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자리 그 이상의 무엇

캐나다 이민 그 두 번째 이야기

by 투빗
캐나다 서핑의 메카, 토피노의 한 해변

도전은 아름답다. 결과와 상관없이 도전은 그 자체로서 가치가 있다. 그러나 이민은 다르다. 이민은 생존을 위한 도전이며 살아남아야 가치가 있다. 간혹 20~30년 된 이민자들과 마주칠 때면 존경을 넘어 경외감까지 드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나이 사십, 캐나다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일자리가 필요했다. 이곳 중고등학생보다도 못한 생활 영어로 어떤 일자리를 구할 수 있을까. 특별한 기술이라도 있으면 좋으련만 (한국) 법학 전공자로서 내세울 것이라고는 논리적 사고 밖에 없는 나를 과연 누가 고용할까. 누군가는 전문대학(college)에 들어가 기술을 배우는 것이 일자리를 구하는 가장 빠른 방법이라고 했고 누군가는 봉사활동(volunteering)을 꾸준히 하다 보면 그 인맥으로 운 좋게 직장을 구할 수 있다고도 했다. 누군가는 오로지 구직을 위해 종교활동을 시작했고 필요에 따라 개종도 마다하지 않았다. 한국을 떠날 때 긁어모은 다소간의 푼돈으로 당분간은 버틸 수 있을 것 같았지만 시작부터 걱정이 앞섰고 취업의 길은 막막했다.


밴쿠버에서는 많은 이민자 분들이 한국인과 관련된 일을 하며 생계를 유지한다. 식당, 헤어숍, 마트, 보험, 유학원, 여행사, 부동산 중개, 자동차 판매, 이민 컨설팅 등 분야도 다양하다. 밴쿠버 거주 한국인 수가 최소한의 경제 생태계를 유지할 수 있을 정도는 되다 보니 영어가 그다지 유창하지 않아도 먹고사는 데에는 문제가 없는 셈이다. 실제로 13년이 넘는 캐나다 생활 동안 내가 만난 이민 1세대 중 80~90%는 영어를 잘 못한다. 그나마 오래된 분들은 어떻게든 눈치껏 몇 마디씩 주고받지만 정작 외국인과의 대화는 10분을 넘기지 못하기 일쑤다.


나는 다른 선택을 하고 싶었고 간단하지만 명확한 나만의 구직 조건을 세웠다. 첫째 100% 영어를 쓰는 곳, 둘째 저녁이나 밤에 일할 수 있는 곳, 셋째 임금은 최대한 많은 곳이었다.


영어를 첫째 조건으로 정한 이유는 단순했다. 영어를 배우고 싶었고 캐나다인 친구를 만들고 싶었으며 캐나다 사회에 하루빨리 흡수(mingle)되고 싶었다. 학교나 학원에서 배운 영어를 실생활에서 직접 써 보고 싶었고 돈을 받으며 영어를 배울 수 있다는 사실이 꽤 매력적으로 느껴졌다. 저녁이나 밤에 할 수 있는 일을 찾은 이유는 세 살 반 된 딸아이를 낮동안 보살펴야 했기 때문이다. 한국과 마찬가지로 이곳 캐나다도 맞벌이가 필수 아닌 필수이다 보니 아내도 일자리를 구해야 했고 육아 분담을 위해 일하는 시간이 겹치지 않아야 했으며 둘 중 하나가 밤에 일해야 한다면 내가 그 부담을 짊어지는 것이 옳다고 생각했다. 임금 역시 중요했지만 찬밥 더운밥 가릴 신세가 아니어서 임금에 관한 조건은 언제든 버릴 수 있는 카드로 삼았다. 어떻게든 캐나다 취업 문턱을 넘기만 하면 임금 인상은 시간문제라 믿었고 캐나다 정부의 우수한 저소득층 지원 정책 덕분에 저임금에 따른 현실적 난관은 적잖이 극복될 수 있었기 때문이기도 했다.


그렇게 나는 캐나다에서의 첫 구직 활동을 시작했고 6개월 만에 운 좋게 다운타운의 한 카지노에서 일하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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