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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리와 글 Apr 23. 2016

러브 미 텐더(1)

『에쿠니 가오리 비장의 작품집』중에서(매거진하우스 2004년)

러브 미 텐더 ラブ・ミー・テンダー(1)



내가 놀란 건

엄마 아빠가 이혼할 지도 모른다는 사실이 아니었다.


이혼하니 마니는

벌써 백 번도 넘게 나온 이야기.


그런 게 아니라 엄마가 내게 한 그 말, 엄마의 병이 거기까지 악화되었다는-에 놀랐다.


전화기 너머로 엄마는 굉장히 흥분해 있었다.


"이혼하게 돼도 위자료 같은 건 필요 없다. 니가 알고 있다시피 난 좋은 아내가 아니었으니까."


어처구니없네,라고 나는 말했다.


"위자료도 없이 어떻게 살아가려고?"


도대체 70이 된 노부부가 이혼이 어떻고 저떻고 하는 자체가 보기 싫었다.



큭큭큭,이런 소리를 내며 엄마는 웃었다.


"그 사람이랑 살 거야."

"...... 그 사람?"

"요즘에 매일 밤 전화해 주는데, 나한테 엄청 잘한다."


그렇게 말하고는 엄마는 다시 한 번 큭큭큭,하고 웃었다.


"엄마? 진짜, 괜찮아?"

"당연히 괜찮지."

메마른 목소리로 엄마는 말했다.



커피를 내리면서 남편한테 이 얘길 하자

남편은 신문을 펼친 채로


"그 사람이라는 거 엘 씨 얘기야?"

하고 했다. 내가 고개를 끄덕이자 그는 쓴웃음을 짓더니 다시 진지해져서


"병원에 가는 게 좋을 지도."

라고 했다.


남편을 회사에

아들을 고등학교에 각각 보내고


뒷정리를 마치고 2층에 올라간 나는

책장에서 [가정의 의학]을 집어 들었다.



노인성 치매:뇌의 노년성 변화로 인해 노인에게 발병하는 일종의 정신병. 기억력이 감퇴하고 성격도 변화한다.



거기까지 읽고 책을 덮었다.

암담했다.  


엄마는 엘비스 프레슬리를 사랑한다.


팬이라든가 그루피*(인기 연예인을 열광적으로 따라다니는 여성팬. 빠순이보다 더 도가 지나친 광팬이란다)같이 단순하지 않다.


프레슬리는 그녀의 인생 자체다.


엄마의 방은

온통 프레슬리의 레코드 자켓으로 가득 메워져 있고

서랍이란 서랍에는 잡지를 잘라낸 것이나 프레슬리 관련 물건들로 점령되어 있다.


물론 밤낮없이 그 달달한 목소리는 집안 가득 흐르고 있고.

몇십 년을 줄곧 말이다.



대학 데뷔*(고교 졸업 후 새로운 대학생활에서 변신하려는 사람들을 일컫는 말)라는 말이 있지만

엄마의 경우 그 전말이 심하다.


엄마의 엘비스 데뷔는

서른을 넘어서였다.

대부분의 병이 그렇듯 이런 건 늦어지면 늦어질수록 중증이 된다.


불쌍한 건 아빠였다.

하얀 앞치마가 잘 어울리는 얌전한 현모양처라고 생각하고 있었던 자기 아내가

어느 날 갑자기 돌변한 것이다.


머리를 자르고 파마를 하고 플레어스커트를 입고 댄스홀에 다니는 엄마를 보고

아빠는 분명 프레슬리를 원망했을 것이다.



엘 씨(우리들을 그를 이렇게 부른다)가 죽었던 그 날을 나는 평생 잊지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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