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사는 수술하면서 무슨 생각을 할까?
화요일 아침 8시. 나를 믿고 오늘 수술을 받기로 한 환자 7명 중 첫 환자분이 수술실 앞에 도착하였다. 입구에서 환자 확인 등 기본적인 절차 후에 드디어 수술실 침대 위로 옮겨 누운 환자분의 얼굴에는, 긴장감을 넘어 약간의 비장함마저 느껴진다. "잠시 주무시고 일어나시면 수술 끝나 있을 거에요.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일부러 자못 경쾌하게 건네는 나의 인사에, 환자분은 잠시나마 미소를 지으신다.
마취과 의사가 심전도, 산소포화도 측정기 등 여러 가지 장치들을 환자의 몸에 부착한 뒤, 드디어 전신마취를 위한 흡입가스 마취를 시작한다. 아마 마스크가 얼굴에 닿은 이후부터의 일들은 환자분의 기억에 없을 것이다. 전신마취가 진행되고 기도삽관(intubation, 전신마취 하에서는 환자가 자발적으로 호흡을 할 수 없으므로, 기계호흡을 하기 위해 기도 내에 관을 삽입하게 된다)이 끝나게 되면, 본격적으로 수술을 위한 준비가 시작된다.
의학 드라마에서는 흔히, 수술을 집도하는 '명의'와 그를 보조하는 '보조의사'들만이 중요하게 그려진다. 하지만 사실 하나의 수술이 이루어지기 위해서는 다양한 인력들이 일사불란하게 서로를 도우며 전 과정을 진행하여야 한다. 수술이 이루어지는 내내 전신마취를 유지하면서 환자의 바이탈 사인(vital sign: 혈압, 맥박, 호흡, 체온 등)을 지속적으로 관리하는 마취과 의사와 그 의사를 보조하는 마취과 간호사들, 집도의의 수술이 원활히 이루어지도록 각종 수술기구와 수술의 진행과정을 도와 주는 스크럽(scrub) 간호사, 항시 대기하고 있다가 집도의가 새로운 기구나 재료를 찾을 때마다 여기저기 뛰어다니며 물건을 찾아다 주고 다른 수술방의 상황도 파악해 주는 수술방 '써큐(circulating, 수술방을 이 방 저방 돌아다니며 도와 준다는 뜻)' 간호사까지... 그리고 이 수술의 과정을 배우고 참관하기 위해 수술실에 들어온 의과대학 학생과 간호학생들까지 합치면 수술실 내에는 제법 많은 인원이 들어와 있다.
그래서 나는 늘 수술실에 들어갈 때마다, 내가 마치 이 수술을 진행하는 '수술팀'이라는 하나의 오케스트라를 지휘하는 지휘자 같다는 생각을 하곤 한다. 수술을 집도하는 내가 이 수술실의 분위기를 어떻게 꾸려 가는지에 따라서, 수술이 원만하게 혹은 어렵게 진행될 수 있기 때문이다. 가끔 수술실에서 준비 상황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화를 많이 내는 집도의들이 있다. 하지만 그럴수록 긴장한 간호사와 전공의들이 오히려 실수를 더 많이 하게 되고, 그러면 전체적인 수술에 오히려 부정적인 영향을 미친다는 것이 나의 지론이다. 그래서 나는 늘 수술실에는 은은한 음악을 작게 틀도록 하고(신경이 쓰일 만큼 소리가 크면 안 된다), 수술실의 다른 인력들과 늘 소소한 농담들을 하여 수술 초반의 긴장을 줄이면서 수술을 시작하려고 애쓴다.
의학 드라마에서처럼 소독액으로 손을 깨끗이 씻고, 손이 오염되지 않도록 양손을 어깨 높이로 들고 스크럽 간호사 앞에 선다. 그런데 오늘 스크럽으로 들어온 간호사의 얼굴이 낯설다. 아마도 수술실에 배치된 지 얼마 되지지 않은 젊은 신규 간호사인 듯하다. 약간 앳되어 보이는 얼굴에 긴장이 가득하다. 긴장을 풀어 주기 위해 일부러 가벼운 농담을 하며 간호사가 건네는 수술 가운을 받아 입는다. '부장님 개그', '아재 개그'라도 좋다. 일단은 '피식~' 하면서 긴장을 잠시 풀어야, 앞으로 진행될 수술에서의 긴장감에 더 잘 대처할 수 있을 것이다.
