캐나다 이민 그 여섯 번째 이야기
2022년 겨울은 유난히도 뜨거웠다. 11학년(고2) 딸아이가 선발 포인트가드(point guard)로 뛰던 학교 여자 농구부가 승승장구하며 학군 1위를 차지하고 각종 토너먼트를 휩쓸더니 급기야 22-23 시즌 1위로 브리티시컬럼비아 주(province) 전국 여자 농구대회에 진출, 결승전 무대에까지 올랐다. 이 열풍의 중심에는 브리티시컬럼비아 주가 40년 만에 맞이한 걸출한 농구 스타 키에라 펨벌턴(Kierra Pemberton)이 있었고 이 스타플레이어를 중심으로 10명도 채 안 되는 11~12학년 여고생들이 똘똘 뭉쳤다. 딸아이도 그중 하나였다.
캐나다에서 고교 농구는 인기가 높다. 80년이 넘는 긴 세월 동안 고교 농구는 단순한 스포츠 경기를 넘어 가족과 친구 그리고 커뮤니티를 한데 묶는 구심점 역할을 톡톡히 해 왔다. 프로 선수처럼 뛰어난 기량이 아니어도 경기 중 어처구니없는 실수가 난데없이 튀어나와도 괜찮았다. 웃고 즐기고 경쟁하고 환호하며 기뻐하고 위로하면 그뿐이었다. 사실 캐나다에는 2019년 출범한 프로 농구가 있다. 하지만 미국 NBA 농구로 안목이 한껏 높아진 대중을 사로잡기엔 역부족이다. 다행히 18-19 시즌, 캐나다 유일의 NBA 프로농구팀 토론토 랩터스(Toronto Raptors)가 사상 처음 NBA 우승을 차지하며 프로 농구 인기의 견인차 역할을 했지만 여전히 캐나다 프로 농구는 불모지에 가깝다. 그래서 고교 농구가 더욱 인기 있는지도 모르겠다. 1982년 한국 프로야구가 출범하기 전까지, 심지어 출범 후에도 한동안 고교 야구의 인기가 대단했던 기억을 떠올리면 쉽게 이해가 간다. 이런 환경에서 브리티시컬럼비아 주 전국 농구대회(BC basketball provincials) 진출은 학교나 개인 모두에게 엄청난 영광이다. 그중에서도 학교 규모가 제일 큰 학교들로 구성된 4A 그룹에 속해 결승전에 진출한다는 것은 학교 대표로 뛰는 학생들에게는 꿈의 무대에 서는 것과 진배없다.
결승 당일, 엄청난 인파가 몰렸다. 일반적으로 고교 여자 농구는 남자 농구에 비해 그렇게까지 인기 있는 편은 아니다. 하지만 이번 결승전은 BC 주 여자 고교 농구계의 슈퍼스타를 보기 위해 비싼 티켓 값도 마다하지 않은 사람들로 북적였다. 사상 처음, 여자 농구 결승전에 농구장 전체가 관중으로 가득 찼다. 상대팀은 작년에도 결승전 무대에 오른 적 있는 전통 강호였고 딸아이 학교는 변방에 머물던 팀에 불과했다. 경기 전 몸 풀기 때부터 딸아이 팀 선수들의 얼굴에는 긴장감이 역력했다. 캐나다 국가가 울려 퍼지고 대망의 결승전이 시작됐다. 딸아이가 준 패스를 받아 동료 선수가 첫 득점을 했다. 환호성이 터져 나왔다. 완벽한 시작이었다. 하지만 이내 실점을 하고 연이어 또 실점을 허용했다. 딸아이 학교팀은 꽉 찬 관중이 지켜보는 역대 최대 규모의 결승전이라는 부담감을 끝내 떨쳐버리지 못한 채 경기 내내 계속 끌려 다니기만 하다 졌다. 우리의 농구 스타 키에라도 오늘만큼은 힘을 쓰지 못했다. 우리 팀을 완벽하게 분석하고 우리의 슈퍼스타를 철저히 봉쇄한 상대팀 감독의 전략이 돋보이는 경기였다.
농구 경기의 승패는 중요하다. 하지만 딸아이가 직접 경기를 뛰는 경우에는 조금 다르다. 딸아이가 경기를 잘 못 뛰면 아무리 팀이 이겨도 마음 한편 많이 아쉽다. 반면 팀이 져도 딸아이가 멋진 플레이를 보인 경기는 매우 흡족하다. 모든 부모 마음이 다 비슷하리라. 오늘 경기는 여러모로 아쉬움이 남는 경기였다. 고등학교 졸업 전까지 딸아이가 치를 수 있는 마지막 빅게임이라는 걸 알기에 더욱 그러했다. 농구 선수로 대학 진학을 꿈꾸는 몇몇 동료 선수들과는 달리 딸아이는 공부와 병행하며 체력 관리 차원에서 취미로 했던 농구였던 터라 아쉬움이 더했다. 물론 나는 더 이상 가슴 졸이며 응원할 필요가 없긴 하다. 그래도 어쨌거나 딸아이 덕분에 귀중한 경험을 할 수 있어서 고마웠고 농구라는 끈으로 딸아이와 많은 시간을 함께 할 수 있어서 행복했다. 그러고 보면 농구 덕분에 사춘기도 어렵지 않게 지나간 것 같다.
결승전에서 지고 울먹이는 딸아이에게 말을 건넸다.
“괜찮아. 잘했어”
“•••”
“아빠는 우리 딸이 너무 자랑스러워. 농구하는 내내 응원할 수 있어서 너무 행복했어. 사랑해“
“•••”
여러 가지 감정이 북받쳤는지 딸아이는 조용히 눈물을 흘렸다. 나는 울고 있는 딸아이를 살포시 껴안고 다독거렸다. 꿈의 무대를 향한 짜릿하고도 가슴 조이던 긴 여정은 다소간의 아쉬움을 남긴 채 그렇게 끝이 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