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 사십, 밴쿠버에 새 둥지를 틀다.

캐나다 이민 그 첫 이야기

by 투빗
스탠리 파크에서 바라 본 밴쿠버 다운타운

13년 하고도 몇 개월, 이쯤이면 밴쿠버 생활도 제법 익숙해졌을 법한데 나의 미숙한 영어만큼이나 밴쿠버는 여전히 낯설다. 그래도 그때를 뒤돌아볼 수 있으니 낯선 땅에서의 어설픈 여유가 생긴 걸까. 내 나이 사십이던 그때, 나는 그렇게 모든 것이 낯설었던 이곳 밴쿠버에서 새로운 시작을 맞이했다.


당초 계획은 2년의 휴직기간 동안 밴쿠버에 있는 한 대학에서 OO 연구를 진행하고 그 연구 결과는 한국에 돌아가자마자 논문으로 발표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1년이 채 지나지 않아 새로 부임한 최고 윗선은 전임자의 결정을 뒤집어 곧장 귀국 명령을 내렸고 나는 객기와 호기에 용기를 더해 이메일 사직서 제출과 함께 밴쿠버에 남기로 했다.


캐나다, 특히 밴쿠버는 이민을 꿈꾸는 많은 이들의 로망이다. 이곳 사람들에게도 밴쿠버는 은퇴 후 정착지 1순위로 꼽힌다. 겨울에도 날이 온화해 영하로 내려가는 경우가 드물고 자연과 문명이 적절히 공존해 균형 있는 삶을 가능하게 해주는 밴쿠버는 아침 일찍 골프를 치고 한낮엔 해변에서 태양을 즐기다 해 질 녘 산에 올라 스키를 탄다는 누군가의 농담처럼 어지간히 매력적인 도시가 아닐 수 없다.


이민에는 저마다의 이유가 있다. 자녀 교육이라는 현실적인 필요에서부터 삶의 질에 대한 근본적인 회의에 이르기까지 그 깊이도 다양하다. 돌이켜보면 나에게도 몇 가지 이유는 있었던 듯하다.


당시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었던, 아이와 엄마를 조기유학 보낸 기러기 아빠의 멋쩍은 웃음 뒤 숨겨진 애처로움. 세 살배기 아빠인 나의 몇 년 후 모습일지도 모른다는 지극히 현실적인 두려움. 그리고 그것이 바람직한 가족의 모습은 아니라는 확고한 나의 신념. 그렇다면 지금 내가 가진 특권을 다 포기하더라도 가족이 함께 사는 방법을 선택하는 것이 최선이리라는 자기 암시. 그리고 그즈음 친정 엄마가 암으로 돌아가신 후 정신적으로 많이 힘들어했던 아내.


쳇바퀴 도는 일상으로 매너리즘에 빠진 지 오래된 어느 날, 아파트 베란다에서 내려다본 서울 시내 모습이 화려하거나 아름답게 보이기는커녕 가슴을 답답하게 만들었던 순간. 그때 나는 철밥통을 집어던지기로 결심했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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