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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코붱 Mar 09. 2023

미지근하지만 단단한 편집자의 일상

『편집하는 삶, 봄동이, 책나물(2023)』

“나는 저자의 삶이 잘 보이는 에세이가 좋아.”


오랜만에 만난 한 친구가 한 말에 나는 조금 의아한 기분이 들었다. 보통 에세이라는 장르 자체가 저자의 삶의 이야기를 바탕으로 쓰인 것이 아닌가? 혹시 친구는 그렇지 않은 에세이라도 읽었던 적이 있는 걸까?


아리송한 친구의 말에 혼자 이런저런 상상의 나래를 펼치고 있는 내게 친구가 한 마디를 덧붙였다.


“그 사람 고유의 삶의 방식이나 태도 같은 게 문장 속에서 읽히면서.. 그저 글을 읽기만 해도 만난 적도 없는 누군가의 하루가 궁금해지고... 뭐 그런 에세이를 선호한다는 뜻이었어.”


아, 그런 거라면 나도 인정! 뒤늦게나마 친구의 말에 맞장구를 치며 나는 연신 고개를 끄덕였다.


3년 전 여름. 브런치에서 연재했던 글을 모아 처음으로 낸 내 책 『경로를 이탈하셨습니다』의 장르는 에세이다. 그 책에는 약 6년 간 3개의 회사를 전전하며 느꼈던 직장인으로서의 삶과 퇴사 후 백수로서 맞닥뜨린 삶에 대한 내 이야기가 담겨있다.


처음엔 이런 걸 글로 써도 되나 무척 망설였었다. 퇴사 후 백수로 지내는 것에 대한 세간의 시선은 그리 곱지 않았고 당시엔 나 조차도 이런 스스로를 초라하게 생각했으니까.


하지만 문득 바로 그러하기에 내가 쓰는 글의 가치가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모두가 백수인 나에게 혀를 차고 손가락질을 할 때, ‘백수면 뭐 어때? 백수라서 할 수 있는 생각과 행동이 있어!’라고 소리 높여 말해줄 수 있는 누군가가 이 세상에 한 명쯤은 존재하는 것도 좋지 않을까?


그런 마음으로 약 2년 간 조각조각 써왔던 글을 다듬고 정제하여 써낸 책이 바로 나의 첫 책『경로를 이탈하셨습니다』다.


물론 호기롭게 시작한 처음과 달리 내 첫 책의 판매량은 예상보다 저조했고, 중쇄를 찍지 못한 채 올해 여름쯤 절판될 운명에 놓여있지만 그럼에도 그 책을 출간한 것에 대해서는 일말의 후회도 없다. 

아마 그 책의 원고를 집필하는 동안 약 6년에 달하는 내 삶의 면면을 들여다보고 당시의 내 생각과 행동을 되짚어 생각해 볼 수 있는 시간을 충분히 가졌기 때문일 것이다.


비록 책은 내게 물질적인 보상을 충분히 주진 못했지만 좀 더 장기적인 안목으로 내 삶을 바라볼 수 있는 넉넉한 마음과 불가능하다 여겨지는 것들에 일단 한 번 도전해 보게 만드는 태도를 갖게 만들었다.


그때의 경험은 나로 하여금 직접 책을 쓰는 일뿐만이 아니라 원고를 엮어 물성을 지닌 하나의 책을 만들어내는 출판업에 대한 관심까지 갖게 만들었다.


겨우 책을 한 권 출간했을 뿐인 초보 작가도 이럴진대. 수십 종의 책을 만드는 사람들은 과연 어떤 생각과 태도로 삶을 바라볼까? 그들의 삶에는 과연 어떤 고민과 역경이 있고 또한 그것들을 어떻게 뛰어넘으며 매일 스스로의 삶을 개척해 나가는 걸까?


이런 궁금증을 안고서 그간 편집자나 출판사 대표가 출간하는 책은 대부분 사서 읽어보곤 했다. 

이번에 읽은 책 『편집하는 삶』에는 10여 년 이상의 경력을 지닌 배테랑 편집자가 어느 날 갑자기 1인출판사의 대표가 되어 사는 삶에 대한 이야기가 담겨있다.


특이한 것은 물성이 있는 종이책이 아닌 오직 전자책으로만 출간되었다는 점이다. 2번째 책을 오직 전자책으로만 출간한 경험이 있는 나로서는 구미가 절로 당기지 않을 수가 없었다.


