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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리와 글 Mar 25. 2016

만담(落語)과의 진검 승부(3)

[글] 요시나가 미치코 吉永みち子 [번역] 소리와 글

이 글은 일본 NHK 의 생활 정보 프로그램 '타메시테 갓텐(호기심 해결사)'의 MC로 유명한 만담가(落語家) 타테카와 시노스케(立川志の輔)를 인터뷰한 글로, 네 부분으로 나눠 번역하였다. 사진, 부연설명(*)은 번역자가 덧붙였으며 타테카와 시노스케의 말은 사각형으로 구분했다



연극은 배우러 다녀야 했지만, 사실 만담에는 자신이 있었다. 학교를 다닐 때도 지금도 말이다.


"그런데 왜 그때 만담가가 되지 않았냐고요? 그게 단순하지가 않아요. 테이프를 그대로 외워서 한 얘기로, 손님들이 웃었다고 해서 기쁘지만은 않거든요. 뭐, 돌다리를 두드려 보고도 건너지 않는 토야마 사람의 본성 때문일지도 모르죠."


극단을 그만두고서도

만담가가 되는 길은 선택하지 않았다.


뭐 때문에 동경에 있는 대학에 갔느냐고...... 가족의 원성을 느끼면서

낮에는 아르바이트를,


밤에는 신주쿠 골든 가이*에서

매일 술을 마셨다.


*신주쿠 골든 가이 (新宿ゴールデン街): 동경 신주쿠 구청과 히나조노 신사 사이에 있는 좁은 골목으로, 200여 개의 술집이 밀집해 있다. 드라마 심야식당의 배경으로 쓰였다고 한다.


그러던 어느 날, 우연히 옆에서 마시고 있던 사람이 "우리 회사에 들어올래?"란다.

"무슨 일 하는데요,라고 물었더니 텔레비전 CM 같은 걸 만든다고 했어요. 그리고 일주일도 지나지 않는 사이에 부장, 사장 면접을 받고 입사했죠."


우왕좌왕하는 사이에 샐러리맨이 되었다.


"스폰서, 대리점, 프로덕션, 프리 스탭 등이 모여, 시시한 이야기를 하면서 무언가가 결정되거나 굉장한 CM이 만들어지는 게 재미있었어요. 이걸로 일로서는 종착점이겠다 싶었죠. 그런데 4년 되던 어느 날. 사장과 부장에게 불려 가서 이제 제작 일에선 손을 떼고 영업일을 하는 게 어떠냐고 하길래 저도 모르게 "그만두겠습니다"라는 말이 나왔어요. 그쪽에서는 그 정도로 영업이 싫냐고 했지만 사실 영업이 싫었던 건 아니었어요."


그만두고 싶었던 건

만담가가 되고 싶었으니까.


계속 고민했던 것도 아니고

망설이고 있었던 것도,

드디어 결심했다는 것도 아니었다.


계속해 오던 일을 바꿔야 한다는 현실 앞에서 덜커덕 깊숙이 담아두고 있었던 마음이 입 밖으로 나와버린 것이다.


만담가라는 건 생각도 안 하고 있었다. 그 정도로 광고 일에 몰두하고 있었다.


쉬는 날에 요세(寄席,만담 공연장)에 놀러 가도 그저 만담을 즐기고 있다고 생각했다.


이미 결혼을 해서 가정도 꾸리고 있었고


재미있는 사람이 득실득실거리는 그곳에서 별난 샐러리맨 인생을 마지막까지 해나가려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런데 사실은

만담가가 되고 싶은 마음을 무의식적이었지만 그렇게 몇 겹으로 감추고 있었던 것이었다.


한 겹 한 겹 감싸고 있던 막에

균열이 생기고 있었고


그 속에서 부풀어 가고 있었던 그 마음이,


영업을 하라는 진동에 떨어져 나간 것이리라.


만 열여덟에 만난 만담.

그 사건이 무언가가 폭발하는 듯한 변화를 일으켰다고 한다면


 돌고 돌아온 10년은 내 마음의 핵심을 확인하기 위한, 마치 서서히 얼음이 녹는 듯한 조용한 변화의 나날이었다.


"10년 늦었다고 하는 것은, 빨리 들어가면 들어갈수록 유리한 이 세계에서 아무 득도 안되었지만, 그 10년이 없었다면, 지금의 나도 없었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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