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코이케 마리코小池真理子 〔번역〕 소리와 글
노토한토(能登半島)의 해안가에 있는 낡아빠진 여관이었다
먼지 투성이인 불투명 유리 미닫이를 열고 안으로 들어가자 안쪽에서 쿵쾅쿵쾅 하는 발소리가 울려 퍼지고 있었다
몸집이 큰 데다가 각진 어깨와 둥근 얼굴의
-진짜 기모노가 어울리지 않는-젊은 아가씨가 나타나 혀 짧은소리로"어서 오세에요"라고 했다
조금 전에 역 앞 관광안내소에서 전화한 사람인데요
그녀는 이렇게 말하고, 이름을 댔다
좀 기다리세요,라고 하자마자 그 아가씨는 다시 쿵쾅쿵쾅 거리며 안쪽으로 쑥 들어갔다
발 디딤대 위에는 팥색 비닐 슬리퍼가 한 줄로 나열되어 있었다
대형 스토브에서 나는 등유 냄새가 코를 찔렀다.
들고 있었던 보스턴백을 일단 발 디딤대에 놓고 여자는 신발을 벗고 슬리퍼를 신었다. 감각이 둔해져 있던 발바닥에 슬리퍼의 차가운 감촉이 스며들었다.
로비라고 하기엔 너무 살풍경(殺風景)인 넓은 공간에는 병원의 대기실에나 있을 것 같은 불그스름하게 퇴색된 비닐 소파가 둘, 서로 마주 보게 놓여 있었다.
그리고 그곳엔 안경을 낀
고목같이 마른 노인 한 명이
덩그러니-하지만 바른 자세로 소파에 앉아 책을 읽고 있었다.
여자는 코트를 입은 채 노인의 맞은편 의자에
보스턴 백을 무릎에 올리고 살짝 걸터앉았다.
낡은 벽시계가 두 번 울렸다.
아직 오후 2시인데도 해질 무렵처럼 주변은 어둑해져 있었고
천장의 형광등 빛이 차가웠다.
창 너머로는
금방이라도 눈이 내릴 듯한 회색 하늘과
하얀 거품을 물고 있는 거친 파도가 보였다.
노인이 불쑥 책에서 얼굴을 들어 여자를 봤다. 시선을 느낀 여자도 노인을 봤다.
어, 하는 노인의 말과 동시에 여자도 어머,라고 했다.
"어디선가......"
노인은 안경 너머로 눈을 가늘게 떴다.
"저.... 혹시 방울벌레의......"
여자는 말했다.
"방울벌레가 아닙니다. 간탄*입니다"라고 노인은 말했다. 그리고 콜록, 하고 축축한 기침을 한 번 했다.
*방울벌레와 비슷한 곤충
"이것 참 우연이네요. 이런 데서 만날 줄이야"
"정말 그러네요"라고 여자는 말하고선
놀랐다기보다 곤란해하며 "깜짝 놀랐네요"라고 덧붙였다.
"이곳을 전부터...?"라고 노인이 물었다.
"아니요 전혀. 조금 전에 역 앞 관광 안내소에서 싸고 바다가 보이는 곳에 묵고 싶다고 했더니 이곳을."
"나랑 똑같네요. 나도 어제 역 앞 안내소에서 소개받았습니다. 그 말대로 싸고 어느 방에서도 바다는 보입니다만."
그렇게 말하고 노인은 얼굴을 찌푸리고선 콧물을 훌쩍였다.
"싼 게 비지떡이죠. 지금 방 청소 중입니다. 그래서 여기에."
"아, 네"
"춥지요?"
"춥네요. 잘 지내셨어요?"
"뭐 그럭저럭"이라고 노인은 말하고는 입술 끝을 오므렸다.
미소를 지은 셈이었다.
세로줄이 무수하게 새겨진 입술이, 한 순간 고무처럼 늘어나 매끄러워졌다.
4개월 전인 9월 중순.
가나자와에서 동경으로 돌아가는 특급 열차 지정석에서
여자는 그 노인과 동석하게 되었다.
노인의 무릎에는 남색 보자기가 놓여 있었다.
보자기에서 쉴 새 없이
리잉-리잉-리잉-
하는 소리가 들리고 있었다.
안에 방울벌레가 들어 있는 것 같았다.
"시끄럽죠?"하고 노인은 말했다.
잠긴 목소리에다가 작은 소리였고, 설마 자기에게 한 소리라고는 생각지 못했기 때문에 여자는 잠자코 있었다.
노인은 상반신을 조금 앞으로 내밀고 여자 쪽으로 눈을 돌리고선,
다시 한 번 똑똑히 "시끄럽지 않습니까? 정말 미안하네요."라고 했다.
여자는 당황해서 노인 쪽을 향해, 아니에요,라고 하고선 고개를 좌우로 흔들고는 "조금도요"라고 덧붙였다.
입가에는 흰색이라고도 엷은 갈색이라고도 할 수 없는 수염이
드문드문 나 있었고
조금 색이 바랜
하얀 베레모를 쓰고 있었다.
학자처럼도
그냥 은퇴한 노인처럼도 보였다.
나이는 알 수 없었다.
70인지 80인지.
90까지는 아닌 것 같았지만 여자에게는
그 정도로 나이를 먹은 남자를 식별할 수 있는 눈은 없었다.
여자는 겨우 서른이었다.
"이렇게 울 줄은 몰라서요. 조용히 하라고 할 수도 없고..."
노인은 한 눈에 봐도 틀니로 보이는
하얀 광택이 나는 이를 드러내고 약간 웃었다
"예쁜 소리네요."
"다행이네요."
"방울벌레예요?"
"간탄입니다"
라고 노인은 대답했다.
"많이들 착각하는데 방울벌레는 아닙니다."
"아... 네"라고 여자는 말했다.
간탄.
그런 이름의 벌레는 들어 본 적이 없었다.
"방울벌레와 같은 귀뚜라미 종류입니다. 외견은 방울벌레를 많이 닮았고 들으시다시피 소리도 똑같습니다만 엄밀히 말하면 종류가 달라요. 우는 것은 수컷뿐입니다.간탄 애호가인 친구에게서 4마리만 받아 왔습니다만, 대낮부터 이렇게 건강하게 울 줄은 몰랐어요."
"벌레를 좋아하시는군요."
"특별히 좋아하는 건 아닙니다만"이라고 노인은 말하고, 무릎 위의 보자기 매듭을 어루만졌다.
"무료함을 달래기 위해 하이쿠를 짓고 있어요. 친구가 그거라면 간탄의 소리를 꼭 들어야 한다고 시끄럽게 굴어서요. 풍정이 있어서 그렇다고 합니다만. 가나자와 근처까지 갑작스럽게 받으러 가게 되어서요......"
아,라고 여자는 말하고 그렇구나,라고 덧붙이고 나서 바로 "그렇습니까?"로 바꿔 말했다.
그 이상 계속 이야기하는 게 귀찮았다.
"가나자와에는 일로?"라고 노인이 물었다.
아니요,라고 여자는
"가나자와에 친구가 있어서 놀러 갔다가 돌아가는 길입니다."하고 대답했다.
오, 하고 노인은 무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젊은 사람은 부럽네요"
"별로 젊지도 않지만요"라고 여자는 말했다.
여자는 그 해 여름, 같은 나이였던 연인과 헤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