 쓰지 않는 사람이 있을 뿐이지요. - 54p     


엄마이자 아내이면서 한 사람의 사회인으로서의 역할을 성실히 해내면서도 글까지 쓰는 그들은 세간에서 말하는 소위 ’ 글쓰기 전문가‘라고는 할 수 없다. 하지만 책을 읽는 내내 나는 그들이 ’ 쓰는 사람‘이라는 것은 결코 부정할 수 없었다.


때로는 그들에게도 글을 시작하기도 힘들고 그걸 지속하기는 더 힘든 순간이 찾아왔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세 분의 작가님들은 쓰고, 쓰고, 또 썼다.


그 결과 혼자서 썼던 글이 같이 쓰는 글이 되었고, 같이 썼던 글이 책이 되더니 급기야 얼굴도 이름도 모르는 사람들에게 읽히고 그 글을 읽는 누군가의 ’ 쓰고 싶다는 마음‘까지 살짝 건드리기에 이르렀다.


'쓰는 사람'이 사는 세계란 바로 이런 것이란 점을 세 분의 작가님은 책을 통해 자신의 경험과 생각을 빌려 진솔하지만 위트 있게 전하고 있다.  

   

하루에도 수십 번 들락이는 인스타그램에 #먹스타그램 #책스타그램 #육아스타그램 으로 이어가는 해시태그는 줄줄이 달면서도 정작 내 마음 엮은 글 한 편 제대로 적는 일은 쩔쩔매고 있지 않으신가요?(중략)

세상에 입을 것 없다고 하는 사람 중에 벗고 사는 사람 하나 없고, 먹을 거 없다는 사람치고 냉장고에 쟁여둔 떡 한 봉지 없는 사람은 없을 겁니다.

다시 한번 마음에 손을 얹고 물어봅시다. 진짜 없어서 못 쓰는 건지. 좀 전까지 습관적으로 올린 그 사진과 해시태그는 다 뭔지. - 100~101p.     


세 작가님들은 책을 통해 글을 쓰기 위해서는 그다지 대단한 능력이 필요한 건 아니라고 말한다. 단 한 두줄의 일기에서부터 인스타그램에 습관처럼 다는 해시태그까지 전부 다 훌륭한 글이 될 수 있다며 나름 구체적인 예시와 실전팁까지도 살짝 전수해 준다.


나는 세간에 나와있는 글쓰기 책과 이 책을 구분 지어주는 뚜렷한 차이가 바로 여기에서 기인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읽히는 글의 핵심은 ‘내가 하고 싶은 말을, 네가 읽고 싶게 쓴다.’에 있습니다. (중략)
쓸 수 있는 걸 아무거나 그저 쓰기 시작하면 됩니다. 어차피 세상에 필요한 모든 글은 이미 나와 있어요.대신 내 손으로 쓴 내 글이 무엇에 관한 이야기인지, 이 글을 통해 무슨 말을 하고 싶은지, 렌즈를 당겨 초점을 맞추듯 주제를 또렷하게 하면 됩니다. - 137~138P


글을 전문적으로 쓰진 않지만 뭔가 써보고 싶은 사람. 혹은 쓸 거리는 있지만 어떻게 글을 시작해야 할지 모르는 사람, 또는 글쓰기를 이제 막 시작한 초보 작가들에게 세 작가님은 각자의 고유한 생각과 경험을 토대로 읽기만 해도 피가 되고 살이 될 것 같은 글쓰기에 관한 팁을 진솔하지만 결코 무겁지 않은 톤으로 성심껏 들려준다.


저나 선량 작가님, 정아 작가님 모두 살기 위한 방편으로 찾은 것이 글쓰기였습니다. 잊고 싶지 않은 기억을 기록하고 싶었고, 사라지는 ‘나’를 찾고 싶었고, 생을 긍정하고 사랑하고 싶어서 시작한 일이었지요.
- 279p     


이 여자들로 말할 것 같으면 ‘안 쓰는 사람을 쓰게 하고, 못 쓰겠다.’고 나자빠진 사람도 일으키는 신비한 힘을 가진 자들입니다. 게다가 모이면 모일수록 그 힘은 더 커진다고 하니 이길 재간이 없는 여자들이기도 하지요. - 287p     


부끄러운 마음을 내려놓고 다듬어지지 않은 서로의 글을 보여줄 수 있는 사람, 글에 대한 피드백을 거리낌 없이 받아들일 수 있는 사람, 오랫동안 함께 글 친구로 남고 싶은 사람입니다. - 299P     


글이란 나 자신과 내 곁에 있는 사람을 거쳐 더 멀리 떨어져 있을 누군가와 연결시켜 주는 훌륭한 매개체라고 그들은 말한다.


혼자서는 결코 해낼 수 없을 거라고 생각한 글쓰기라는(그리고 책 쓰기라는) 대장정을 결국엔 해낸 그들은 어쩌면 글쓰기를 시작하고 지속하고 즐기는 데에 있어 가장 중요한 것들을 서로의 글과 그 속에 담긴 생각들을 통해 하나씩 배워가지 않았을까 싶다.


바로 그러하기에 그들이 쓴 책 『쓰다 보면 보이는 것들』은 비로소 읽을 가치가 있다.


때로는 전문가의 노련한 한 마디 보다, 아무것도 없는 맨땅에 헤딩하듯 헤매고 좌절하고 그러다가 어느새 자기만의 길을 뚜벅뚜벅 걸어가는 누군가의 이야기가 주는 울림이 더 크게 다가오기도 하니까.


그들이 겪은 ‘혼자 쓰고 같이 쓰는 일의 기쁨과 슬픔’은 글을 ‘쓰지 않는 사람’을 ‘쓰는 사람’으로 만들어주는 데에서만 그치지 않았다. 글 같은 건 다시는 쓰지 않을 거라며 마음의 빗장을 꼭 걸어 잠궜던 나 같은 사람의 마음까지도 한 순간에 무장해제 시켜 버렸다.



‘쓰고 싶지 않은 사람’을 ‘계속해서 쓰고 싶은 사람’으로 만들어준 이 책엔 과연 어떤 힘이 있는 걸까?

궁금하다면 진아, 정아, 선량 작가님의 책 『쓰다 보면 보이는 것들』을 꼭 일독해 보시길 바란다.




*내돈내산 찐후기! :)





오랜만에 제대로 된 글쓰기 책을 만난듯한 기분이 듭니다. :) 이 책을 쓰기 위해 고군분투해오신 진아, 정아, 선량 작가님. 모두 고생 많으셨어요. 정말 재밌게 잘 읽었습니다!


그리고 한 가지 아쉬운 소식을 전하고자 합니다.


이번주 수요일과 금요일에 업데이트 될 예정이었던 '일본 생활 기록부'와 '주식하는 무명 작가의 허허실실'은 한 주 쉬어가게 되었습니다.


오랜만에 한국에 왔더니 처리해야 할 일도, 만나뵈어야 할 분들도 너무 많아서 정신이 하나도 없네요 @_@

지난주에 올린 글에도 댓글조차 못 달아드려서 죄송합니다 T_T


조만간 일본에 돌아가면 다시 제대로 인사드리도록 할게요!

늘 읽어주시고 응원해주셔서 항상 감사드립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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