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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리와 글 Apr 06. 2016

시간의 흐름

『우는 어른(泣く大人)』  2001년 7월, 카도카와 문고


#읽기 전 유의사항

하나. 어디까지나 이 번역은 번역자의 취미생활의 일부로 스크랩은 허용하지 않아요.

둘. 괄호, 사진+α은 이해를 위해 번역자가 넣은 것으로 본문에는 없어요.

셋. "의역"한 부분이 많으므로 연구대상으로 할 경우 직접 본문을 참조해 주세요.



시간의 흐름 時の流れ


그는 원래 아버지 친구로, 오랫동안 뉴욕에서 살고 있다.


14년 전 내가 미국에 유학 갈 때 

여러모로 걱정이 되었는지 

아빠는, 그를 소개해 주었다.


긴자였는지 롯폰기였는지 기억이 안 나지만 한 요리점에서
셋이서 밥을 먹었던 것을 기억하고 있다.


"어설픈 데가 많은 딸내미입니다만 아무쪼록 잘 부탁합니다."

아버진 그렇게 말하곤 머리를 숙였다. 


난 옆에서 얌전하게 앉아 있었지만, 내심,
꼭 시집가는 것 같네,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때 그는 

전날 일로 만난 작사가라는 한 여자가, 

얼마나 요염하고 또 얼마나 괜찮았는지에 대해
주울-곧 아버지를 상대로 수다를 떨고 있었다.


아버지 곁에 앉아있는,

이제 곧 유학 갈 딸내미 따윈 어떻게 되든 상관없다는 것 같았다.


이제 와서 생각해보면,
그 작사가라는 여자는 그가 정말 좋아하는 타입이다.


나긋나긋하고 명랑하고 담백하다. 딱 들어맞는다.


그의 이상형이 어떻든 상관없지만, 

어쨌든 그런 식으로 나는 그 사람을 알게 되었다.



케네디 공항에 도착했을 때, 그는 공항까지 나를 마중 나와주었다.


큰 ー, 

진녹색의 정말 아름다운 차를 가지고 있었다. 


좌석도 진녹색의 가죽을 씌운 것으로
스테레오에서는 모차르트가 흐르고 있었다.


흐리고 쌀쌀한 날의 저녁이었다.


그의 차에서는 크레용 냄새가 났다. 양초와 닮은 냄새.


난 그 냄새가 맘에 들어서 깊이, 심호흡을 했다.



1년간의 유학 기간 중, 나는 몇 번인가 그 차를 탔다.


그때마다 세련된 가게에서의 런치나 고급 일식을 얻어먹었다.



그건, 그에게 있어 친구한테 부탁받은 딸을 잠깐 돌보는 것에 불과했지만
내게 있어선 꽤 특별한 데이트였다. 


그는 아주, 멋진 남자였으니까.


얼마나 멋지냐 하면,
풍족하다. 

항상 즐겁게 지내고 있다.



가난한 유학생에게 있어서 안심하고 지낼 수 있는,
사치스러운 데이트였다는 것은 말할 필요도 없다.


그리고 난 그에게 많은 것을 배웠다.
소박하고 장난기가 어린, 사전에는 나오지 않는 영어.


다양한 습관이나 종교가 있는 생활의 디테일.


지금 거리에서 유행하고 있는 것.


꽤 재미있는 전람회


쿠사마 야요이(草間彌生)


이번에 놓쳐버리면 두 번 다시 듣지 못할 조합의 음악회.



미국 노인들에 대해서.
노후를 보낼 장소로서 마리 조나에 대해서.



그는 예쁜 일본어로 이야기했지만, 왠지 모르게, 영어 같은 일본어라고 나는 생각했다.


논리적이고 긍정적인 말투였다.


(그리고)
이야기한다라는 행위에 항상 유머가 동반되었다.


난, 그가 고르는 말이 좋았다.


딱 한 번, 그는 자신에 대해서 얘기한 적이 있다.


가족에 대해서, 여자에 대해서, 그리고 일본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지에 관한 것이었다.



우린 그의 차 속에 있었다.
그 날도 흐리고 쌀쌀했다.


