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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KOE Jul 27. 2020

여성이 하나의 인간으로 존중받는 세상을 위하여

영화 <미스 비헤이비어>를 보고

좋은 이야기란 무엇일까? 수많은 답이 가능하겠지만, 나에게 좋은 이야기란 좋은 질문을 던지는 이야기이다. 아무리 모두가 좋아하는 이야기라 해도, 하나의 정답만을 제시한다면 나에게는 매력적이지 않은 것으로 느껴진다. 이 지점에서 영화 <미스 비헤이비어>는 나에게 좋은 이야기로 읽혔다.


개인의 성취만으로는 바꿀 수 없는 세상

먼저 이 영화는 싱글맘인 샐리가 대학원 면접을 보는 장면으로 시작된다. 샐리는 나이가 지긋한 남자 교수들에게 '아이가 있는 여성'이라는 이유로 부정적인 시선을 받지만, 그녀는 그에 굴하지 않고 자신이 누구보다 열정이 있는 학생임을 밝힌다. 어딘지 찝찝하게 끝난 면접은 다행히도 좋은 결과를 낸다. 샐리가 대학원에 붙은 것이다. 그리고 그녀의 합격 소식은 여성 대회로 이어진다. 샐리는 이곳의 운영위원과 같은 일을 하는 것으로 보이며, 샐리의 시선은 행사에 참석한 다양한 인물들에게 닿는다. 그중 눈에 띄는 이는 조이다. 조와 몇몇 친구들은 모범생 스타일인 샐리와는 완전히 다른 옷차림을 하고 행사를 위해 빌린 장소에 놓인 남성 조각상들에 장난을 친다. 이를 본 샐리는 이 장소가 불만스러울지라도 어지르면 운영위원들이 치워야 하는 곳이라는 점을 이들에게 상기시킨다. 물론 그들은 샐리의 말을 귀 담아 듣지 않는다. 이 사건은 두 사람의 반대되는 성향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며, 이 영화가 이 행사에 참여한 수많은 인물 중에서도 조에 주목함은 두 사람의 이야기가 앞으로 주요한 이야기가 될 것임을 알려준다.


그리고 샐리가 여성혐오적인 슬로건에 낙서를 하는 조가 경찰에 잡힐 뻔한 것을 도우며 두 번째 만남이 이루어진다. 이때도 샐리는 왜 그렇게 위험을 감수하고 사냐고, 그것은 불법이 아니냐고 묻는다. 그러자 조는 엘리트 여성인 당신은 알지 못할 것이라고 말하며, 우리의 일이 혹시 궁금해진다면 자신의 공간으로 오라는 말만을 남긴 채 자리를 떠난다.


두 사람은 서로를 이해하지 못한다. 하지만 한 사건은 샐리의 생각을 바꿔놓는다. 샐리는 싱글맘으로 학업과 운동을 병행하느라 아이와 시간을 많이 보내지 못한다. 대신 그녀의 애인이나 엄마가 주로 아이를 봐주는데, 아이를 봐주던 엄마가 아이를 놀아주며 화장을 시킨 것이다. 이때 자신이 높은 자리에 오르기만 하면 평등을 누릴 수 있을 것이라는 것이 대학원 수업을 들으며 자연스레 배제되는 상황들을 겪으며 환상임을 은연중에 느끼던 샐리는 혼자만의 성취가 딸의 삶을 바꿀 수는 없음을 깨닫게 된다. 온 세상이 여성이 가진 힘은 젊음과 아름다움 뿐이라고 이야기하는데, 어린아이가 무엇을 보고 배우겠는가. 결국 샐리는 자신의 성취를 넘어, 세상을 바꾸기 위해서는 공동의 행동이 필요함을 깨닫고 조의 공간으로 향한다.


행동주의 페미니스트들이 모인 조의 공간, 그 속에서 샐리는 엘리트 여성으로서 조금은 다른 존재이다. 그녀의 모습은 학생들도 교수도 남성뿐인 대학원에서의 답답함을 느끼는 모습과 어쩌면 비슷해 보이기 도 한다. 그러나 대학원에서는 자신에게 분명히 마이크가 주어지는 면접장과 발표 날을 제외하고는 한 마디도 제대로 꺼내지 못하던 그녀는 이 곳에서 말한다. 자신이 목소리를 내고자 하는 것은 '미스 월드'에 대한 비판이라고 말이다. 이들은 미디어를 비판하는 것은 헛된 일이라고 말하면서도, '미스 월드'가 여성 혐오의 총집합임은 인정하고, 결국 그녀의 생각은 집단의 연료를 얻어 행동이 된다. 이들은 서로를 다름 때문에 미워하지만, 그 다름으로 인해 제3의 길을 개척한다.


