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오늘도 미국 코스트코(Costco)로 장보러 간다

캐나다 이민 그 다섯 번째 이야기

by 투빗
겨울 어느날, 그라우스 마운틴에서 바라본 밴쿠버 다운타운과 잉글리쉬 베이

캐나다는 미국과 국경을 맞대고 있다. 길이만 해도 약 9,000km에 이른다. 서울과 부산을 10번 왕복하고도 남을 거리다. 이처럼 긴 국경길이만큼 캐나다와 미국은 ‘물심양면’ 아주 가깝다. 국경에서 차로 1시간도 안 되는 거리에는 캐나다 인구의 1/3이 거주하고 있고 그중 적잖은 사람들이 매일같이 미국으로 출퇴근한다. 슈퍼볼이나 대통령 선거와 같은 빅 이벤트가 있는 날이면 캐나다도 덩달아 들썩인다. 얼마 전 있었던 테일러 스위프트(Taylor Swift)의 밴쿠버 콘서트 때에는 공연을 보러 국경을 넘는 미국인들로 캐나다 국경은 몸살을 앓았다. 진정 ‘형제의 나라‘로 불릴만하다. 1776년 미국이 영국으로부터 독립을 하고 이후 91년이 지나 캐나다가 영국으로부터 독립(1867년)을 했으니 서열을 굳이 따진다면 미국이 형, 그것도 아주 잘 나가는 형인 셈이다.


한국 있을 때만 하더라도 나에게 캐나다는 미국의 이웃나라 정도에 불과했다. 캐나다에 대한 개인적인 관심 자체가 별로 없었던 탓도 있겠지만 사회적으로 만연한 미국 중심의 사고 인식 틀도 한몫했을 테다. 하지만 이곳 밴쿠버에 와서 직접 살아보니 캐나다와 미국은 정말 가까웠다. 집에서 국경까지 30분도 채 걸리지 않았고 그 유명한 잠 못 드는 밤 시애틀도 2시간 30분이면 닿을 수 있었다. 시애틀 가는 길 중간 어디쯤에는 한국인이면 웬만큼 다 좋아한다는 프리미엄 아울렛이 있다. 화려했던 서울 생활의 소비패턴을 그리워하는 사람들에게는 더할 나위 없이 소중한 대안이 되곤 한다. 지금도 여전히 인기 있는 쇼핑 장소이지만 우리 가족이 이민 왔던 2010년부터 2~3년간은 사상 유례없이 강세를 누렸던 캐나다 달러(미국 달러 대비 환율 1:1.3) 덕에 시애틀 프리미엄 아울렛은 한국인들에게 쇼핑 성지의 역할을 톡톡히 해냈다. 그 외에도 미국 국경 넘어 30분 거리의 벨링햄(Bellingham)에는 아내가 좋아하는 티제이 맥스(T.J. Maxx)나 트레이더 조우즈(Trader Joe’s) 그리고 타켓(Target)이 있다. 아내와 나의 공통 관심사인 코스트코(Costco)도 근처에 있는데 캐나다 코스트코와는 다른 물건들이 많아 격주로 장을 보러 간다. 장 본 김에 캐나다보다 40% 이상 저렴한 자동차 기름까지 넣어주게 되면 완벽한 쇼핑이 된다.


하지만 차로 국경을 넘기란 그리 호락호락한 일이 아니다. 지금은 사정이 좀 달라졌지만 당시 우리 가족은 국경을 넘기 위해 1~2시간의 긴 대기줄을 기다려야 했고 한국 여권을 가진 캐나다 영주권자에 불과했던 터라 캐나다인과는 달리 추가적인 절차를 거쳐야 했다. 다행히 10년짜리 미국 비자가 있어 전자여행허가(ESTA)는 따로 필요 없었지만 6달러를 내고 미국 출입국 사실 증명서(I-94)를 끊어야 했다. 이마저도 3개월마다 갱신을 해야 하는 번거로움이 있었고 갱신할 때마다 국경 사무실에 들러 얼굴 사진과 지문 등록도 의무적으로 해야만 했다. 그러나 캐나다 온 지 4~5년 만에 시민권을 획득한 이후로는 추가 절차 없이 캐나다 여권만 제시해도 국경을 넘을 수 있었고 지금은 운전면허증만 한 넥서스(Nexus, 캐나다와 미국 내에서 문제를 일으킬 가능성이 아주 낮은 여행객들에게 양국 정부가 공동으로 사전승인을 거쳐 발행하는 여행 허가) 카드를 여권 대신 지갑에 넣어 다니며 별도 레인을 지나 국경을 넘어간다. 국경 대기 시간도 평균 1~2시간 걸렸던 과거와 달리 5분 안팎이면 충분하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요즈음은 토요일 아침, 격주로 드라이브 삼아 미국으로 넘어간다. 애플 카플레이가 전하는 잔잔한 바이올린 선율은 차창 밖으로 펼쳐지는 자연과 어우러져 여느 때보다도 고요하고 평화로운 아침을 만들어낸다. 아내도 이런 맛에 중독되어서인지 언제부터인가 내가 묻기도 훨씬 전에 미국으로 장 보러 가자고 한다. 장을 보고 돌아오는 길에 마주하는 캐나다 국경에서는 종종 동일한 국경 심사관(border officer)을 만난다. 오랫동안 자주 봐서 그런지 그도 이제는 국경 심사관으로서의 고압적 자세보다 동네 이웃 같은 친근한 미소로 우리 부부를 맞이한다.


“어디 갔다 왔어?”

“코스트코“

“얼마나 장 본 거야?”

“200불 정도”

“술이나 담배 같은 거도 샀니?“

“아니”

“그래? 그럼 좋은 하루 보내”

“고마워“


눈 오는 날 아침, 나는 오늘도 미국 코스트코(Costco)로 장 보러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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