마침 출판사에서는 서평단을 뜻하는 ‘읽는 사람’을 모집 중이었고, 용기 내어 신청한 결과 운 좋게도 읽는 사람에 선정되어 나는 지난 2주간 틈틈이 이 책을 읽어 나갔다.


책은 2021년부터 2023년까지 약 2년에 걸쳐 1인출판사인 ‘책나물’을 꾸려가는 한 사람의 이야기가 일기 형식으로 구성되어 있다.


처음엔 생각했던 구성과 달라 책을 읽는 데 속도가 잘 붙지 않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짧게 기록된 매일의 일상에서 읽히는 편집자이자 1인출판사를 이끄는 대표인 저자의 삶에 시나브로 빠져들게 되는 나를 발견할 수 있었다.


이 책의 저자이자 1인출판사 책나물의 대표인 봄동이(김화영 편집자)님은 책 『편집하는 삶』을 통해 자신이 왜 1인출판사를 차리게 되었는가에 대해서 이렇게 밝혔다.


'만들고 싶은 책이 생겼고, 

할 수 있을 것 같았고, 

즐겁게 일하고 싶었으며 

일상의 순간순간을 원하는 대로 만들어 나가고 싶었다'고.


과연 그 말 그대로 책에서는 1인출판사를 운영하는 대표이자 편집자로서 자신이 만들고 싶은 책을 한 권 한 권, 정성스레 만드는 봄동이 님의 일상이 미지근하지만 단단하게 흘러간다.


출판사 등록을 하고, 저자를 섭외하고, 책을 만들고. 때로는 출판 비용을 벌기 위해 프리랜서로 편집 아르바이트도 하면서 1인출판사, 책나물을 지켜가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봄동이 님의 일상은 일견 단조로워 보이지만 결코 녹록지 않아 보였다.


봄동이 님 역시 때때로 자신이 가는 길에 의문이 들고 알 수 없는 두려움이 생길 때가 있다는 것을 책을 통해 솔직히 밝힌다.


그런데도 왜 그녀는 그 가시밭길을 아직 포기하지 않고 걷고 있는 걸까? 이에 대한 대답도 역시 책을 통해 들을 수 있었다.


어쩌면 나는 ‘좋은 책을 향한 내 마음’만 믿고 가고 있구나, 그것만으로 꼭 좋은 결과만을 낼 수 있는 건 아닌 것 같은데, 잘 가고 있는 걸까, 마음 한구석에서 스멀스멀 피어오르던 쓸쓸함이 있었던 것 같은데. ‘잘 가고 있어요. 같이 걸어요.’하는 위로와 격려를 받은 느낌이랄까.

『편집하는 삶, 봄동이, 책나물(2023)』 본문 중 2021년 7월 27일 내용에서 발췌


이제 시작한 지 3년 차를 맞이하는 책나물에도 종종 투고 원고가 들어온다고 한다. 아마 책나물을 만들고 이끌어가는 대표님의 삶에 공감하는 것은 물론, 만들어내는 책 한 권 한 권에 담긴 대표님의 정성과 열정에 감응한 이들이 많아서이지 않을까?


가끔 내 책은 어떤 과정을 거쳐 지금의 모습을 갖추게 됐을까가 궁금하기도 했는데, 『편집하는 삶』에는 바로 책나물에서 만든 책이 세상을 향해 나아가는 순간까지의 여정이 군데군데에 기록되어 있다. 그렇게 출간된 각각의 책을 향한 봄동이 님의 애정은 물론, 세상에 책이 나오고 유통되는 데 필요한 현실적인 문제들을 어떻게 해결해 나가는지에 대한 소소한 팁까지 꽉꽉 담겨있기도 하다.


2023년 3월 8일을 기점으로 2번째 생일을 맞이한 1인출판사 ‘책나물’의 유일한 전자책 『편집하는 삶』은 책나물 운영 비용을 마련하기 위한 사이드 프로젝트로 출간되었다고 한다.


부디 이 책이 많은 사람들에게 읽히고 사랑받아서 ‘좋은 책을 잔뜩 만들고 싶고, 돈도 왕창 벌고 싶다’는 봄동이 님의 소원이 꼭 이뤄지기를 바란다.


책나물이 만든 책을 한 권이라도 더 많이 읽고 싶은 사람으로서 책나물이 지금처럼 ‘미지근하지만 오래오래’ 좋은 책을 많이 만들어주길 바라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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