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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리와 글 Apr 08. 2016

아메리칸 풍의 비

『우는 어른(泣く大人)』  2001년 7월, 카도카와 문고


#읽기 전 유의사항

하나. 어디까지나 이 번역은 번역자의 취미생활의 일부로 스크랩은 허용하지 않아요.

둘. 괄호, 사진+α은 이해를 위해 번역자가 넣은 것으로 본문에는 없어요.

셋. "의역"한 부분이 많으므로 연구대상으로 할 경우 직접 본문을 참조해 주세요.



아메리칸 풍의 비  アメリカンな雨のこと


계획을 세운 적은 없지만 이건 계획 외다,라고 생각되는 일은 가끔 있으니 아이러니하다. 계획을 세운 적이 없어도 계획 외의 일은 있는 것이다.


와 같이 살기 시작한 것도, 그런 셈이었다.


라는 건 강아지 이름.


는 건강하고 놀라울 만큼 성질이 올곧다.


작년 12월, 치과에 다녀오는 길에 를 샀다.

19만 엔이었다.


는 백화점 옥상에 있었다.


그리고 왜인지 모르겠지만 나는 그를 데려 오고 말았다.


생후 2개월 된 강아지로 캐러멜 색인 털은 길고,

얄미울 정도로 천진난만한 모습을 하고 있었다.


천진난만함.


그것은 내가 거의 믿지 않는 개념이며 조금도 좋아하지 않는 단어다.




강아지를 키우는 건 오랜만이었다.


의 에너지는 바닥이 없어서

난 어린애를 맡은 할머니 같은 기분이었다.


는 안하무인이다.


허식이 없는 안하무인만큼 사람을 감동시키는 것은 없다. 나는 감동하며 를 찬양한다.


"넌 심지부터 안하무인이구나. 완전 내 타입."


는 기쁜 듯하다.

말을 걸어 주는 게 좋은 것이다.


하지만 내용은 그다지 듣고 있지 않다.


안 들어도 좋은 것이다.


는 단지,

자신의 몸만한 크기의 진심간절함으로 나를 쳐다보고 있다.


우스꽝스러운 말인지는 알고 있지만

나는 말 이외의 수단으로 커뮤니케이션을 시도하는 게 서투르다.

에 대해서도 그만 말 쪽을 맹신해서 말을 걸어 버린다.


말을 걸고

질문을 해서

가능한 한 의 의지를 존중하고 싶다고 생각한다. 그 결과 나는 가 하라는 대로 된다.

<에 대한 메모>

◎동백꽃을 좋아해서 정원에 나가게 하면 곧장 동백나무 아래로 달려가 떨어져 있는 꽃을 먹는다

◎야단을 맞는다,라고 하는 것을 이해하지 못한다.

◎드라이브를 좋아하며 차멀미는 안 한다(다만 사람 무릎 위에 있는 게 조건)

◎달리는 게 빠르다.

◎놀다가 지치면 무릎 위에 올라와 만족스럽게 큰 콧김을 한 번 쉬고 잔다. 이 콧김이 이 세상 것이라고는 생각되지 못할 정도로 사랑스러워서 나는 그때마다 울고 싶어 진다.

◎전혀 심술쟁이가 아니다


아마, 내가 를 오냐오냐하며 키우고 있는 듯이 보일 것이다.


친구 하나는 그게 걱정이 된 모양으로 "개 버릇은 6개월 안에 결정된다"라는 책을 줬다.

개를 오냐오냐하는 것에 관한 전문가인 엄마에게조차도

"넌 개든 남자든 오냐오냐 한다니까"라고 귀에 못이 박힐정도로 듣고 있지만 실제로는 반대다.


가 나를 오냐오냐하며 받아주고 있는 것이다.

게다가 특별 대우를 받고 있다.


그 뒤에 사정이 생겨 를 애견학교에 맡겼을 때도 어찌할 바를 몰랐던 건 가 아니라 나였다.


봐, 네가 그렇게 오냐오냐하니까 주인이 그 모양이잖아 라고 비는 분명 학교에서 다른 개들한테 듣고 있을 것이다. 나는 면회 갈 때마다 그런 꼴을 보이고 만다.