함부로 비난할 수만은 없는 행사, '미스 월드'

미스 월드를 반대하는 전단을 뿌리는 것으로 시작된 이들의 행동은, 언론의 주목을 받게 되고 샐리는 카메라 앞에서 마이크를 쥐게 된다. 그리고 그녀는 값을 매기기 위해 체중과 치수를 재고 공개 검사를 실시하는 것은 가축 시장밖에 없다며, 여성을 남성과 동등한 인간으로 취급하지 않는 행사를 비판한다. 그렇다면 미스 월드는 마냥 여성 혐오적인 행사에 불과할까? 이 영화는 그렇게 단정 지을 수는 없다고 말한다.


긴장한 채 자신의 미스 월드에 대한 의견을 말하는 샐리를 비춘 뒤, 영화는 미스 그레나다인 제니퍼를 중심으로 미스 월드 참가자들이 샐리의 발언에 복잡 미묘한 표정을 짓는 것을 보여주며 다른 층위를 만든다. 이때부터 영화는 제니퍼를 샐리와 함께 영화의 다른 주인공으로 삼는다.


미스 월드는 월드라는 말이 무색하게 백인이 대다수를 차지하는 대회이다. 영화 속 미스 월드 대회에는 제니퍼를 비롯한 흑인 여성이 한 명 더 등장하는데, 그녀의 출전 이유는 이 시대에 여성 혐오만이 아니라 인종 차별이 얼마나 뿌리 깊은지를 증명한다.  그녀는 무려 인종차별에 반발하는 단체의 요청으로 남아공에서 백인 여성과 짝을 맞추고자 나온 후보이기 때문이다. 이런 사정이 있기에 그녀는 제니퍼가 동지애를 느껴 응원을 건네는 말에도, 우리는 이기지는 못할 거라고 단정 짓는다.


자국 내에서 경쟁을 뚫고 가장 아름다운 여성으로 뽑힌 뒤 대회에 나와서도 승리를 꿈꿀 수 없는 것이 그녀들의 현실인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니퍼는 자신의 꿈을 위해 최선을 다한다. 아무리 아름답게 보이고자 애를 써도 항상 스포라이트를 쉽게 받는 것은 다른 백인 여성들이지만 말이다. 자신에게는 플래시 세례가 터지지 않아도 그녀는 얼굴을 굳힐 수 없다. 한 순간의 이미지가 승패를 결정하는 자리이기에 한시도 웃음을 멈출 수 없는 것이다.

결국 제니퍼는 승리를 거머쥐지만, 대회에서 수많은 갈등을 겪은 제니퍼는 왕관을 쓰고도 웃지 못한다. 그리고 드라마틱한 순간이 펼쳐진다. 대회에서 시위를 펼치다가 잡혀가던 샐리가 화장실에 가려다 길을 잃고 제니퍼의 방에 들어서게 된 것이다. 얼떨떨한 표정으로 제니퍼의 우승을 축하하는 샐리의 말에, 제니퍼는 그 말이 진짜가 아닌 것을 안다며, '선택'할 수 있는 삶을 사는 샐리가 부럽다고 말한다. 흑인 여성인 제니퍼에게 미스 월드란 단순히 가축 시장 같은 행사로만 치부될 수 없는 것이다. 그녀에게 이 행사에서의 우승은 고국에서는 꿈꿀 수 없는 새로운 미래를 위한 발판을 놓아주고, 국제사회에 자신의 나라의 이름을 알리고, 또 다른 흑인 소녀들에게 자신도 사회에서 가치를 인정받을 수 있다는 것을 알려줄 수 있는 기회를 창출하는 순간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성이 외모가 아닌 다른 가치로 평가받을 수 있는 세상을 그녀 또한 꿈꾸기에 다시 잡혀나가는 샐리를 막 다루지 말라고 경찰에게 제니퍼는 외친다.


여성을 쉽게 포기하지 않는 영화, 미스비헤이비어

이렇게 여성들은 서로 다른 계급과 인종을 이유로 다른 삶을 살면서도 작은 손길을 주고받지만, 남성을 중심으로 돌아가는 세상은 그녀들을 배척하려 든다. 그녀들이 구치소에 간 죄목이 '평화를 저해한 죄'라는 것은 얼마나 우스운가. 물론 평화란, 인격이 소거된 여성들을 세워놓고 남성들이 평가할 수 있는 평화일 것이다. 그녀들로 인해 소란스러워진 행사장을 정리한 뒤, 행사를 진행하는 밥 호프에게는 '용기'있는 인물이라는 찬사를 던진 것을 보면, 이 세계의 가치 판단이 얼마나 남성 중심적으로 이루어져 있는지를 쉽게 알 수 있다.


