캐나다 첫 직장, 카지노(1)

캐나다 이민 그 세 번째 이야기

by 투빗
밴쿠버 아일랜드의 한 정박소

2011년 화창한 가을 어느 날, 한국에 잠시 나가있던 나는 캐나다에서 걸려 온 한 통의 전화를 받았다. 전화 영어가 어렵다 보니 전화를 잘 안 받는 편이었는데 왠지 취업 관련일 것 같아 용기를 냈다. 카지노 면접 보러 오라는 내용이었다. 하지만 면접 날짜가 한국 체류 기간과 겹쳐 면접이 불가했다. 밑져야 본전이라는 생각에 인사담당자에게 사정을 얘기하고 캐나다에 들어가서 면접 날짜를 다시 잡으면 안 되겠냐고 물었더니 흔쾌히 그러자고 했다. 의외였다. 한국이었다면 지원자가 면접 날짜를 바꾸는 것은 불가능했을 터다.


이후 면접 날 면접 장소로 안내해 주던 인사담당자에게 다시 한번 감사인사를 하자 인사담당자는 대뜸 “얼굴 한번 보고 싶었다”라고 했다. 학력과 경력이 오버퀄러파이드(overqualified) 되다 보니 호기심이 생겼던 것 같다. 사실 취업 준비하면서 단 한번 만났던 한국인 이민정착지원자는 카지노와 같은 일들은 고졸을 자격요건으로 하기 때문에 대학이나 대학원 학력은 빼고 고등학교 졸업 사실만 이력서에 넣으면 좋겠다고 했지만 내 생각은 달랐다. 나는 한국에서의 학력과 경력을 빼곡히 모두 적었다. 그렇지 않으면 캐나다에서 고등학교를 나온 사람들과 차별화는커녕 경쟁이 되지 않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 결국 나는 면접을 치렀고 무사히 마쳤다. 덕분에 나는 지금까지도 지인들에게 ‘얼굴’로 카지노에 취직했다고 종종 농을 건넨다.


이곳 카지노는 부정적 이미지의 한국과는 달리 일반인들이 즐겨 찾는 하나의 엔터테인먼트 공간이다. 특히 크리스마스이브나 새해 전날은 발 디딜 틈 없을 정도로 사람들로 북적인다. 내가 일했던 카지노는 2011년 당시 기준으로 300명이 훌쩍 넘는 직원들이 근무했으니 규모가 꽤 큰 편이었다. 더욱이 시간당 최저임금이 11불에 불과했던 시절이라 시간당 17불에 팁까지도 챙길 수 있었던 카지노는 매력적인 일터이기도 했다.


카지노 일은 생각보다 어렵지 않았다. 여러 직무가 있었지만 능숙하지 않은 영어를 감안해 캐시어(cashier)로 일했다. 케이지(cage)라 불리는 공간 안에서 간간이 터지는 크고 작은 잿팟을 현금으로 바꿔주기도 했지만 주로 손님들의 칩을 현금으로 혹은 현금을 칩으로 바꿔주기만 하면 됐다. 특별한 기술은 필요 없었고(다만 감시 카메라가 잘 확인할 수 있게 칩과 현금을 배열하는 방법은 유급 교육을 통해 배웠다) 셈만 정확하면 됐다. 간혹 손님들로부터 난감한 질문을 받아도 몇몇 동료 캐시어나 슈퍼바이저가 케이지 안에 같이 있기 때문에 언제든 도움을 받을 수 있었다.


물론 몇 가지 난관은 있었다. 무엇보다 앉아서 대부분의 업무를 보았던 한국과 달리 근무 내내(30분씩 두 번 있는 휴식시간을 빼면 7시간) 서서 일해야 했다. 근무 스케줄은 주로 밤 10시부터 새벽 6시까지였는데(물론 군대처럼 시간이 지날수록 서열(seniority)이 높아져 근무 시간대도 좋아진다) 낮에 자고 밤에 일하는 루틴이다 보니 육체적으로 많이 힘들었다. 특히 아침 6시 퇴근 후 곧장 잠자리에 들 수 있으면 좋으련만 초등학교 딸아이 등교까지 시키고 나면 9시가 훨씬 넘어서야 겨우 잠을 청할 수 있었다. 더군다나 오후 2시 30분이면 학교가 끝나다 보니 딸아이 픽업하러 가기 전까지 대략 4시간 정도의 수면이 전부였다.


영어 역시 힘들었다. 하루 종일 무선 라디오를 귀에 꽂고 일해야 했다. 카지노가 익숙하지 않다 보니 카지노에서 주고받는 영어 역시 낯설었다. 더욱이 카지노 직원 중 어림잡아 50% 정도가 세계 각국에서 온 이민자다 보니 영어 발음 역시 각양각색이었다. 특히 인도식 영어 발음은 거의 몇 개월은 못 알아들을 정도였다. 그래도 하루 8시간을 영어로만 듣고 말하다 보니 자연스레 영어가 늘었다. 다만 하루종일 신경을 곤두세워 영어를 하다 보니 퇴근 후 집에 와서는 영어는 아예 내팽개쳐 두고 한국 드라마나 진탕 보면서 스트레스를 풀기가 일쑤였다.


직장이 카지노라는 사실에 대한 일부 한국분들의 시선도 불편했다. 이민자가 직장을 잡았다는 사실에 호감을 가지면서도 그 직장이 카지노라고 얘기하면 다소 얕잡아 보는 듯한 말투가 많았다. “할 일도 없는데 나도 카지노에서 딜러나 할까?”라고 말하시는 분도 계셨다. ”카지노 일하기 괜찮아요. 한번 도전해 보세요. “라고 말하며 웃어 넘기 긴 했지만 마음 한편으로는 씁쓸했다. 그런 탓에 초등학교 딸에게는 아빠가 카지노에서 일한다고는 말하지 못했다. 왜냐하면 딸아이 학교 친구들 중에는 한국에서 잠깐 유학 온 아이들도 많았는데 이들 부모님들은 이민자들과는 전혀 다른 시각을 가진 경우가 많았고 그러다 보니 아빠의 직업에 대한 일부 어른들의 선입견을 어린 딸아이가 감내하게 하고 싶지는 않았기 때문이다.


그래도 적지 않은 분들이 묻는다. 어떻게 그렇게 빨리 캐나다 회사에 취직하게 됐냐고. 이분들은 캐나다에서 직장을 구하기 위해 무단히 노력했던 분들이고 그래서 그만큼 이민자가 캐나다에서 취업한다는 것이 쉽지 않다는 사실을 잘 아는 분들이다. 운이 좋았다고 답한다. 지금 생각해 보면 운도 좋았지만 그 운을 잡기 위한 부단한 노력이 있었던 것 같다. 수많은 정보 검색과 차별화를 위한 노력, 막연함과 불확실성을 지혜롭게 버텨내는 인내, 사소한 것에도 최선을 다하는 자세, 그리고 진정성(integrity). 이런 것들이 함께 어우러져 운을 받아들일 준비가 됐고 결국 그 운은 내게로 온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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