캐나다 이민 그 네 번째 이야기
카지노에서는 4년 정도 일했다. 캐나다 첫 직장이라 무엇보다 애착이 갔고 누구보다 잘하고 싶었다. 카드와 칩을 맛깔라게 다루기 위해 개인용 카지노 세트까지 샀다. 시작은 캐시어지만 기회만 되면 멋진 카드 딜러도 되고 싶었다.
하지만 정신적으로나 육체적으로 많이 힘들었던 시기였음을 고백하지 않을 수 없다. 정부 연구기관에서 법을 만들고 대학에서 법학 강의를 하던 내가 캐나다 카지노에서 캐시어로 일하다니. 잠을 자다 가위눌린 듯 깨어 답답한 가슴을 쓸어내리던 날이 하루이틀이 아니었다.
“내가 지금 여기서 도대체 뭘 하고 있는 거지?“
“내가 지금 잘하고는 있는 건가?“
나는 ‘캐주얼(casual)’로 일했다. 한국어로 딱히 옮길 만한 단어가 없어 아쉽다. 간단히 설명하면 일종의 파트타임이다. 주 40시간 일하는 풀타임과 달리 캐주얼은 주 평균 20시간만 보장된다. 하지만 대체 또는 보강인력 형태로 추가 근무시간을 받기도 한다. 특히 온 콜(on call: 근무예정 직원이 개인 사정으로 일할 수 없을 때 그 직원의 업무를 대신하는 방식. 보통 근무 1~2시간 전 회사로부터 전화를 받고 근무여부를 결정)이 많다. 나 역시도 입사 초기에 전화를 많이 받았다.
“너 오늘 밤 일할래?“
“물론이지. 일 할께. 몇 시까지 가면 돼?“
나는 전화가 오면 웬만하면 일하러 가겠다고 했다. 회사와의 관계를 돈독히 하려는 목적도 있었지만 파트타임 임금만으로는 캐나다 생활을 영위하기에 충분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밴쿠버에서 파트타임으로 일하는 많은 분들이 2~3개의 일자리를 가진 경우가 비일비재한 것도 이 때문이다. 나는 다행히도 아내가 나와 비슷한 시기에 일자리를 구한 덕에 다른 파트타임 직원보다는 형편이 나은 편에 속했다.
내가 일했던 카지노는 가족이나 친척이 함께 일하는 경우가 많았다. 캐나다 특유의 추천(reference) 문화 때문이다. 믿을만한 직원을 비교적 수월하게 구할 수 있다는 장점 때문에 종종 이러한 고용방식이 활용된다. 한국의 낙하산 인사와 비슷한 듯하지만 권력자가 힘으로 꽂아 넣는 것이 아니라 일개 직원이 구직자를 회사에 소개해준다는 점에서 큰 차이가 있다. 나도 몇 번 그런 질문을 받은 적이 있다.
“이 카지노에 누구 아는 사람 있어?”
“어떻게 들어왔어?(누가 소개해줬어?)”
캐나다 신규 이민자가 취업이 어렵다고 느끼는 이유 중 하나가 바로 이 때문이기도 하다. 신규 이민자들은 지인도 많지 않거니와 있다 해도 자신이 다니는 직장에 선뜻 추천해 줄 만큼 충분한 믿음이 쌓인 지인은 더더욱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동네 교회도 가고 커뮤니티 봉사활동도 열심히 참여하면서 친구를 만들게 된다.
카지노는 하루 24시간 일 년 365일 오픈한다. 단 하루도 불이 꺼지지 않는 카지노는 그 긴 오픈시간만큼이나 다양한 일들도 많이 발생한다. 새벽 한가한 시간을 틈타 노숙인(homeless)이 구걸(panhandling)로 벌어들인 한 보따리 동전을 지폐로 바꾼 후 공짜 커피를 한 컵 가득 챙겨 유유히 떠나는가 하면 어떤 아주머니는 슬롯머신 게임을 시작하기 전 일종의 기도 의식처럼 자신의 가슴을 한껏 드러내 기계에 격렬하게 비벼대며 중얼거린다. 20불짜리 지폐 묶음을 쇼핑백 한가득 가져와 칩으로 바꾼 후 정확히 1시간만 플레이하다 다시 현금으로 바꾸는 돈세탁이 99% 의심되는 손님이 있는가 하면 크고 작은 잭팟의 냄새를 용케도 맡아 매혹적인 자태로 그 주위를 얼쩡거리는 후커(hooker)의 모습까지 다채롭다.
하루는 이런 일도 있었다. 내가 일했던 카지노도 여느 카지노와 마찬가지로 메인 케이지 외에 포커 플레이어를 위한 케이지가 따로 있었다. 보통은 두 명의 케시어가 함께 일하지만 그날따라 무슨 연유에서인지 혼자 근무하게 됐다. 일은 그때 벌어졌다. 6~7명의 플레이어가 텍사스 홀덤을 하던 한 테이블에서 칩을 아주 많이 잃은 한 플레이어가 혼잣말처럼 욕설을 퍼붓더니 갑자기 다른 플레이어들에게 이렇게 말했다.
“이봐 친구들, 나 총 있어!“
사태의 심각성을 감지한 슈퍼바이저는 즉각 그 플레이어에게 다가가 물었다.
“뭐라고?“
“농담이야~ 근데 나 진짜 총 있어!“
카지노에서 총 있다고 말하는 것만으로도 등골이 오싹해지는데 농담이라며 웃으면서도 재차 자신에게 총이 있다고 말하니 더 오싹한 느낌이 들었다. 이 친구 대체 무슨 말을 하는 거지. 카지노에서 그런 농담은 농담이 아닌데. 총을 쏘면 나는 어디로 숨어야 하나. 그런 짧은 대화가 오가는 사이 카지노에는 이미 6명의 무장 경찰들이 도착해 테이블을 에워쌌다. 다행히도 총은 없었다. 하지만 경찰들은 그 손님과 함께 그의 차까지 갔고 차에도 역시 총이 없음을 확인하고 나서야 상황은 종료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