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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리와 글 Mar 12. 2016

음악이 할 수 있는 일 (2)

 [글] 요시나가 미치코 吉永みち子 [번역] 소리와 글

일본을 대표하는 음악가 사카모토 류이치坂本龍一를 인터뷰한 글로 세 부분으로 나눠 담아 보았다. 부연 설명과 사진은 번역자가 덧붙였다. 또한 사카모토의 말은 사각형으로 구분하였다



"이 분이 또 굉장히 강렬한 사람이었어요. 대정 시대*  원조 현대 여성으로 매력적이기도 했지만요"

(*1912-1926)


처음엔 열 명 정도였는데

초등학교 3, 4학년이 될 때까지 하나 둘 그만둬서 나중에 보니 사카모토만이 남아 있었다.


"피아노는 못 쳤는데, 싫어도 싫다고 못하는 겁쟁이였으니까요. 어물어물 계속했죠"


그만두지 않는 사카모토에게 토쿠야마는 작곡 공부를 권했다. 이 일에는 본인뿐만 아니라 부모조차도 기겁을 했다.


하지만 강렬하고 명확한 의사를 가진 토쿠야마는 집요했다.


초등학교 5학년이었던 사카모토에게 분명, 자질이 보였으리라


하지만 본인은

작곡을 배우는 것의 의미조차 몰랐다


결국 부모님은 토쿠야마의 강렬함에 져서 딱 반년만이라는 약속을 하고 배우러 가게 된 것이다


"덫에 걸린 거랑 다름없었죠.
가 보니 반년만이라는 말조차 못 할 분위기였어요

피아노와의 만남이 엄마가 뿌린 밑밥이라면 작곡은 토쿠야마 선생님이 뿌린 밑밥.
안 먹으면 될 텐데 NO라고 못해서
결국 먹고 나서 큰 일이 난 거죠"


먹은 계기는 이었지만 막상 먹기 시작하면 끈질기게 계속 먹는다.

 덫에서 도망칠 수 없다면 그 속에서 다른 자신을 새로 만들어내 질금질금 키워가는 것

보이는 입구 (間口)는 좁은데도 그 속은 엄청난 넓이를 감추고 있는 교토의 상가가 떠올랐다


중층적이고 폭넓은 사카모토 작품의 특징과 정열은 이 복잡한 주름 속에서 배양되었는 지도 모른다


"그때부터 전 쭉 쌍검 법*이에요. 팝과 록의 세계와 아카데믹한 클래식의 세계. 양쪽 세계에 다리를 걸치고 있었습니다.
예술대학의 음악학부에 들어갔지만 어떻게 된 게 음악학부에 록밴드가 하나도 없었어요. 1970년이라고요!
록이 가장 뜨거운 그 시대에 관심도 없다니 어이가 없었습니다. 이 사람들은 잘못됐다고 음악가의 자격이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二刀流 양손에 칼을 쥐고 싸우는 검술의 유파


반발심을 가진 사카모토가 매일 다녔던 곳은 록밴드가 열 손가락으로도 다 셀 수 없을 정도로 존재하지만 그림 같은 걸 그리고 있는 인간은 거의 없었던 미술학부.


그곳에서 심금을 울리는 소리와 사람과의 만남이 있었다.


대학 시절의

장르를 넘어선 인맥이

덩굴처럼 사방으로 퍼져나가서

이윽고 27살 때  YMO(옐로 매직 오케스트라)의 일원이 되게 했다.


"YMO가 만약 그렇게 히트하지 않았다면-그렇게 유명해지지 않았다면,

그저 음악세계가 전혀 다른 두 명(호소노 하루오미, 타카하시 유키히로)에게서 자극을 받으면서 즐겁게 놀고, 그다음으로 옮겨갔을 거라 생각해요.

그런데 상상도 못했던 세계로 빨려 들어가 버려서 어떻게든 제대로 해야만 했어요.

음악가로서의 자신이 내고 싶은 소리라는 게 뭔지, 처음으로 진지하게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각자가 자신의 소리를 추구하면 부딪치고 말죠. 원래부터가 개성이 따로따로 인 세 명이니 원만하게 지낼 수가 없는 거죠"


YMO시절에 솔로 앨범을 냈다.

YMO라는 거대화된 존재로 인해

밖으로 밖으로 넓어져 있었던 의식이

자기 내부로 오그라들고 있었다.

YMO를 가상의 적이라 여기고

그것과 부딪치는 감촉으로부터 더듬더듬 자신의 모습을 그렸다


"햇수로 5년째 YMO가 해산한 후에 비로소 내가 태어났다라고나 할까요

음악가로서 홀로 걸어야 했던 첫걸음이 거기서 시작됐다고 생각합니다"


그 순간 그는 해방감에 젖어 있었을까 아니면 불안해하고 있었을까


그 물음에 사카모토는 바로 "불안했다"고 대답했다. 그리고 그것이 우주에 버려진 것 같은 불안이었다고 했다.


가상의 적이 있어서 그곳을 향하고 있었을 때는 얼마든지 과격해질 수 있었다.


자신의 음악을 추구한다는 것

그것을 다른 사람의 마음에 전달하려면 고독하고 자유로운 길을 걸어야 할 것이다,

겨우 그런 예감을 가지기 시작했을 즈음,


사카모토에게 도착한 것은 오오시마 나기사(大島渚) 감독으로부터의,

영화 『전장의 메리 크리스마스』 의 출연 제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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