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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리와 글 Mar 29. 2016

한단지몽 一炊の夢(2)

〔글〕 코이케 마리코小池真理子 〔번역〕 소리와 글

한단지몽 一炊の夢(2)




같이 산 지 3년이었다.


어느 날 밤, 어두운 얼굴로 돌아온 남자에게서 "헤어졌으면 좋겠다"라는 말을 들었다.

놀라서 이유를 물었더니 그는 시선을 피하며 좋아하는 여자가 생겼다고 했다.


좋아하는 여자???

여자는 되물었고


남자는 응, 하고 고개를 끄덕였다.



어째서?


목소리에 힘이 안 들어갔다. 떨리고만 있었다.



남자는 잠자코 있다.



진흙탕 같은 침묵 속에서

시간이 흘렀다.



남자가 아무 말도 하지 않으려 했기 때문에

여자는 어째서,라고 다시 한 번 물었다.



이미 마음이 변한 남자에게 그런 질문을 해봤자

아무 의미가 없다는 것은 알고 있었다.



울부짖으며 손에 잡히는 대로 벽에 던지거나

이 배신자

책임져

라든가.



삼류 드라마에 나오는 것 같은 대사를

내뱉고 싶은 충동에 휩싸였다.



하지만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그 대신 여자는, 쓸쓸하다, 고 했다.


"쓸쓸하네. 너무 쓸쓸해서 뭐라고 해야될지 모르겠어."


그 말을 내뱉은 순간 시야가 흐려졌다.


남자가 곤란한 표정을 짓는 것을

여자는 놓치지 않았다.



미안하다


남자는 말했다.



 "정말 미안하다. 여기서 나갈 껀데 대신 지금 있는 돈 다 주고 갈게. 둘이서 산 물건도 전부 놔두고 갈게."



필요 없어,라고 여자는 말했다.

그 말을 뱉자 눈물이 흘렀다.



그로부터 얼마 지났을 무렵


가나자와에 살고 있는 동창이 그 사정을 알고

기분전환이라도 할 겸 놀러 오라고 했다.



독신인 친구는 편집 프로덕션을 경영하고 있었다.


미인인데다가 멋쟁이라

애인도 늘 여러 명 있는 것 같았다.


그런 그녀에게서

"언제까지 질질 끌거야? 보잘 것 없는 남자였다고 빨리 털어버리고 그다음을 찾아야지"라는 말을 들으니 여자도 조금은 그럴 수 있을 것 같았다.


주말을 이용해 가나자와까지 가서

밤새도록 마셨다.


친구의 친구들,

여러 명의 남녀를 소개받았다.



다 같이 노래방에 가서

노래를 부르고

또 마셨다.



크게 웃고

크게 수다를 떨었다.



노래방에서 신나 있었을 때

같이 있던 남자에게 이끌려

치크 댄스도 췄다.



남자는 어둠 속에서 다른 사람이 모르게

여자를 끌어안고

이마에 축축한 키스를 해 왔다.


여자는

이러면 안 되잖아, 하고 웃으며 몸을 돌렸다.



무엇을 해도

여자는

땅 속으로 빨려 들어갈 것 같은 허무함을 느끼고 있었다.


어떻게 하면

이 허무함이 사라질까.


언제가 되면

웃을 수 있을까.


아득한 미래가 무서워졌다.






이대로 계속 모르는 노인의 벌레 이야기만 들을 수만은 없었다.


누구와도 이야기하고 싶지 않았다.


여자는 대화를 거부하듯 팔짱을 끼고

뒤로 기대며 눈을 감았다.


몸이 돌처럼 무거웠다.


떠나간 남자는 이제 떠오르지 않는다.


너무 많이 생각했던 탓인지 질려 있었다.


노인은 더 이상 말을 걸어 오지 않았다.



열차가 동경에 도착할 때까지

여자의 귀에는

리잉-리잉-리잉-하는 벌레 소리만 울려 퍼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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