그러나 이 영화는 이런 '용기'있는 남성들에게 분명한 비웃음을 던진다. 미스 월드 대회가 여성들의 반발로 위험에 처했을 때, 행사 주최자의 아내는 남편이 시대에 뒤처진 것을 자신만 모른다고 말하고, 호프의 아내는 자신의 남편이 행사에서 비웃음거리가 되었을 때 함께 여성들과 함께 그를 비웃는다. 남성들은 몰라도 여성들은 아는 것이다. 그들이 아닌, 그녀들이 옳다는 것을 말이다. 이 영화는 결말에 이르러 마치 권력에 마냥 순응하는 것처럼만 보였던 여성 인물들에게도 한 번씩 카메라를 비춤으로써 세상의 변화의 가능성을 일깨운다.


앞서 나는 이 이야기를 질문을 던지는 '좋은 이야기'라고 말한 바 있다. 이 영화는 끊임없는 갈등으로 이어져나가는 영화이고, 그것은 수많은 선택지와 질문을 던진다. 가장 크게는 남성 중심적인 세상과 그에 억압받는 여성들의 갈등일 테고, 그 여성들 또한 서로 다른 특질들로 인해 수많은 갈등을 겪는다. 우리는 그 속에서 무엇을 선택해야 하는가. 어떤 길이 옳은 길인가. 나는 끊임없이 고민하게 되었다. 샐리처럼 한때는 공부를 통해 높은 자리에 올라 세상을 바꾸고자 했지만, 이미 사회가 만들어 놓은 견고한 유리 천장이 있다는 걸 이제는 알아버렸기 때문이다. 그래서 다칠 것을 알면서도 체제에 금이라도 내보고자 부딪히는 조의 마음도 알겠다. 또한 여전히 단일 민족 국가에 가까운 나라에 살고 있긴 하지만, 아시안으로서 제니퍼의 마음도 모르겠는 것은 아니다. 보수적인 스탠스를 가진 윗 세대 여성들의 모습이 그녀들의 탓이랴. 그녀들의 마음이 전부 이해가 가지만, 세상을 여전히 바꾸고 싶어서 나는 내 삶의 교차성 속에서 끊임없이 고민하게 되는 것이다.

이 영화는 영화 속에 등장하는 여성을 정말로 포기하지 않는다. 그렇기에 모두에게 이입하게 되는 것이고 나의 생각도 이렇게 구구절절해지는 것이다. 솔직히 말해 이것은 이 영화의 가장 큰 장점이자, 가장 큰 단점이다. 물론 여성 군집 중 트랜스 여성까지 포섭하지는 못했으나, 시대적 배경을 생각하면 이 영화가 포섭하려고 했던 범위는 대단하기 그지없다. 영화가 샐리를 중심으로 백인 비장애인 시스젠더 헤테로인 젊은 여성을 중심으로 돌아가기는 하지만, 이 영화는 이미지로나마 장애인 여성과 임산부를 분명히 비추고, 후반부에는 마냥 보수적으로 보이지만 우리를 길러낸 엄마들인 중/노년 여성들에게도 마이크를 준다. 게다가 미스 월드라는 대회를 이용해, 제니퍼뿐만이 아니라 다인종을 비추려는 노력도 보이는데, 특히 일본 후보가 사라진 순간을 만들어 "Japan"을 애타게 외치는 순간은 애처로울 정도이다. 결국 이 영화는 모두가 목소리를 내기에 보편에 가까워질 수 있었지만, 굉장히 산만한 이야기가 되어 버렸다. 확실히 이야기는, 특히 영화는 메시지도 질문도 중요하지만, 잠시나마 관객이 숨을 돌릴 수 있는 여백을 주는 게 정말이지 중요하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이런 단점에도 불구하고, 이 영화가 여성들을 포기하지 못한 이유는 충분히 이해된다. 왜냐하면 지금까지 현실 속에서도 영화 속에서도 여성들은 남성들을 위해 매번 목소리를 잃었기 때문이다. 산만하지만, 여성들이 목소리를 내고 행동을 할 장을 제공해줬다는 점에서 이 영화를 미워할 수는 없다. 이야기는 70년의 실화를 바탕으로 한 것이지만, 현대로 가져와서야 그나마 보편과 가까운 위치를 획득할 수 있었던 이야기를 어떻게 미워할 수 있겠는가. 물론 다양한 여성들이 다양한 목소리를 내는 것이 보편이 아닌, 특수로서 다양한 작품 속에서 다뤄진다면 더할 나위 없을 테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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