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원비는 어디서 내죠?

캐나다 이민 생활 - 소소한 에피소드 2

by 투빗
캐나다 집 근처에서도 보이는 미국의 만년설산 마운틴 베이커(Mt. Baker)

이민 후 1년쯤 지났을 때다. 아내가 갑자기 아파했다. 아랫배인지 허리인지 참을 수 없을 정도로 고통스럽단다. 평소 아프다는 말을 잘 안 하는 성격이라 그 심각성을 단번에 알아챘다. 캐나다 의료시스템도 낯설고 아픈 몸을 영어로 설명하기도 녹녹지 않아 일단 급한 대로 한인 밀집지역 코퀴틀람(Coquitlam: 광역 밴쿠버에 속한 한 도시. 한국으로 치면 서울시의 한 구 정도의 규모)에 있는 한국어 가능 워크인 클리닉 의사를 찾기로 했다.


지금은 워크인(walk-in:예약 없이 방문해 진료를 받지만 다른 환자의 사전 예약이 갑자기 취소되거나 진료가 예상보다 빨리 끝나 운 좋게 비는 시간이 생기면 의사를 만날 수 있다. 최소 1~2시간을 기다리는 것은 기본) 환자를 받는 클리닉이 드물고 그 조차도 전화로 예약하고 최소 2~3일은 기다려야 진료를 받을 수 있지만(사실상 워크인이 아닌 셈이다) 당시만 하더라고 워크인으로 진료를 받는 것이 어렵지 않았다.


아내를 진료한 한인 의사는 신장 결석을 포함해 여러 가능성이 있지만 확실하지 않으니 일단 두고 보자고 했다. 아니 사람이 그렇게 아프다는데 일단 두고 보자니. 어이가 없었지만 우리는 집으로 발걸음을 돌릴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돌아오는 차 안에서 아내는 참을 수 없는 고통에 몸부림치며 아무 클리닉이라도 좋으니 한 번만 더 가보자고 애원했다. 아내의 떨리는 목소리에 나는 한순간의 망설임도 없이 종합 병원 응급실로 차를 돌렸다. 워크인 클리닉은 이미 한번 갔던 터라 다시 다른 워크인 클리닉으로 가는 건 시간 낭비일 거라 직감했기 때문이다.


다행히도 이웃 캐나다인들과의 일상 대화 속에서 스치듯 들었던 평판 좋은 병원이 기억났다. 10분쯤 차를 몰아 우리는 브리티시콜롬비아(BC) 주에서 서열 1~2위를 다툰다는 로열 콜롬비안 병원(Royal Columbian Hospital)에 도착했다. 황급히 주차를 하고 곧장 접수대로 향했다. 병원 직원이 요구한 케어 카드(Care Card, 한국의 의료보험증과 유사)를 보여주고 기다렸다. 정신이 없어 접수비 내는 것도 잊어버렸다. 아내 차례가 오기만을 한참을 기다리는데 갑자기 접수비 생각이 났다. 직원에게 가서 물었다.


“접수비는 어디서 내죠?” (접수비라는 영어 단어를 몰라 대충 돈 어디서 내냐고 했던 건 같다.)

“케어 카드 보여줬어요? 그럼 그냥 기다리세요”


간호사가 아내 이름을 불렀고 나는 아내와 함께 한 방에 들어갔다. 그때부터 간호사는 수시로 방에 들어와 이것저것 체크를 했고 의사도 두세 번 들락날락했다. 아내가 많이 고통스러워 하자 간호사는 주사도 놓아주고 진행 상황도 빠짐없이 설명하면서 아내를 안심시켰다. 이윽고 담당의사는 신장결석이니 좀 기다려 자연 배출을 시도해 보자고 했다.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한참이 지나도 아무런 기별이 없자 우리는 약을 처방받고 귀가하기로 결정했다. 응급실을 나서기 전 다시 한번 접수대로 갔다.


“병원비는 어디서 내죠?“

“그냥 가시면 됩니다”


영어가 짧아 이유를 물어보고 싶지도 않았다. 대답을 들어도 이해하지 못했을 테니까. 혼자 생각했다. 아. 이 병원에서는 바쁘니까 돈을 직접 받지 않는구나. 그럼 며칠 있으면 집으로 청구서가 날아오겠네. 그때 내면 되겠군. 그 후 아내는 1~2일을 더 버텨 결석이 나온 후에야 비로소 안정을 취할 수 있었다. 하지만 14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병원비 청구서는 날아오지 않았다.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이지만 캐나다는 MSP(Medical Service Plan, 의료보험)에 의무 가입하고 나면 모든 병원비가 무료다. 괜한 걱정을 한 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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