오늘의 수술은 만성 부비동염(축농증)에 대한 부비동 내시경 수술. 환자분의 몸 위에 수술포를 덮어 놓았기 때문에, 이제 환자분의 코만 보이는 상태가 되었다. 환자분과 외래 진료 때 나누었던 대화들이 아주 짧은 찰나에 머릿속을 스쳐 지나간다. '수술 끝나고 관리도 잘 하시고 담배도 좀 끊으셔야 할 텐데...'
환자분의 코 안에 국소 마취제를 투여하고 지혈 거즈를 넣은 후, 약 2~3분 정도 기다리는 시간. 그 짧은 시간 동안 잠시 뒤에 서 있던 전공의 선생에게 이비인후과적인 지식을 이야기해 주기도 하고, 가끔은 그의 일상 생활에 대해 듣기도 한다. 잠시 이러한 대화를 하면서 전공의 선생 역시, 긴장되었던 마음을 약간 누그러뜨리고 좀더 편안한 마음으로 수술보조에 집중할 수 있으리라.
본격적으로 수술이 시작되었다. 내시경 수술이니만치 드라마에서처럼 "메스!" 하고 외치는 일은 없다. "인젝션(injection: 국소마취제)", "엘리베이터(elevator, 조직을 들어올리는 기구)", "디브라이더(debrider, 조직을 절삭하는 기구)" 등의 이름을 연달아 부른다. 본격적으로 수술을 진행하는 동안에는, 외래에서 환자와 있었던 모든 일들은 이미 기억에서 사라지고 오로지 눈앞의 수술 부위에만 최대한 집중한다. 진료를 보다 보면 병원 직원 혹은 그의 친척, 지인, 혹은 사회적으로 영향력이 있는 사람들 등 다양한 배경을 가진 환자들을 수술하게 된다. 하지만 수술을 진행할 때 그런 것들에 너무 영향을 받아 잘 해주려다 보면, 오히려 수술 후 결과가 좋지 않은 경우가 종종 발생한다. 병원에서는 그런 현상을 흔히 'VIP 증후군'이라고도 부른다. 따라서 수술장에서만큼은, 이 환자가 누구이건 간에 똑같이, 더도 말고 덜도 말고 평소에 내가 수술하던 최선의 방식대로 수술하는 것에만 집중하여야 한다.
나도 사람인지라, 수술을 진행하다가 흐름이 다소 끊기면 기분이 언짢아지고 신경이 날카로워질 때가 있다. 가끔 내가 말한 것과 다른 수술기구가 내 손에 쥐어지거나, 수술기구가 오작동을 일으킬 때가 그렇다. 하지만 그럴 때마다 애써 마음을 가라앉히고, '나도 수술실에 처음 들어왔을 때는 실수가 참 많았지...' 하고 생각하려고 노력한다.
수술을 진행하면서 특징적인 해부학적 구조물 등이 보이면, 뒤에 서 있던 전공의 선생에게 질문을 한다. "이 구조물의 이름은 뭐지...?" 그런데 질문 후 잠시 어색한 침묵이 이어진다. "교수님... 공부해 오겠습니다." 3년차 선생이 아직 이 구조물을 모르다니... 질책을 할까 하다가 그만둔다. "오후에 회진 돌 때까지 공부해서 내 앞에서 발표해라."
한 시간 정도가 흘렀을까, 별다른 합병증 없이 수술은 종료되었다. 마지막 지혈 거즈를 코 안에 넣은 뒤, 전공의 선생에게 간단한 지시사항을 전달하고 장갑을 벗는다. "수고하셨습니다!" 이 장면만큼은 의학드라마에서와 비슷한 것 같다. 이후 전신마취에서 환자를 깨우고 회복실까지 이동시키는 일 등은 마취과와 전공의 선생에게 맡기고, 다음 수술 전까지 잠시 휴식을 취하러 휴게실로 이동한다. 오늘 아직 여섯 분을 더 수술해야 하는구나... 힘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