나는
(그때,)
그가 하는 말들이 이해될 듯했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그가 하는 말을, 하나하나 또렷이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알아듣기 쉽게 그는 이야기하는 것이다.


그래도 그때


[어설픈 딸내미]한테 정말 이해돼요, 라는 말을 듣는 것도 이외일 것 같아서
그렇게는 말할 수는 없었다.


다만 조용히 듣고만 있었다. 


크레용 냄새가 나는 차 안에서.


그에게 있어서 나는 친구의 딸이지만, 그는 단 한 번도 나를 어린애 취급하지 않았다.
거리낌 없이 이야기를 해줬다. 


주어가 명확한, 영어 같은 일본어로 말이다.



그 후 뉴욕에 친구도 생겨, 그의 수고를 번거롭게 할 일도 없어졌지만,
그래도 난 때때로 그에게 전화를 걸어
그를 불러냈다.


일 년 동안이었던 유학기간도 끝나, 정처 없이 뉴욕에 머물러 있었을 때에도,
귀국한 뒤 종종 놀러 갈 때에도.



는 지금도 뉴욕에서 살고 있다.


이전에 일하고 있던 회사는 그만두고 자기 회사를 만들어버렸다.



일본에 돌아올 마음은 없는 듯하다.
예쁜 고양이를 포함한 가족과 생활하고 있다.
이따금 일로 잠시 귀국한 그에게서 연락이 있을 때면
난 어떤 일도 제쳐두고 달려 나간다.



(그럴 때면)
그는 뉴욕에 있을 때와 전혀 변하지 않은 모습으로,
정장 차림에
여유롭게 다리를 꼬고
미소를 지은 채 앉아 있는 것이다.



멀리서 그를 발견할 때면
이곳이 동경이라는 것이나
이미 자신이 20살 초반이 아니라는 것,
일을 하면서 제대로 수입을 얻고 있다는 사실 따위도 까맣게 잊고 만다.

콜라와 셰프 샐러드*(양상추에 야채와 얇게 썬 닭가슴살과 햄, 치즈를 곁들인 샐러드)밖에 먹지 않고,


영어 수업에 못 따라가 헐떡이고 있는−


앞으로 어떻게 살아가고 싶은 지 자신조차 몰랐던,
궁색 맞은 소녀로 돌아가버린다.


물론 이제 난, 더 이상 궁색 맞은 모습을 하고 있지는 않다.



동경에서 매일매일 맛있는 것을 먹고 있고.
일을 하고 있고
동료가 생겼고
남편과 개, 라는 새로운 가족까지 얻었다.



전람회에도
음악회에도
그의 조언 없이 다니고 있다.


즐겁게 지내고 있는 거다.



그런데도
(그를 만날 때면)
그때로 돌아가버리는 것이다.



경계를 특정 지을 수는 없지만,
언제부터인지 나는 그에게, 친구로서 인정받은 기분이 든다.


친구의 딸, 이 아니라 그의 친구.


그건 멋진 일이었다.


그렇기 때문에야말로 뉴욕에 갈 때마다
난 뻔뻔스럽게 그를 방문할 수 있는 것이며
아빠한테는 소개할 수 없었던 당시의 보이프렌드도 소개할 수 있었던 것이다.

시간이 흐른다는 것은 잔혹한 것이긴 하지만,
때때로 멋진 일을 만들어 준다. 우정에 있어서는 특히나.

가장 최근에 그를 만난 건, 

동경에서였다.


그의 몇 번째인가의 책이 출판되어(그 제목은 다름 아닌 [건강을 위해서라면 죽어도 좋다!]!!!),
축하파티가 열렸던 것이다.


발이 넓은 사람이라서 그런지 각 계층의 저명인사들이 많이 와 있었다.


내가 작은 꽃다발을 들고 사람들을 비집고 다가갔더니,
그는 늘 그랬듯이
그리고 다른 여자들한테도 하는 것처럼
볼에 입맞춤을 하는 인사를 해줬다.


이것은 내가 그의 친구의 딸이었을 땐,
결코 해 주지 않던 인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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