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너의 할아버지가 아니야!

캐나다 이민 생활 - 소소한 에피소드 1

by 투빗

캐나다로 이민 온 해 여름 어느 오후의 일이다. 캐나다, 특히 밴쿠버의 여름은 한국의 청명한 가을날씨와 같아 야외활동 하기 무척 좋다. 그렇다 보니 딸아이는 매일 같이 해 질 녘까지 밖에서 놀았다. 그날도 그랬다.


아는 영어라고는 한국 있을 때 유치원에서 배운 영어 몇 단어가 전부였지만 사교성이 좋아 동네 애들과 잘 어울렸다. 그래도 혼자 내버려 둘 수 없어 아내와 나는 번갈아 가며 조용히 지켜봤다. 그런데 그날 지금도 가끔씩 생각나는 일이 생겼다.


딸아이는 생일이 며칠 밖에 차이가 나지 않는 동네 친구와 종종 놀았는데 그날 그 친구는 근처에 사는 할아버지와 함께 놀이터에 왔다. 할아버지가 이것저것 챙겨주는 것이 부러웠던지 딸아이는 친구와 노는 중간중간 ‘할아버지(grandpa)~, 할아버지~‘하면서 알아듣기 힘든 영어로 친구 할아버지에게 말을 걸기도 하고 도움을 요청하기도 했다. 딸아이도 ‘grandpa’가 ‘할아버지’라는 정도는 알고 있었다.


그런데 그때, 그 할아버지는 딸아이를 잠깐 불러 세우더니 정색을 하고 말했다.


“난 OO의 할아버지이지 너의 할아버지가 아니야.

(I am OO’s grandpa, not your grandpa)

나를 그렇게 부르면 안 돼 “


옳고 그름을 떠나 순간 기분이 언짢았지만 틀린 말 한 것은 아니니 뭐라 할 수는 없었다. 다만 해명은 해야 할 것 같았다.


“딸아이가 그렇게 불러서 죄송해요. 한국에서는 동네 어르신들께도 그냥 다 같이 ‘할아버지‘라고 부르다 보니 딸아이가 헷갈렸나 봐요. “


그냥 할아버지라고 부르게 좀 허락해 주지. 마음이 아팠다. 할아버지가 딸아이 옆에 없어서 아팠고 간단한 영어인데도 너무 정색하고 지적해 줘서 아팠다. 앞으로 갈길이 멀구나. 지금도 그 할아버지를 만날 때면 그때 그 서운했던 감정이 여전히 되살아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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