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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리와 글 Apr 16. 2016

재회

『우는 어른(泣く大人)』  2001년 7월, 카도카와 문고


#읽기 전 유의사항

하나. 어디까지나 이 번역은 번역자의 취미생활의 일부로 스크랩은 허용하지 않아요.

둘. 괄호, 사진+α은 이해를 위해 번역자가 넣은 것으로 본문에는 없어요.

셋. "의역"한 부분이 많으므로 연구대상으로 할 경우 직접 본문을 참조해 주세요.



재회 再会


하나님의 존재를 믿고 싶어지는 순간,이 있다.


예를들면

생각지도 못한 장소에서

생각지도 못한 시간에

생각지도 못한 사람과 우연히 만나는 순간.


"눈부시다"라고 해도 좋을 듯한 화사한 환희에 휩싸인다.


시내의 한 서점에서 고등학교 동창생과 우연히 마주쳤다. 20년 만이었다.


그녀와 그렇게 친했던 것도 아닌데

굉장히 기뻤다.


기묘한 말이지만, 두 번 다시 만날 일이 없을 줄 알았다.

아니 이미 죽은 줄 알았다고 하는 편이 더 가까울 것이다.


그녀는 아이를 세 명 데리고 있었다.


"니가 낳은 거야?"

내게 있어 그녀는 아직 고등학생인 채였기 때문에

깜짝 놀라 물어봤더니


그녀는 그곳에 있던 사람들이 다 쳐다볼듯한 시끌벅적한 목소리로


"그~래,내가 낳았지."

라고,했다.


2,3분 정도 우리들은

선 채로 이야기를 나누고 헤어졌는데


헤어지고나서도 한참을 멍했었다.



예전에 오사카의 한 서점에서

미국 대학에서 알게 된 일본인 남자와

우연히 마주친 적도 있다.




13년 만이었는데 너무 똑같아서 바로 알아볼 수 있었다.


바로 알아봤지만-

정말 너무 안 변해서 오히려 믿기 어려울 정도였다.



그는 나보다 몇 살인가 어리지만 그렇다고 해봤자 30대일 것이다.


티셔츠에 청바지,스니커.

거기다가 뒤로 맨 가방.


미국의 장거리 전철 역 대합실에 가면 세 명 쯤은 있을 것 같은 청년같았다.

전철 시각표와 샌드위치만 손에 들고 있으면 완벽히.


덜커덩 시간이 되돌아 가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무슨 일이야? 어째서 여기 있어? 오사카에서 살고 있는 거야? 아님 여기는 필라델피아인 건가?"


내가 묻자 그는 가만히 미소지었다. 그리고,


"변했구나."

라고 했다.


"그거야 뭐 이젠 스물 셋이 아니니까."


내가 대답하자 그는 고개를 끄덕이곤

"그래도 난 그대로지?"

라고,했다.


우쭐대는 것이 아니라 뭔가 미안하다는 듯이.


"아직도 어른이 안 됐지."


난 어떻게 해야될지 몰라서 입을 다물었다.

물론 나도 아직 어른이 안됐다,고 대답해도 좋았을 터이다.


사실이었고 그렇게 말하며 웃고 싶은 기분이었다.

그 때랑 똑같다,며.


하지만 그것을 입밖에 내뱉으면

거짓말처럼 들릴 것 같았다.


그래서 그냥 잠자코 있었던 것이다.


"차 마실 시간 있어?"


내가 묻자 그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서 우리는

지하에 있는 커피가게에 들어갔다.




더운 날이었다.

내가 '차가운 단팥죽'을 주문하자 그는 웃으며


"단 거 좋아하는 건 여전하네. '프렌들리즈'의 창가 자리에서 니가 믿을 수 없을 만큼 큰 파르페를 먹고 있는 거 자주 봤었지."

라고 했다.


그리고나서 우리들은 거기서

친구 누구누구에 대해 띄엄띄엄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는 내가 쓴 책을 몇 권인가 읽었다고 했다. 나는 고맙다고 했지만 역시 멋쩍었다.



생각나는 게 있다.


몇 년쯤 전에

고바야시 기세의 [아시안 재패니즈]라는 책을 처음 봤을 때의 일이다.

저자가 아시아의 여러 나라에 가서 그곳에서 만난 일본의 젊은이들을 촬영하거나 인터뷰한 내용을 쓴 책이었는데, 팔랑팔랑 넘겨 보는 것만으로 내게는 "반가움"그 자체였다.

거기에 찍혀져 있는 남자애들도 여자애들도 "분명히 알고 있는"사람 같았다.모두 낯이 익었으니까...





공통의 친구들에 대해서

우리들은 반갑게 이야기를 했다.


항상 산토리 레드의 큰 병을 방에 두고 게타를 신고 다녔던 앗쨩,

정치가가 된다고 했던-그리고 실제로 되어 버린-마사토 상.

아름답고 화려하며 대범한,애마인 벤츠에는 푸와종 냄새가 배어 있었던 의리있던 지유키.

꽤 오랫동안

코르셋을 입고 다닌다고 오해했었던 근육질의 마코토.


"다같이 미국에 가고 싶다."

그가 말하고


"가자 가자.재밌겠다."

고 나는 대답했다.


하지만 그것은 적어도 당분간-우리들이 할아버지 할머니가 될 때까지-실현되지 않을 것 같았다.


매년 그들로부터 받는,

사진이 들어간 연하장에는


매년 누군가의 가족이 늘어났고


매년 누군가가 승진했다라는 소식이 있었다.



우리들은 모두 각자, 서로 다른 장소에서 살아가고 있다.


"앞만보고 살아가야지 뭐."

차가운 단팥죽을 다 먹고선 내가 말했다.


"용감하네"

그가 말했다.


나는 그때 그가 좀 얄밉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그대로 말했다.


"너 진짜 얄밉다."


라고.



그리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눈 앞에 있는


그 때와 변함없이

나약하지만 부드러운

그래도 나보다는 훨씬 어른이 되었음에 분명한 남자 사람 친구를


말그대로 "눈부시게" 쳐다봤다.



재회는 멋지다.


물론 친구는 양으로 말할 수 없지만

많이 있으면 삶이 즐거워진다.



가령 두 번 다시 만나지 않는다고 해도


그들이 어딘가에서

'그들답게' 살고 있다는 게

큰 힘이 된다.


역시 하나님은 있다!!!



한여름의 오사카 지하가를

그와 헤어져 혼자 걸으면서 나는 그렇게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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