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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리와 글 Mar 18. 2016

親인간적인 IT를 지향하며(3)

[글] 요시나가 미치코 吉永みち子 [번역] 소리와 글

이 글은 시각 장애인이자 일본인 여성으로서는 최초로 IBM 최고 직위에 오른 아사카와 치에코(浅川智恵子)를 인터뷰한 글로, 세 부분으로 나눠 번역하였다. 사진, 부연설명(*)은 번역자가 덧붙였으며 아사카와의 말은 사각형으로 구분했다




그리고 또 하나

눈이 안 보이게 되었을 그때

자신의 장래를 조금이나마 파악할 수 있었다면 그만큼 힘들지는 않았을 거라는 생각.


이 생각이 후에 정보 엑세서빌리티라는 연구테마의 원점이 되었다.


맹학교에서 점자를 배웠고

영어에 흥미가 생겨 대학은 영문과로 진학했다.

통역이나 번역 같은 일을 직업으로 삼고 싶었지만 역시 점자만으로는 무리였다.

이를 악물고 한 발 한 발 앞으로 내딛었지만 그때마다 눈앞을 가로막는 벽

"맹학교에서도 대학에서도
 내가 무엇을 할 수 있을지 전혀 안 보였어요.
어떻게 해야 되나 하며 시각장애자를 위한 직업 훈련센터에 다녔는데 거기서
눈이 안 보여도 컴퓨터를 조작할 수 있게 가르쳐 주는 학교가 있을 것 같다는 거였어요. 하지만 전 문과였고 이과는 자신이 없었기 때문에 망설이고 있었죠. 그런데 적성검사만이라도 받으라는 거예요. 그래서 받아 봤더니, 글쎄 이게 꽤 잘 맞는 거예요. 그래서 2년 동안 그 학교에 다니게 되었습니다."


아사카와는 컴퓨터와 이곳에서 처음 만났다.

동시에 그것은 가장 힘든 2년의 시작이기도 했다.


컴퓨터 공부라고 해도 당시엔

후에 아사카와가 개발하게 되는 점자를 출력하는 기계도

화면을 음성으로 읽어주는 기능도 없었다.


공부를 하기 위해서는

종이에 인쇄된 것이나 화면을

손가락으로 읽는 기술을 마스터하는 일이 급선무였다.

그것은 바로 시각장애자의 독서 지원을 위해 개발된 옵타콘*을 사용하는 것


소형 카메라를 움직이면 이 장치가 문자의 형상을 파악해 그것을 진동으로 바꿔주는데,

그 진동을 오로지 손가락 끝으로 읽어내는 것


오른손으로 카메라를 조작하면서 왼손으로 그 진동을 정확히 읽는 기술을 마스터하지 않는 한

그 이상의 진척-가장 중요한 정보처리기술에 대한 공부-은 기대할 수 없었다.


*optical to tactile converter에서 op-ta-con을 따온 약칭으로 시각장애자가 점자가 아닌 일반 문자를 촉각으로 읽을 수 있도록 만든 기계. 위 사진 참조


"그 연습이 얼마나 힘들었는지...정말 힘들었어요.동그랗게 시작했으니 O겠지 했는데, 끝부분이 끊어져 있어서 C였거나, O라고 생각하면 D이거나. 힘이 쭉 빠지죠. 그래도 읽을 수 있는 길은 그것밖에 없었으니까 어떻게든 습득해야 했어요. 그러면서도 이걸 해봤자 어디에 쓸 데가 있을지 이게 과연 직업이 될지.... 주변에는 그만두는 사람도 있었어요. 그래도 제겐 다른 길이 없었으니 힘들어도 할 수밖에 없었죠. 그 2년 동안 몇 번이나 그만두려고 했지만, 두고두고 생각해도 정말 안 그만둬서 다행이에요."


포기하지 않고 벽을 넘어선 아사카와는

스물다섯 살에 학생 연구원이라는 자격으로 IBM에서 연수를 받았고

연수기간 내에 했던 영어 자동 점자 번역 연구가 평가받아 그다음 해에 정식 채용된다.


실로 한 발 한 발 나아간 그 노력이 자립으로 이어진 확실한 길을 만들어 낸 것이다.


그리고 컴퓨터 능력만 구사할 수 있으면 넓어지는 세상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모든 사람들이 능력을 발휘할 수 있는 사회. 그 실현을 위해서는 지금까지 정보와 거리가 멀었던 사람들의 엑세서빌리티를 높여야 한다는 연구테마가 탄생했다.


1990년대의 웹페이지는 홈페이지 리더로 읽을 수 있었지만

점점 멀티 메디어화, 브로드 밴드화로 인해 사진이나 동영상 등

눈으로 보며 즐기는 콘텐츠가 늘어났다.


"문자가 아닌 것은 어떤 어플을 써도 읽을 수 없죠. 화상을 음성으로 바꿀 수는 없어요. 그걸 어떻게 해야 하는지 그게 지금 가진 숙제입니다."


커뮤니티와 함께 웹의 대응성을 더욱 향상시켜 가자고 하는 콘셉트로 시작한 소셜 엑세서빌리티는 도움이 필요한 사람과 도우려고 하는 사람을 인터넷상에서 연결해가는 세계 최초의 시도이기도 하다. 그 장치를 실용화시키기 위한 새로운 연구가 이미 시작되었다.

동시에 불가능하다고 여겨져 왔던 화상을 해석하여 마치 바로 곁에 있는 것처럼 읽어 주는 새로운 인터페이스 연구도 진행되고 있다


"개개인의 습성이나 어떤 사이트를 많이 보고 있는지 버려진 데이터 등을 해석해서 컴퓨터가, 이것은 중노년층을 대상으로 한 것이에요라든가, 인기 있는 사이트입니다라든가 사용하려면 우선 돈을 넣어 달라든가 하고 속삭이는 것은 그렇게 먼 일이 아닐 거라고 생각합니다."

컴퓨터가 할 수 있는 일은 급격히 늘어 그 가능성은 무한해졌다.

그리고 무엇보다 중요한 정보의 원천인 웹의 사용은 누구나가 쉽게 사용할 수 있어야만 한다. 이를 위해 사회에, 세계의 여러 대학에 공동연구를 촉진하고 있는 아사카와의 나날은 눈코 뜰 새 없다


"전 감기에 잘 안 걸려요. 그리고 체력이 있죠. 이런 제가 앞으로 무엇을 할 수 있을지 생각하면 즐겁습니다. 만약 눈이 보였다면 어떤 인생을 살았을까  같은 건 생각한 적도 없어요. 지금 이대로의 인생도 재미있으니까요."


누구보다도 가혹한 나날을 보냈을 아사카와에게서 무언가를 부정적으로 해석하는 말은 찾을 수 없었다.


 포기하지 않으면 불가능한 일도 가능하게 된다


그것을 엄연히 실천해온 아사카와가 이렇게 말하니 아무도 부정할 수 없지 아니한가

그리고 그것은 큰 격려이기도 하다.


(終)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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