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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리와 글 Apr 07. 2016

사치 덩어리

『우는 어른(泣く大人)』  2001년 7월, 카도카와 문고


#읽기 전 유의사항

하나. 어디까지나 이 번역은 번역자의 취미생활의 일부로 스크랩은 허용하지 않아요.

둘. 괄호, 사진+α은 이해를 위해 번역자가 넣은 것으로 본문에는 없어요.

셋. "의역"한 부분이 많으므로 연구대상으로 할 경우 직접 본문을 참조해 주세요.



사치 덩어리 贅沢なかたまり



지난밤

사이가 좋은 편집자 두 명과

메밀국수를 먹으러 가서

맥주를 마시고,


쥐치회를 먹고

노도구로 소금구이와

은행과

누에콩 튀김을

조금씩 집어 먹었다.


이윽고 우리는

니혼슈(日本酒)로 바꿔 마시기 시작했고

마스(枡):노송나무로 만든 한 홉 크기의 잔.일부러 넘치게 따라주는데 나무의 향이 술 맛을 한층 높여준다.

마스(枡)*에 든

물처럼 매끄러운 니혼슈를

느긋이 마시면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다가


어찌 된 셈인지 레즌 버터 이야기가 나왔다

편집자인 두 명은 둘 다

레즌 버터를 좋아한다고 했다.


난 반가워서

"2차로 먹으러 가죠"라고 제안했다.



레즌 버터가 얼마나 맛있는 음식인 지 마침절실히 느끼고 있던 참이었다.


하지만 그 때까지,

그것을 좋아한다는 사람을 본 적이 없었다.


버터를 그대로 먹는다는 데 저항이 있는 듯

예를 들면 우리 엄마나 여동생은 느끼하다며 손도 안 댔다.


남편도

고등학교 친구들도.


무엇보다 고등학교 때 친구들은 술을 안 마시니 레즌 버터를 안 먹는 건 당연할 지도 모르겠다.



하긴 난

버터 자체를 좋아하니까


버터만큼 순수하게 "사치"를 느끼게 해 주는 음식도 없을 것 같다.


사치 덩어리.


어렸을 때 다 같이 외식이라도 할 때면

나의 가장 큰 즐거움은 버터였다.


은색 그릇에 정갈하게 나열된, 둥근 버터.


나는 그것을 버터나이프로 푹 찍어서 그대로 먹었다.


목구멍을 넘어가는 차가운 감촉과

짭짤함 후에 느껴지는 진한 고소함.


단 게 아니다.

달달함이 퍼져 나가는 것이다.


그 버터는 내 몸을 만들었다고 생각한다.


사람은, 그 사람이 지금까지 먹어 온 것으로 만들어진다.


그래도 난

버터를 빵에 바르거나 하지는 않는다.



버터는 바르는 것이 아니라 그대로 먹는 것이다.

적어도 처음엔 고체니까.


빵과 버터에 사용하는 동사는 "찍어 먹는다"이던지 "얹어 먹는다"이어야만 한다고 생각한다. 만약 부사를 붙인다면 "꼭"이라든가 "듬뿍"이 바람직하다.

빵이나 크래커, 비스킷이라고 불리는 딱딱한 라스크에 잼을 얹어 먹을 때

버터를 생각하지 못하는 사람이 많아 놀랍다.


얼마나 고급이면 그럴까

당도가 낮은 신선한 잼-이라고 하는 것은 즉 손수 만든 것-이 아닌 이상

버터와 같이 먹는 편이 당연히 맛있다.


살구잼이라면 특히.



버터를 좋아하는 친구가 한 명 있는데

가끔 그 친구와 밥을 먹는다.


우리들은 물론,

버터가 맛있는 가게를 고른다.


그리고 요리를 먹는 사이사이

버터를 따뜻한 빵 위해 "듬뿍" 얹어

실컷 음미한다.

도중에 버터를 더 달라고 해서.


불쑥 칼로리가 뇌리를 스쳐갈 때도 있다.

하지만 난 금세 그 나약한 생각을 떨쳐 버린다.


이렇게 사치스럽고

이렇게 행복한 버터는


아마 내 체내에서 뼈를 윤기 나게 하고 있을 테니까.



올해 할머니가 그리고

3년 전에는 아버지가 돌아가셨기 때문에

최근에 두 번이나 화장터에 갔지만,


언젠가 내가 죽는다면

분명히 화장터에 모인 사람들은

내 뼈를 보자마자 놀랄 것이다.



튼튼하고

새하얗고

반짝반짝 윤이 나고 있을 테니까.


"호사스러운 분이셨네요"라고 사람들은 말할 지도 모른다.


행복한 음식이라는 것은 아마 그러한 것일 테다.


그건 그렇고 지난밤.

신소바로 바뀐 세 종류의 메밀국수를

-하얀 것과 푸른 유자를 반죽해 넣은 것과 검은깨를 반죽해 넣은 것-

실컷 맛본 후,


아무리 버터를 좋아한다고는 해도

평소에 그것을 목적으로 바에 간 적이 없었던 우리 셋은 각자 핸드폰으로 몇몇 바에 물어보았다. 그리고 겨우 레즌 버터에 자신이 있다고 하는 아카사카에 있는 가게까지함께 갔다.



그리고


듬뿍,

두껍고 네모나게 잘려진

농후한 그것을 맛 보았다.


하룻밤의 식사의 마루리로서 물론 손색이 없는 한 접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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