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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리와 글 Mar 29. 2016

한단지몽 一炊の夢(3)

〔글〕 코이케 마리코小池真理子 〔번역〕 소리와 글

한단지몽 一炊の夢(3)


"내리기 시작한 모양이네요."

노인이 창밖을 보고 말했다.


하얀 먼지같은 눈송이가

춤추듯 흩날리고 있었다.


바다와 하늘의 경계를 알 수 없는-


온통 회색빛으로 물든 일면에


눈송이들이 둥둥 떠다니며 녹아갔다.



숙소의 젊은 아가씨가 총총 걸음으로 달려와서는

기다리게 해서 죄송합니다,라고 했다.


방까지 안내할테니 따라오세요,하고선 거친 콧소리를 내며

여자의 보스턴백을 자신의 팔에 걸었다.


여자는 소파에서 일어나, 노인을 향해 가볍게 목례를 했다.


"그럼,또..."


노인도 앵무새처럼 같은 인사를 따라하더니

황급히

"오늘 밤"이라고 했다.


"술을 마시러 나가볼까 합니다."

"네?"


"어젯밤 역앞에서 <미요>라는 선술집을 발견했어요."

"미요?"

"술은 양이 줄었습니다만 맛있는 걸 조금씩 시켜 먹기에는 꽤 괜찮은 가게인듯합니다."


아,,네,라고 여자는 말했다.

붉은 어깨띠를 하고 있는 아가씨가 조금 떨어진 곳에서 애가 타는 듯이 여자를 기다리고 있다.


"미요...입니까?"

여자는 노인에게 말했다.




지난 밤에는 가나자와에서 마셨다.


편집 프로덕션을 경영하고 있는 친구는 왜 그렇게 얼굴이 어둡냐며,아직도 못 잊었냐며 질렸다는 얼굴을 하더니 금방 장난기 가득한 얼굴로


"가을에 너랑 치크 댄스를 췄던 그 남자말이야,그 남자가 너를 못 잊고 있대."


잠자코 있자 친구는 몸을 앞으로 내밀고는

"그 남자 어때?"라고 물었다.


"서른 다섯. 이혼한 전 부인 사이에 여자애가 한 명 있지만, 한번 사귀어 보는게 어때?"


"미안한데."


여자는 말했다.


"내 취향이 아니야"


가나자와에서 이틀을 친구집에서 묵었다.그리고 오늘 동경으로 돌아가려고 했는데

그만 반대 방향으로 달리는 열차에 올라 타버리고 말았다.


회사도 그만 뒀고,

시간은 많았다.


오늘밤 미요라는 가게에서

벌레쟁이 노인과 마셔도


내일 다시 가나자와에 가서

같이 춤췄던 남자를 불러내 마셔도

마찬가지일지도 몰랐다.



"갈 지도 모르겠어요.미요에"

라고 여자는 말했다.


노인은 기쁜 건지 아닌건지

너무 기뻐서 표정을 지을 수 없었던 건지


부자연스러울 정도로 묵뚝뚝한 얼굴로

고개를 살짝 끄덕이고,

다시 책을 펼쳤다.



그날 밤.


숙소에서 나오는 저녁도 안 먹고

여자는 눈 속을


택시를 타고 역앞 [미요]까지 갔다.


[미요]는 긴 카운터 자리밖에 없는  낡은 술집이었다.



모락모락 나는 김과

생선을 짭잘하게 조린 냄새, 그리고 술냄새로

공기가 탁했다.



노인은 카운터의 제일 끝 자리에서

작은 술병을 앞에 두고

등을 꼿꼿이 세운 흐트러짐이 없는 자세로 조린 생선을 먹고 있었다.


안녕하세요,라고 여자가 말하자 노인은

어어,라고 했다.


춥습니까 밖은

이라는 소리에 여자는 춥다고 대답했다.



눈은 그치지 않았다.


바람도 강했고

눈보라로 바뀌고 있었다.


노인과 나란히 자리에 앉아


여자는 술 잔에 술을 따라 마셨다.


그리고 김이 모락모락 나는 조림요리와 튀긴 두부를 먹었다.

노인의 술잔에 술을 따르려고 하자 노인은

아니,됐어요

라고 했다.


더 못 마시는 모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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