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요시나가 미치코 吉永みち子 [번역] 소리와 글
이 글은 시각 장애인이자 일본인 여성으로서는 최초로 IBM 최고 직위에 오른 아사카와 치에코(浅川智恵子)를 인터뷰한 글로, 세 부분으로 나눠 번역하였다. 사진, 부연설명(*)은 번역자가 덧붙였으며 아사카와의 말은 사각형으로 구분했다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은 연구 테마가 아니죠. 그리고 절대 불가능한 일을 10년을 들여한다는 것도 무리. 연구 테마는 지금은 불가능하지만 풀어낼 가능성이 있는 것, 또 빨리 결과를 낼 수 있는 것. 이 두 가지 관점에서 고릅니다. "
풀어내야만 하는 숙제가 눈앞에 있어서 한시라도 빨리 해결책을 내야 할 경우는
연구자 개개인의 능력을 충분히 발휘할 수 있는지 또 그것들을 결집할 수 있는지에 달려있다. 결국 팀 리더의 역량에 좌우되는 것이다.
아사카와는"다들 제 특기가 다른 연구자들이 잘하는 분야를 신장시키는 거래요."라고 웃었다. 그 이유를 묻자 바로 "연구자로서 제가 할 수 있는 게 제한되어 있으니까"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눈이 안 보이면 예를 들어 도서관에 가더라도 혼자서는 다 조사할 수 없죠. 웹에서도 화상은 읽을 수 없고... 스피드가 필요할 때는 주위의 도움이 필요합니다. 그 과정에서 여러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힘이 보여요. 만약 리더가 훌륭해서 뭐든 혼자서 척척 해버리면 젊은 사람들이 리더를 앞서기란 불가능하죠. 저는 혼자 할 수 없으니까요 결과적으로 모두의 능력이 늘고, 팀으로서의 힘이 발휘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1958년 오사카 토요 나카시에서 태어난 아사카와는
활발하고 운동신경이 뛰어난 소녀였다.
장래의 꿈은 올림픽에 출전하는 것과 체육계 대학에 진학하는 것.
가까운 수영 학교에 들어가서 본격적으로 수영에 도전하려고 했다. 그런 찰나 학교에서 있었던 수영 수업시간에 얼굴을 수영장 벽에 부딪치는 사고를 당하고 말았다
"초등학교 5학년 여름이었습니다. 눈 밑이 파랗게 부어 있었지만 멍인가 싶어서 그냥 내버려두었죠. 병원에서도 시력이 좀 떨어질지는 몰라도 문제없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점점 눈이 흐려지더니 칠판이 잘 안 보이게 되고, 점차 교과서를 못 읽게 되었어요. 그리고 결국 친구 얼굴조차 안 보이게 되어서, 몇 번이나 수술한다고 계속 입원만 했죠. 어어어 하는 사이에 완전히 실명했습니다. 중학교 2학년이었어요.
들어가려고 했던 수영 학교도
올림픽도
체육계 대학도 모두 포기해야만 했다.
중학교를 졸업하면 당연히 들어갈 거라고 생각한 평범한 고등학교에도 못 간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만으로 당시 열네 살이었던 아사카와에게 남겨진 길은 맹학교(盲學校)에 들어가는 것.
모두가 자신의 희망 고교에 진학한 4월-
아사카와는 방에 틀어박혀 있었다.
일주일, 이주일, 삼 주일이 되어도 맹학교에 들어갈 결심이 안 섰기 때문이었다.
"눈이 보이지 않는다는 건 어쩔 수 없는 일이라는 걸 알았어요. 하지만 내 미래가 어떻게 될지 과연 자립은 할 수 있을지, 어떻게 살아야만 하는지 알 길이 없었어요. 맹학교에 들어간다는 것은 안 보인다는 것을 물리적으로도 정신적으로 다 받아들여야만 할 수 있는 일이었습니다."
알 길이 없는 일들을 껴안은 채 모든 것을 받아들여야 한다는 것에 대한 저항이
아사카와를 점점 작아지게 했다.
하지만 3주 후 맹학교에 들어가기로 결심한 것은 다름 아닌 아사카와 자신이었다.
"이대로 집에 있어도 아무것도 변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게 되었어요. 한 발짝이라도 앞으로 나가기 위해서는 내게 남겨진 유일한 길이었던 그 길을 가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다행히 전 환경에 꽤 잘 적응하는 편이라, 맹학교에 간 첫날 시끌벅적한 교실을 보고 뭐야 똑같잖아 하고 바로 그 속에 융화되었습니다. 그때의 경험이 지금 제 자신의 인생과 일하는 목표를 만들었다고 생각해요."
만약 그때 맹학교에 가지 않았더라면 어떻게 되었을까.
그다음 길은 계속되지 않았을 테고 지금의 아사카와는 없었을 지도 모른다
"한 발만 잘못 디디었다면 단념했을 지도 몰라요. 한 번 멈춰 버리면 다시 움직일 순 없죠. 포기만 안 하면 분명 다른 길이 있을 테니까 그게 아무리 힘들어도 한 발 내딛지 않으면 그다음 내딛을 곳조차 없는 법이니까요."
아사카와의 인생은 이때부터 시작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