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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리와 글 Apr 25. 2016

러브 미 텐더(2)

『에쿠니 가오리 비장의 작품집』중에서(매거진하우스 2004년)

러브 미 텐더 ラブ・ミー・テンダー(2)


1977년 8월,

우리 가족에게 있어서 그것은 공포의 나날이었다.


엄마는 울기만 했고

우리들은 집안에 있던 칼날이란 칼날, 줄이란 줄은 모조리 숨겼다.



엄마가 앞으로 도대체 어떻게 될까,

모두 심각했다.


그런데

한 달 정도 울고만 지내던 엄마는


돌연 미국으로 떠났다.


무덤에 가 본다며, 말이다.


엄마에게 있어서는

혼자서 하는 첫 여행이었으며

난생처음 타는 비행기였다.


그러고 보면 아빠와 엄마에게는

진절머리가 날 정도로 [이혼의 위기]가 있었다(기 보다 이혼의 위기가 그들 부부의 역사 그 자체였다고 하는 편이 정확하다).


하지만

헤어진다, 헤어진다며 소란을 피우다가도

결국 이혼은 안 했기 때문에


처음에는 조마조마하고 있었던 가족들도

점차 동요하지 않게 되었다.


나도 어느새 아빠와 엄마는

저렇게 해야만 같이 살아갈 수 있다고 받아들이게 되었다.

요 몇 년 사이,

엄마의 엘비스 병은 상당히 악화되었다.


"엘비스가 베갯머리에 서 있었다"로 시작되어

"장지문에 엘비스 그림자가 비쳤다"라든가

"잠이 들면 엘비스가 머리카락을 쓰다듬어 준다"라든가


얼토당토않은 일들을 진지한 얼굴로 말하는 것이다.

그렇다고 해도 어젯밤의 엄마는 도가 지나쳤다고,

나는 립스틱을 바르며 생각했다.


그가 전화를 건다니.


"베갯머리"도

"그림자"도

"잠들었을 때"도 아니라

실제로 전화를 건다니.



나는 캔을 뜯어 강아지에게 주고

문단속을 한 뒤 차에 올랐다.


시동을 걸고 안전벨트를 맸다.


차양을 내리고

거울을 보며 머리를 매만진다.


그리고 액셀을 밟으며 라디오 전원을 눌렀다.

세타가야(世田谷)에 있는 친정까지는 차로 40분 정도이다.

"뭐가 위자료는 필요 없다는 거야."


나는 더욱 액셀을 밟았다.

음력 10월의 따뜻하고 청명한, 아침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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