그런데.


아메리칸 코카스파니엘로 나는 그것을 그냥 코카 스파니엘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예전에 작은 할머니가 코카스파니엘을 키우고 있었는데 이름이 쥬리였다. 쥬리의 길고 우아한 얼굴과 명석해 보이는 눈, 순한 몸짓을 아직도 기억하고 있다.



하지만 는 조금 달랐다.

우아하다기보다는 좀 애교가 있는 얼굴이고

명석해 보인다기보다는 사람 좋은 듯한 눈을 하고 있다.

강아지라는 점을 뺀다고 해도,

순한 몸짓이라고 하기엔 너무 힘이 넘친다.


브루스 포글 박사가 쓴 책 "코카 스파니엘"(다이아몬드 출판사 간행, 니이즈마 아키오 감역, 야마시타 케이코 번역)을 읽고 그 이유를 알았다.


그 책에 따르면 아메리칸 코카스파니엘은 보통 코카스파니엘보다 이마가 넓고 눈이 둥글고 몸이 약간 작고 털이 '비단실'같으며 애완견에 걸맞게 '기운이 넘친다'고 한다.


이것은 "미국의 브리더들이 이 신견종을 만들 때 이런 유아적인 특징을 선택적으로 강조한 결과입니다"라고, 게다가 "아메리칸 코카스파니엘은 앞으로도 오로지 쇼를 위해 품종 개량되어 갈 것이다"라고 적혀 있었다. 나는 놀라서 몇 번이나 다시 읽어 봤다. 이런 짓을 하다니, 개에게 있어서는 비참하다.


잠시 충격을 받았지만


그러고 보면 는 역시 '유아적'인 모습을 하고 있다.

"너, 아메리칸이었구나"


나는 가 한층 더 애처로워졌다. 비 오는 날 만났다는 이유 하나 만으로 붙인 라는 이름조차 무언가 운명적이었다고 생각된다. 게다가 아메리칸, 이라는 단어를 입에 담을 때의 왠지 모를 가벼운 느낌이 원래 싫지 않았다.


포글 박사의 책에는 그 밖에도 흥미로운 게 있었다.


예를 들면 그는, 외출할 때는 강아지가 심심하지 않도록 구멍이 뚫린 장난감 속에 땅콩버터를 채워 두면 좋다고 했다.


땅콩버터!!!

이것은 실로 아메리칸적인 발상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런 짓을 했다가는

의 털도

방바닥도 끈적끈적해져 버릴 것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피너츠 버터를 핥아먹게 한다면 조금 더 편안한 분위기에서 먹이고 싶다. 느긋하게.


하지만 아주 진지하게 그런 걸 적는 저자의 인품에는 호감이 갔기 때문에

나는 에게도 그 부분을 읽어 주고 나서

같이 땅콩버터를 핥아먹고 차를 마셨다.




생각나는 게 있다.


열두 살 때다.

우리 집에서 강아지를 키우게 되었다.


개를 키우고 싶냐고 물어서 키우고 싶다고 했더니 아빠는 내게 그럼 하나만 약속해달라고 했다. 일반적으로 부모는 아이에게 그럴 때 매일 산책을 시키라든가, 먹이주기나 대소변 청소를 잘하라든지, 살아있는 동물을 키우는 데 있어서 필요한 책임감을 가르쳐 주려고 한다는 것을 소설이나 텔레비전 드라마에서 봐서 알고 있었지만 그때 아빠는 다른 이야기를 했다.


외톨이 소녀같이 개를 지나치게 사랑해서는 안된다. 개는 언젠가 죽어. 그때 고독한, 히스테릭한 여자처럼 울거나 소란을 피우지 말 것.


아빠는 그렇게 말했다.


9년 후 그 개가 죽었을 때

나는 그 약속을 기억하고 있었기 때문에

아빠 앞에서 울지 않았다.


하지만,

이제서지만 나는 깨닫는다.


열두 살이었던 그때도 지금도

나는 외톨이는 아니지만 고독한 여자이고

고독하며 히스테릭한 여자이기도 한 것이다.

그걸 아빠가 영영 몰랐으면 좋겠다.


이제 곧 이곳에 아메리칸 가 돌아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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