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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리와 글 Mar 04. 2016

판타지

『우는 어른(泣く大人)』  2001년 7월, 카도카와 문고


#읽기 전 유의사항

하나. 어디까지나 이 번역은 번역자의 취미생활의 일부로 스크랩은 허용하지 않아요.

둘. 괄호, 사진+α은 이해를 위해 번역자가 넣은 것으로 본문에는 없어요.

셋. "의역"한 부분이 많으므로 연구대상으로 할 경우 직접 본문을 참조해 주세요.



판타지 ファンタジー


예전에 사랑한 남자 중에

헤어진 뒤 한 번도 안 만난 사람은

한 사람뿐이다.


다른 사람들과는 지금도 가끔 만난다.


좋은 일인지 나쁜 일인지 모르겠다.


격렬히 사랑을 하고 또 헤어져서,
두 번 다시 만나지 않고
그 사람은 기억 속에서만
-젊은 채로
날 사랑하고 있었던 채로-
존재하고 있는 편이 아름다울 지도 모른다



그런데 현실은 녹록지 않다.



사랑한 숫자가 적어서일까



그래도 여러 번 사랑을 했다.



내가 사랑했던 그 남자들은,
한 사람만 빼고 그냥 "남자 사람 친구"가 되었다


물론 바람직한 인간관계에는

항상 우정이 포함된다.


동성이라도 이성이라도
상사라도 부하라도
엄마와 딸이라도
형제라도

부부라도

연인이라도.



그렇기 때문에 더더욱 나는 그런 사람들을 친구라고 부르고 싶지 않다.


"친구 같은 연인"이라든가
"엄마랑 사이가 좋아서, 울 엄만 젤 친한 친구나 다름없어"라고 말하는 사람이 있는데
나는 그게 정말 싫다.


그런 말을 하려거든


예를 들면 책,
예를 들면 곰인형,
예를 들면 담요,
예를 들면 벽에 붙인 포스터도 친구라고 하면 되겠네.


그러고 싶은 기분은 알지만, 그렇게 하고 싶지 않은 말이라는 게 있는 법이다.


나한테 있어서는 [친구 같은 뭐뭐]라는 말이 바로 그거라는 겁니다


그러므로-

내가 생각하기에


연인을 친구라고는 하고 싶지 않지만
옛날 남자친구는 친구


본질이
-적어도 본질의 일부분을-
알려져 있고 또 알고 있는 관계.
이건 꽤 깊은 맛이 난다.


그런 친구들 가운데 한 사람이 바로 그다.


그와는 지금 1년에 한 번 정도밖에 만나지 않는다.


오해할 걸 감수하고 말하자면,

나는 그를 아직도 깊이 사랑하고 있다.


예전보다 더 사랑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연애감정은 멋지게 형체도 남기지 않고 사라졌지만


사랑은 착실하게 깊어지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는 연애를 많이 하는 남자로
나보다 두 배정도나 연상이지만 줄곧 독신으로 지내오고 있다.


그렇다고 해도 대부분 여자랑 같이 살고 있기 때문에
이름만 독신인 셈이지만.



그는 새로운 여자와 사랑에 빠질 때마다
그 여자를 칭찬하고 자랑하고 또 소개해준다.



지금까지 세 명을 소개받았다.


그 세 번째인 현재의 여자친구와 난 비교적 사이가 좋다.


그녀는 피아노를 좋아해서
우리 집에 피아노-값싼 전기 피아노인데-를 치러 오는 거다.


그의 집은 악기 연주가 금지된 맨션이라고 한다.


이사 가면 될 텐데-


어쨌든 그런 연유로 그녀는
종종 우리 집에 놀러 온다.

그것도 오토바이를 타고.


그녀는 나보다 두 살 위로

상냥하고 배짱 좋은 여자다.


우리들의 공통된 화제는 그에 대한 얘기밖에 없기 때문에 늘 그에 대해 얘기한다.


버터 토스트라든가, 과일이라든가, 그녀가 들고 온 슈크림이라든가를 먹으면서.


얼마 전에 그가 바람을 피었다(는 것 같다).


그녀는 내게 전화를 걸어와서
그 전말을 이야기했다.


그 시점에선 이미 그와 그녀 사이에선 이야기가 끝나-바람 핀 여자랑은 깨끗이 헤어진다는 것으로-있어서,


나한테 전화를 건 건 상담 같은 게 아니라 단순히 [한번 들어봐]라는 종류의 것이었다.
그러고 수일 후에 오랜만에 그를 만났다.


그녀가 내게 전화를 했을 때

그도 옆에 있었던 모양으로


그 사실을

그는 쓴웃음을 지어가며 말했다.


당연한 거겠지만

난 건설적인 건 일절 말할 수 없다.


바람도 대강대강 피워라,라든가

그녀를 슬프게 만들지 말라 라든가.


뭐 그런 걸 말할 만한

성격도 입장도 안되니까


거기에 대해선 그녀도 알고 있다고 생각한다.


나는 그의 단지 친구

연인이 아니기 때문에


항상-설령 그가 나쁜 짓을 했다고 해도-그의 편이다.


그 날, 우리들은 공적인 자리에서

얼굴을 마주쳤지만

일이 끝나고 나서
딱 1시간 같이 차를 마셨다.


그는 내게 바람 핀 게 발각됐을 때의 그녀
-같이 살고 있는 그녀-의 태도를 칭찬했다.


당해낼 수 없다, 고 말했다.


난 그때 정말, 그에게, 그런 여자친구가 있어서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진심으로.


과거에 사랑을 했던 남자와 여자가 친구가 되기 위해서는,
아마 필요한 게 두 가지 있는 것 같다.


하나는 서로 조금도 미련이 없을 것.


또 하나는 둘 다 행복할 것.


행복이라는 것도 애매한 말이긴 하지만,

제대로 살아가고 있다는 것.


일이든 가정이든 친구든 애인이든,

어쨌든 제대로 하고 있다는 것.



그러면 오랜만에 만났을 때

가공의 존재처럼 된다.


뻔뻔한 말일 수 있겠지만,


현실의 제약이 통하지 않는 상대



내가 동경하는 여자 중 한 명이 크루엘라 드빌(Cruella de Vil)이다.


디즈니 애니메이션 [101마리 달마시안]에 나오는 담뱃대를 든 은색 머리의 악녀.


난 옛날 남자친구를 친구로 만나고 있을 때
크루엘라가 된 듯한 기분이 들 때가 있다.


판타지 속에만 존재하는 여자


그건 홀가분해서 꽤 좋은 기분이다.


귀찮지도 않고 유쾌한_


판타지를 좋아해서 그런 것 같기도 하다.



현실을 좋아하는 사람에게는 맞지 않는
우정 형태일지도 모른다.


그래도-내 생각엔


남자한테 여자라는 것도,

여자한테 남자라는 것도,


원래 판타지가 아닌가.


언제나.
누구에게든.


살아가는 건 힘든 것


가끔은 판타지로 도피하는 것도 나쁜 것만은 아니잖아,라고 말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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